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건 (치천정왕)
1. 개요
유건(치천정왕)은 전한 시대의 제후국인 치천나라의 왕이다. 원광 6년(기원전 130년)에 아버지 유지(치천의왕)의 뒤를 이어 치천왕이 되었으며, 원삭 2년(기원전 127년)에는 제나라 왕 유차창의 자살로 인해 제도혜왕의 제사를 받들게 되었다. 치천정왕 20년(기원전 110년)에 사망했으며, 아들 유유(치천경왕)가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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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10년 사망 -
유굉 (제회왕)
유굉은 전한 무제 때 제나라 왕으로 봉해졌으나, 제회왕 8년에 사망하여 봉국이 폐지되었다. -
기원전 110년 사망 -
유룡 (부후)
유룡(부후)은 연왕 유단의 영향으로 기원전 127년에 부후에 봉해졌으나, 기원전 110년에 종을 시켜 살인한 죄로 투옥되어 옥사한 인물로, 그의 기록은 《사기》와 《한서》에 전해진다. -
전한의 제후왕 -
전한 무제
전한의 제7대 황제인 전한 무제는 54년간 재위하며 유교 기반 중앙집권 강화, 흉노 정벌을 통한 영토 확장, 소금과 철의 전매제 등 경제 개혁을 추진하여 전한의 최전성기를 이끌었으나, 과도한 군사 지출, 사치스러운 생활, 무고의 난 등 부정적인 면모도 보였다. -
전한의 제후왕 -
유굉 (광릉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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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관한 -
광서제
광서제는 도광제의 손자이자 순친왕 혁현의 아들로, 1875년 청나라의 황제가 되었으며, 서태후의 섭정 아래 무술변법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유폐된 채 사망했다. -
역사에 관한 -
2013년
2013년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 교황 사임, 북한 핵실험, 용산 개발 사업 부도, 윤창중 사건, 스노든 폭로, 김연아 우승, 방탄소년단 데뷔, 넬슨 만델라 사망 등 국내외적으로 다양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사건들이 발생한 해이다.
2. 생애
아버지 치천의왕의 뒤를 이어 치천왕이 되었으며, 재위 기간 중 제나라의 제도혜왕 제사를 승계하게 되었다. 20년간 재위한 후 사망하였고, 아들 치천경왕 유유가 왕위를 계승하였다.
2.1. 치천왕 즉위
원광 6년(기원전 130년)에 아버지 치천의왕이 죽자, 그 뒤를 이어 치천왕이 되었다.
원삭 2년(기원전 127년), 제나라 왕 유차창이 자살하고 봉국이 폐지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제나라 시조 제도혜왕의 자손에게 세워준 제후국은 망한 제나라 외에 교서나라·교동나라·제북나라·치천나라·성양나라 다섯 나라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 중 교서, 교동, 제북 세 나라에는 이미 제도혜왕의 후예가 끊겨 다른 왕가가 들어섰으므로, 남은 제도혜왕의 자손은 치천나라와 성양나라 두 왕가뿐이었다. 그 중 치천나라가 제나라에 더 가까웠으므로, 치천나라가 제도혜왕의 무덤을 둘러싼 임치 동쪽 지역을 받아 제도혜왕의 제사를 받들게 되었다.
2.2. 제도혜왕 제사 승계
원삭 2년(기원전 127년), 제나라 왕 유차창이 죄를 짓고 자살하면서 제나라의 봉국이 폐지되었다. 당시 제나라의 시조인 제도혜왕의 후손이 세운 제후국으로는 폐지된 제나라 외에 교서나라, 교동나라, 제북나라, 치천나라, 성양나라 다섯 나라가 있었다. 그러나 교서, 교동, 제북 세 나라는 이미 제도혜왕의 후예가 끊기고 다른 왕가가 들어선 상태였으므로, 실제로 제도혜왕의 제사를 이을 수 있는 후손은 치천나라와 성양나라의 왕가뿐이었다.
두 나라 중 치천나라가 옛 제나라의 중심지와 더 가깝다는 점을 고려하여, 치천나라가 제도혜왕의 무덤이 있는 임치 동쪽 지역을 넘겨받아 제도혜왕의 제사를 받들게 되었다.
2.3. 사망
치천정왕 20년(기원전 110년), 치천정왕은 죽고 아들 치천경왕 유유가 뒤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