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회 (조공왕)
1. 개요
유회(조공왕)는 전한 초기의 인물로, 양왕과 조왕을 역임했다. 기원전 196년에 양왕으로 봉해졌고, 기원전 183년에는 동생 유우가 죽자 조왕으로 전봉되었으나, 아내 여씨의 횡포와 측실의 죽음으로 인해 비극적인 삶을 살았다. 여씨는 고모할머니 여치의 권세를 등에 업고 유회를 감시했으며, 유회가 총애하는 측실을 독살하기까지 했다. 이에 유회는 슬픔에 빠져 자결했고, 조왕으로 재위한 지 반 년 만에 생을 마감했다. 이후 여록이 조왕의 자리를 이었다.
| 이름 | 유회(劉恢) |
|---|---|
| 작위 | 조공왕(趙共王) |
| 시호 | 공(共) |
| 출생 | 기원전 200년대 |
|---|---|
| 사망 | 기원전 181년 |
| 사인 | 자살 |
| 배우자 | 여씨(呂氏) |
| 아버지 | 유방 |
|---|---|
| 어머니 | 조희 |
| 형제 | 유비, 유여의, 유건, 유항, 유장, 유흥거, 유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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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81년 사망 -
프톨레마이오스 5세 에피파네스
프톨레마이오스 5세 에피파네스는 프톨레마이오스 4세의 아들로 기원전 210년에 태어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으며, 제5차 시리아 전쟁에서 패배하고 로마의 중재로 클레오파트라 1세와 결혼했으며, 로제타석 제작을 통해 치세를 칭송받았고, 이집트 원주민의 반란이 지속되는 가운데 프톨레마이오스 6세 등을 자녀로 두었다. -
기원전 181년 사망 -
유건 (연영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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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 고제의 황자 -
유여의
전한 고조 유방의 아들 유여의는 척부인의 소생으로 고조의 총애를 받았으나, 여태후와 중신들의 반대로 황태자 경쟁에서 실패한 후 대왕과 조왕에 봉해졌지만 여태후의 미움을 받아 독살당하고 그의 죽음은 혜제에게 정치적 무관심을 야기했다. -
전한 고제의 황자 -
전한 혜제
전한 혜제는 고조 유방과 여태후의 적자로 태어나 전한의 제2대 황제에 즉위했으나, 여태후의 섭정으로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정치에 뜻을 잃어 국정을 소홀히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
전한 사람 -
전한 무제
전한의 제7대 황제인 전한 무제는 54년간 재위하며 유교 기반 중앙집권 강화, 흉노 정벌을 통한 영토 확장, 소금과 철의 전매제 등 경제 개혁을 추진하여 전한의 최전성기를 이끌었으나, 과도한 군사 지출, 사치스러운 생활, 무고의 난 등 부정적인 면모도 보였다. -
전한 사람 -
구독
구기(緱起)는 전한 시대에 기후(騎虎)에 봉해지고 태상(太常)을 역임한 인물로, 기원전 32년 사망 후 그의 아들 구숭(求崇)이 기후 자리를 계승했다.
2. 생애
기원전 196년 여름, 양왕 팽월이 모반 혐의로 처형되자 유회는 양왕이 되었다. 기원전 183년경, 동생 조왕 유우가 여치에게 굶어 죽임을 당하자 유회는 조왕으로 옮겨 봉해졌다. 양국은 '여국(呂國)'으로 개칭되었고, 여치의 조카 여산이 봉해졌다. 유회는 여산의 딸을 아내로 맞이했으나, 아내 여씨는 고모할머니 여치와 아버지의 권위를 내세워 남편을 감시하며 오만하고 질투심이 강했다. 유회는 총애하는 측실과 함께 지냈는데, 여씨는 측실을 독살했다. 유회는 크게 슬퍼하며 측실을 위한 추도가를 만들게 하고 그리워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독을 마시고 자결했다. 유회의 조왕 재위 기간은 반 년에 불과했다. 이후 여록이 유회의 뒤를 이어 조왕에 봉해졌다.
2.1. 양왕 시절
기원전 196년 여름, 양왕 팽월이 모반 혐의로 처형되자 유회는 새로운 양왕이 되었다. 기원전 183년경, 바로 아래 동생인 조왕 유우가 여치의 분노를 사 유폐되어 굶어 죽자, 유회는 조왕으로 옮겨 봉해졌다. 양국은 '여국(呂國)'으로 개칭되었고, 여치의 조카인 여산이 봉해졌다. 그 후 유회는 여산의 딸을 아내로 맞이했다.
2.2. 조왕 시절
기원전 196년 여름, 팽월이 모반 혐의로 처형되자 유회는 양왕에 봉해졌다. 기원전 183년경, 동생 유우가 여치에게 굶어 죽임을 당하자 조왕으로 옮겨 봉해졌다. 양국은 '여국(呂國)'으로 개칭되었고, 여치의 조카 여산이 봉해졌다. 유회는 여산의 딸을 아내로 맞이했다.
2.2.1. 자결
기원전 183년경, 바로 아래 동생인 조왕 유우가 여치의 분노를 사 유폐되어 굶어 죽자, 유회는 조왕으로 전봉되었다. 양국은 '여국(呂國)'으로 개칭되었고, 여치의 조카인 여산이 봉해졌다. 유회는 여산의 딸을 아내로 맞이했다.
아내 여씨는 고모할머니 여치와 아버지의 권위를 내세워 남편을 감시하며 오만하고 질투심이 강했다. 유회는 아내와 잠자리를 함께 하지 않고 총애하는 측실과 함께 지냈다. 그런데 여씨는 남편의 틈을 타 그 측실을 독살했다. 측실의 비참한 죽음을 들은 유회는 크게 슬퍼하며, 그녀를 위해 추도가를 만들어 궁전 악인에게 연주하게 하고 사랑하는 측실을 그리워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인생에 절망한 유회는 죽은 측실의 뒤를 따라 독을 마시고 자결했다. 유회의 조왕으로서의 재위는 불과 반 년이었다.
그 후, 승상 진평 등의 상주에 따른 요청으로, 여치의 조카이자 여산의 사촌인 여록이 유회의 뒤를 이어 조왕에 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