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특무부대 축구단
1. 개요
육군 특무부대 축구단은 한국전쟁 중인 1953년에 창설되어 1965년 6월 해체된 축구팀이다. 1960년 육군 특무부대가 육군 방첩부대로 개칭되면서 팀명도 육군 방첩부대 축구단으로 변경되었다. 특무부대 축구단은 김창룡 특무부대장의 지시로 일어난 두 가지 사건으로 한국 축구사에 기록되었다. 첫 번째는 조선방직 축구단과의 경기에서 패배 후 응원단과 관련자들을 체포한 사건이며, 두 번째는 1954년 전국체전에서 일몰로 경기가 중단되자 지프차 20여 대를 동원해 경기를 강행하려 했던 사건이다.
| 클럽 이름 | 특무대 / 방첩대 / CIC / 서울축구구락부 |
|---|---|
| 풀 네임 | 육군 특무부대 축구단 |
| 설립연도 | 1953년 |
| 해산연도 | 1965년 6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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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축구단 -
육군 축구단
육군 축구단은 대한민국 육군에서 운영했던 여러 축구단을 통칭하며, 1965년 이전에는 다양한 부대별 축구단이 존재했고, 이후 병참단과 공병단 축구단이 주축을 이루다 1969년 단일 축구단으로 재편되어 원호단, 충의, 웅비 등으로 명칭이 변경되었으며, 한국 축구 발전에 기여한 주요 선수들을 배출했다. -
대한민국의 군사 축구단 -
양지 축구단
양지 축구단은 1967년 중앙정보부의 반공주의 목표 아래 창단되어, 1969년 AFC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 진출했으나, 1970년 해체되었다. -
대한민국의 군사 축구단 -
육군 축구단
육군 축구단은 대한민국 육군에서 운영했던 여러 축구단을 통칭하며, 1965년 이전에는 다양한 부대별 축구단이 존재했고, 이후 병참단과 공병단 축구단이 주축을 이루다 1969년 단일 축구단으로 재편되어 원호단, 충의, 웅비 등으로 명칭이 변경되었으며, 한국 축구 발전에 기여한 주요 선수들을 배출했다. -
대한민국의 없어진 축구단 -
승동소학교 축구단
승동소학교 축구단은 1923년 전국체육대회 축구 소학부에 참가하여 1경기 1패, 0득점 6실점으로 7강을 기록했다. -
대한민국의 없어진 축구단 -
용인시청 축구단
용인시청 축구단은 2010년 창단되어 2016년 해체된 대한민국 내셔널리그 소속 축구팀이며, 2012년 전국체육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2. 역사
육군 특무부대 축구단은 1953년 한국전쟁 기간 중에 창설되어 1965년 6월 해체되었다. 1960년 7월 육군 특무부대가 육군 방첩부대로 개칭됨에 따라 축구단 명칭도 육군 방첩부대 축구단으로 바뀌었다.
특무부대 축구단은 한국 축구사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두 가지 사건으로 유명하다. 조선방직 축구단과의 경기에서 벌어진 사건과 1954년 전국체전 축구 일반부 준결승전에서 김창룡 특무부대장의 지시로 지프차 20여 대를 동원해 헤드라이트를 비춰 경기를 강행하려 했던 사건이다.
2.1. 창설과 해체
1953년 한국 전쟁 기간 중에 창설되어 1965년 6월 해체되었다. 1960년 7월 육군 특무부대가 육군 방첩부대로 개칭됨에 따라 축구단 명칭도 육군 방첩부대 축구단으로 개칭되었다.
특무부대 축구단은 한국 축구사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두 가지 해프닝의 주역이다.
첫 번째는 특무부대와 조선방직 축구단과의 경기에서, 축구를 넘어 한국 스포츠 사상 가장 난폭했던 순간으로 기록된다. 특무부대가 우세한 경기를 하고도 무승부로 끝나고, 추첨으로 승리 팀을 가리게 되었는데, 추첨 결과 특무부대가 패하게 되었다. 이에 조선방직 응원단이 크게 기뻐하자, 당시 특무부대장 김창룡은 분노하여 응원단과 조선방직 축구단 관련자들을 모두 잡아들이라고 지시했다. 이때 조선방직의 대구지점 간부로 있던 손기정까지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손기정은 특무부대 감독 민병대의 주선으로 곧 풀려났으며, 이 사건을 계기로 특무부대 육상단이 창설되어 손기정이 코치직을 맡게 되었다. 이는 휴전 직후 군인들의 강한 승부욕 때문에 벌어진 해프닝으로 전해진다.
두 번째는 1954년 전국체전 축구 일반부 준결승전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당시 특무부대 축구단이 5:0으로 이기고 있다가 일몰로 경기가 중단되자, 김창룡 특무부대장은 지프차 20여 대를 동원해 헤드라이트를 비춰 경기를 강행하려 했다.
위 두 사건은 1950년대에 벌어진 일로, 당시 기사가 남아있지 않고 후대에 기억에 의존해 쓰여졌기 때문에 관련 기사마다 시기와 참여했던 대회가 조금씩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참고해야 한다.
2.2. 주요 사건
1953년 한국전쟁 기간 중에 창설되어 1965년 6월 해체되었다. 1960년 7월 육군 특무부대가 육군 방첩부대로 개칭됨에 따라 축구단 명칭도 육군 방첩부대 축구단으로 개칭되었다.
특무부대 축구단은 한국 축구사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두 가지 사건의 주역이다.
* 조선방직 축구단과의 경기에서 벌어진 사건: 축구 경기를 넘어 한국 스포츠 사상 가장 난폭했던 순간으로 기록된다. 특무부대가 우세한 경기를 하고도 무승부로 끝났고, 추첨으로 승리 팀을 가리게 되었으나 추첨 결과 특무부대가 패했다.
* 1954년 전국체전 축구 일반부 준결승전에서 벌어진 사건: 특무부대 축구단이 5:0으로 이기다가 일몰로 경기가 중단되자, 김창룡 특무부대장의 지시로 지프차 20여 대를 동원해 헤드라이트를 비춰 경기를 강행하려 했다.
위 두 사건은 1950년대에 벌어진 사건으로, 당시 기사가 남아 있지 않고 후대에 기억에 의존해 쓰여졌던 것으로 보아 관련 기사들마다 시기와 참여했던 대회가 조금씩 다른 점을 참고해야 한다.
2.2.1. 조선방직 축구단과의 경기
특무부대 축구단은 한국 축구 역사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두 가지 사건의 주인공이다.
첫 번째는 특무부대와 조선방직 축구단과의 경기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이 경기는 한국 스포츠 사상 가장 난폭했던 순간으로 기록되는데, 특무부대가 우세한 경기를 펼치고도 무승부로 끝났다. 추첨으로 승리팀을 가리게 되었고, 추첨 결과 특무부대가 패하게 되었다. 이에 당시 특무부대장 김창룡은 분노하여 조선방직 응원단과 조선방직 축구단 관련자들을 모두 잡아들이라고 지시했다. 이때 조선방직의 대구지점 간부로 있던 손기정까지 같이 붙들려 가는 사건이 일어났다. 손기정은 특무부대 감독인 민병대의 주선으로 바로 풀려났고, 이 일을 계기로 특무부대 육상단까지 창설해 코치직을 맡았다. 이 사건은 휴전 직후 군인들의 강한 승부욕 때문에 벌어진 해프닝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