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순 (공구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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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유순은 전한의 제후로, 노공왕의 아들이다. 원삭 3년(기원전 126년)에 공구후에 봉해졌으며, 30년 뒤인 기원전 97년에 사망하여 시호를 이(夷)라 하였고, 아들 유치가 작위를 이었다.

유순 (공구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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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원삭 3년(기원전 126년), 공구(公丘侯)에 봉해졌다.

공구이후 30년(기원전 97년)에 죽으니 시호를 이(夷)라 하였고, 아들 유치가 작위를 이었다.

2.1. 봉작

원삭 3년(기원전 126년), 공구(公丘侯)에 봉해졌다.

공구이후 30년(기원전 97년)에 죽으니 시호를 이(夷)라 하였고, 아들 유치가 작위를 이었다.

2.2. 통치

원삭 3년(기원전 126년), 공구후(公丘侯)에 봉해졌다.

공구이후 30년(기원전 97년)에 죽으니 시호를 이(夷)라 하였고, 아들 유치가 작위를 이었다.

2.3. 사망

원삭 3년(기원전 126년), 공구(公丘侯)에 봉해졌다.

공구이후 30년(기원전 97년)에 죽으니 시호를 이(夷)라 하였고, 아들 유치가 작위를 이었다.

3. 가계

4. 평가

5. 출전

유순(劉順, ? ~ 기원전 97년)은 전한의 제후로, 노공왕의 아들이다. 노공왕이 를 다스린지 26년만에 죽자 그 뒤를 이어 노왕이 되었다.

노공왕은 아들이 많았는데, 유순은 기원전 126년 3월 을묘일에 공구후(共句侯)에 봉해졌다. 공구후는 30년간 유지되었고, 시호를 이후(夷侯)라 하였다. 아들 공구강후 유치가 작위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