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민 (19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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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최정민은 1930년에 태어난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이다. 평양에서 성장하여 축구 선수로 활동했으며, 1954년 FIFA 월드컵에 출전했다. 1956년과 1960년 AFC 아시안컵 우승을 이끌었으며, 1954년과 1958년 아시안 게임에서 은메달을 획득하여 '아시아의 황금 다리'라는 별칭을 얻었다. 은퇴 후에는 양지 축구단 감독을 맡아 1967년 메르데카 국제축구대회 우승, 1969년 AFC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기록했고, 1977년에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잠시 역임했다.

최정민 (1930년)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최정민
출생일1930년 8월 30일
출생지평안남도 대동군
사망일1983년 12월 8일
사망지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학교 병원
178cm
포지션스트라이커
별칭황금의 발
선수 경력
유소년 클럽알 수 없음
클럽대한민국 국군 CIC (?–1963)
국가대표 경력
국가대표팀대한민국
국가대표 연도1953–1961
국가대표 출장 (골)47 (22)
감독 경력
감독 연도1967–1968
감독 클럽양지
감독 연도 (2)1977
감독 클럽 (2)대한민국
메달 기록
AFC 아시안컵1956 홍콩: 금메달 (팀)
1960 대한민국: 금메달 (팀)
아시안 게임1954 마닐라: 은메달 ()
1958 도쿄: 은메달 ()
한국어 이름
한글최정민
한자崔貞敏
로마자 표기Choe Jeong-min
매큔-라이샤워 표기Ch'oe Chŏng-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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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선수 시절

평안남도 대동군에서 태어난 최정민은 3살 때 가족과 함께 평양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성장했다. 평양종로초등학교와 평양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평양체신전문학교를 중퇴한 뒤 축구 선수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1·4 후퇴 당시 월남한 후 육군 특무부대 축구단 등에서 활동했으며, 김용식 감독에 의해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1954년 FIFA 월드컵 본선에도 출전했다.

178cm의 큰 키에도 불구하고 날렵한 드리블과 강력한 슈팅으로 팬들의 인기를 얻은 최정민은 1956년 AFC 아시안컵, 1960년 AFC 아시안컵에서 대한민국의 2회 연속 우승을 이끌었다. 또한 1954년 아시안 게임1958년 아시안 게임에서 통산 5골을 기록하며 2회 연속 은메달을 획득하여 '아시아의 황금 다리'라는 별명을 얻었다.

최정민은 한국 전쟁 중 남쪽으로 이주하여 국군방첩사령부에 입대했다. 1952년부터 국군방첩사령부 축구팀과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선수로 활약했다. 대한민국은 1954년 FIFA 월드컵 예선을 위해 일본으로 가서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과 경기를 치렀는데, 일제강점기의 영향으로 일본과의 경기에 큰 부담감을 느꼈다. 그는 두 경기에서 3골을 기록했고, 대한민국은 합계 7-3으로 일본을 꺾고 월드컵에 진출했다. 하지만 1954년 FIFA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은 헝가리와 터키 축구 국가대표팀에게 패했다.

3. 은퇴 이후

선수 은퇴 후 1966년부터 1969년까지 양지 축구단의 창단 감독을 역임하는 동안 1967년 메르데카 국제축구대회 우승, 1969년 AFC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이끌었고, 1977년에는 잠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맡기도 하였으며, 이후 1983년 12월 고려대병원에서 지병으로 향년 53세에 숨졌다.

4. 수상 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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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내역
대한민국 육군 특무부대
대한민국

4.1. 선수

평안남도 대동군에서 태어나, 1·4 후퇴 때 남쪽으로 내려온 후 육군 특무부대 축구단 등에서 활동했다. 김용식 감독에 의해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1954년 FIFA 월드컵 본선에 출전하기도 했다.

178cm의 큰 키에도 불구하고, 날렵한 드리블과 강력한 슈팅으로 인기를 얻었다. 이러한 장점을 바탕으로 1956년 AFC 아시안컵, 1960년 AFC 아시안컵에서 대한민국의 연속 우승을 이끌었다. 1954년 아시안 게임1958년 아시안 게임에서도 통산 5골을 기록하며, 팀에 2회 연속 아시안 게임 은메달을 안겨 '아시아의 황금 다리'라는 별명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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