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백조
1. 개요
유백조는 전한의 동양후로, 아버지 유봉친의 뒤를 이어 동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이 멸망하고 왕망이 신나라를 건국하면서 작위가 박탈되었다. 반고의 《한서》 권15하 왕자후표 下에 유백조에 대한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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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전한의 쇠퇴와 왕망의 집권
아버지 유봉친의 뒤를 이어 동양후(東陽侯) 작위를 계승했다. 그러나 전한이 왕망에 의해 멸망하면서 황족으로서 누리던 작위 또한 박탈되었다. 이는 전한 말기 황실의 권위가 약화되고 왕망과 같은 외척 세력이 권력을 장악해가는 혼란스러운 시대상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2.2. 동양후 작위 박탈의 의미
아버지 유봉친의 뒤를 이어 동양후 작위를 계승하였다. 그러나 왕망이 전한을 멸망시키고 신을 건국하면서 제후로서의 작위를 박탈당했다. 유백조의 작위 박탈은 단순한 개인의 몰락이 아니라, 전한 황실을 지지하던 제후 세력이 약화되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왕망은 이처럼 제후 세력을 약화시켜 자신의 권력 기반을 강화하고 신나라 건국의 토대를 마련했다.
3. 출전
* 반고, 《한서》 권15하 왕자후표 下
4. 가계
아버지: 유봉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