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민
1. 개요
윤성민은 대한민국의 군인으로,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육군 참모차장, 제23대 국방부 장관을 역임했다. 12.12 군사반란 당시 육군 참모차장으로서 군 지휘 계통의 최고 자리에 올랐으나, 반란군 진압에 소극적인 대처를 보였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후 1군 사령관으로 승진했으며, 퇴임 후 한국석유공사 이사회 의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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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윤성민 |
|---|---|
| 한자 표기 | 尹誠敏 |
| 아명 | 윤석민(尹奭敏) |
| 출생일 | 1926년 10월 15일 |
| 출생지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무안 |
| 사망일 | 2017년 11월 6일 |
| 사망지 | 서울, 대한민국 |
| 종교 | 개신교 |
| 본관 | 파평(坡平) |
| 복무 | 대한민국 육군 |
|---|---|
| 복무 기간 | 1950년~1982년 |
| 최종 계급 | 대장 |
| 근무 | 합동참모본부 |
| 지휘 | 합동참모총장 |
| 주요 참전 전투/전쟁 |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 |
| 참전 전투 | 12·12 군사반란 |
| 주요 지휘 | 대한민국 육군 차장 제1군단 군단장 합동참모총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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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이력 | 국방부 장관 (1982–1986) 대한석유개발공사 이사장 대한방직협회 회장 현대정유공업 상임고문 자유민주연합 특임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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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대일 | 1950년 |
|---|---|
| 전역일 | 198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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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고등학교 동문 -
박지원 (194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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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고등학교 동문 -
박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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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합동참모의장 직무대리 -
한민구
한민구는 대한민국의 군인 및 정치인으로, 육군사관학교 졸업 후 육군참모총장, 합동참모의장 등 요직을 거쳐 제44대 국방부 장관을 역임했으며, 현재 중원대학교 석좌교수 및 충청북도 특별명예고문으로 활동 중인 항일 의병장 한봉수의 손자이다. -
대한민국의 합동참모의장 직무대리 -
김동진 (1938년)
김동진은 대한민국 육군 대장 출신으로 제33대 국방부 장관을 역임했으며, 베트남 전쟁 참전, 육군참모총장과 합동참모의장 역임, 한미연합사령부 부사령관 등의 경력을 거쳐 한국군 현대화에 기여하고 한경대학교 초빙교수와 자유민주연합 특임위원으로도 활동했다. -
무안군 출신 -
박승재
박승재는 대한민국의 정치학자이자 민주정의당 소속으로 제13대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인으로,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한양대학교 교수 및 한국정치학회 이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
무안군 출신 -
정태균 (법조인)
정태균은 대한민국의 법조인으로, 검사로서 주요 요직을 거쳐 검사장을 역임하고 법무부 차관과 대법관을 지냈으며, 마약 범죄 수사 확립, 주요 사건 수사, 청소년 선도 조건부 기소유예 제도 도입에 기여했다.
2. 학력
* 순천고등보통학교 수료
* 문태고등보통학교 졸업
* 육군사관학교 9기
* 육군보병학교 초등군사반 졸업
* 미국 육군 보병학교 고등군사반 졸업
* 미국 육군 포병학교 고등군사반 졸업
* 육군공병학교 고급지휘반 졸업
* 육군기계화학교 고급지휘반 졸업
* 육군대학 졸업
* 국방대학교 행정학사 졸업
* 국방대학교 국방대학원 행정학 석사 졸업
*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졸업
3. 12.12 군사반란
12.12 군사반란 당시 육군 참모차장이었다. 정승화 참모총장이 신군부 세력에게 연행된 후 군 지휘권을 인수받았으나, 결과적으로 반란군의 서울 진입을 막지 못했다. 그는 반란군 진압을 위한 병력 동원을 주저하고 오히려 수도권 부대의 출동을 저지하는 명령을 내렸는데, 이는 반란 성공의 한 요인이 되었다는 평가가 있다. 사건 이후 다른 관련 장성들과 달리 제1야전군사령관으로 영전했다.
3.1. 비판과 논란
12.12 군사반란 당시 대한민국 육군 참모차장이었다.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 정승화가 신군부 세력에게 불법적으로 납치된 후, 군 지휘 체계상 최고 자리에 올라 정부군을 지휘하게 되었다. 그러나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한 병력 동원 결정을 신속하게 내리지 못하고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였다. 결국 반란 주도 세력인 전두환에게 설득당해 정부군 병력 출동을 저지하는 명령을 내렸고, 이는 반란군이 별다른 저항 없이 서울을 장악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사건 이후 쿠데타 진압에 실패했거나 저항했던 다른 장성들이 강등되거나 보직 해임된 것과 달리, 윤성민은 오히려 1군 사령관으로 영전했다. 쿠데타 당시 그의 소극적인 대처와 우유부단함이 역설적으로 전두환 등 신군부 세력의 호감을 산 결과라는 평가가 있으며, 이로 인해 신군부에 협조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과 비판이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