유건 (치천정왕)
1. 개요
유건(치천정왕)은 전한 시대의 제후국인 치천나라의 왕이다. 원광 6년(기원전 130년)에 아버지 유지(치천의왕)의 뒤를 이어 치천왕이 되었으며, 원삭 2년(기원전 127년)에는 제나라 왕 유차창의 자살로 인해 제도혜왕의 제사를 받들게 되었다. 치천정왕 20년(기원전 110년)에 사망했으며, 아들 유유(치천경왕)가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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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10년 사망 -
유굉 (제회왕)
유굉은 전한 무제 때 제나라 왕으로 봉해졌으나, 제회왕 8년에 사망하여 봉국이 폐지되었다. -
기원전 110년 사망 -
유룡 (부후)
유룡(부후)은 연왕 유단의 영향으로 기원전 127년에 부후에 봉해졌으나, 기원전 110년에 종을 시켜 살인한 죄로 투옥되어 옥사한 인물로, 그의 기록은 《사기》와 《한서》에 전해진다. -
생년 미상 -
손니 알리
손니 알리는 송가이 제국의 군주로서 니제르 강 유역을 장악한 후 팀북투와 젠네를 정복하고 군사력을 강화하여 제국을 확장했으며, 전통 신앙과 이슬람교 조화, 법에 의한 국가 통제, 무역 확립 등 내치에도 힘썼다. -
생년 미상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기원전 2세기 중국 사람 -
신도가
신도가는 전한 시대의 무관 출신으로, 항우와의 싸움과 영포의 난에 참여하고 혜제 때 회양태수를 거쳐 승상에 올랐으며, 청렴한 성품으로 황제의 총애를 받던 등통을 처벌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조조와의 갈등 끝에 죽음을 맞이하여 절후의 시호를 받았다. -
기원전 2세기 중국 사람 -
사마천
사마천은 중국 전한 시대의 역사가, 천문학자, 역법가로서 중국 최초의 통사로 평가받는 『사기』를 저술하여 기전체를 확립하고 역사 서술과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이릉 변호 사건으로 궁형을 받는 고난을 겪었으며 태초력 제정에도 참여하는 등 천문학과 역법에도 업적을 남겼다.
2. 생애
아버지 치천의왕의 뒤를 이어 치천왕이 되었으며, 재위 기간 중 제나라의 제도혜왕 제사를 승계하게 되었다. 20년간 재위한 후 사망하였고, 아들 치천경왕 유유가 왕위를 계승하였다.
2.1. 치천왕 즉위
원광 6년(기원전 130년)에 아버지 치천의왕이 죽자, 그 뒤를 이어 치천왕이 되었다.
원삭 2년(기원전 127년), 제나라 왕 유차창이 자살하고 봉국이 폐지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제나라 시조 제도혜왕의 자손에게 세워준 제후국은 망한 제나라 외에 교서나라·교동나라·제북나라·치천나라·성양나라 다섯 나라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 중 교서, 교동, 제북 세 나라에는 이미 제도혜왕의 후예가 끊겨 다른 왕가가 들어섰으므로, 남은 제도혜왕의 자손은 치천나라와 성양나라 두 왕가뿐이었다. 그 중 치천나라가 제나라에 더 가까웠으므로, 치천나라가 제도혜왕의 무덤을 둘러싼 임치 동쪽 지역을 받아 제도혜왕의 제사를 받들게 되었다.
2.2. 제도혜왕 제사 승계
원삭 2년(기원전 127년), 제나라 왕 유차창이 죄를 짓고 자살하면서 제나라의 봉국이 폐지되었다. 당시 제나라의 시조인 제도혜왕의 후손이 세운 제후국으로는 폐지된 제나라 외에 교서나라, 교동나라, 제북나라, 치천나라, 성양나라 다섯 나라가 있었다. 그러나 교서, 교동, 제북 세 나라는 이미 제도혜왕의 후예가 끊기고 다른 왕가가 들어선 상태였으므로, 실제로 제도혜왕의 제사를 이을 수 있는 후손은 치천나라와 성양나라의 왕가뿐이었다.
두 나라 중 치천나라가 옛 제나라의 중심지와 더 가깝다는 점을 고려하여, 치천나라가 제도혜왕의 무덤이 있는 임치 동쪽 지역을 넘겨받아 제도혜왕의 제사를 받들게 되었다.
2.3. 사망
치천정왕 20년(기원전 110년), 치천정왕은 죽고 아들 치천경왕 유유가 뒤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