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흥
1. 개요
융흥은 남송 효종의 연호로, 1163년부터 1164년까지 사용되었다. 1162년 12월 23일에 효종의 즉위와 함께 유년 개원의 조서가 내려졌고, 1163년 2월 5일에 정식으로 융흥으로 연호가 정해졌다. 융흥 연간에는 장준의 북벌 준비, 북벌군의 실패, 금과의 화의 시도 등의 사건이 있었으며, 1165년 1월 1일에 건도로 개원되었다.
2. 연대기
소흥 32년 11월 16일(율리우스력 1162년 12월 23일)에 효종의 즉위와 더불어 다음 해를 융흥 원년으로 하는 유년 개원의 조서가 내려졌다. 그리고 1월 1일(율리우스력 1163년 2월 5일)에 정식으로 연호를 융흥으로 정하였다.
융흥 원년(1163년) 정월 9일, 장준이 추밀사에 임명되어 북벌을 준비하였다. 4월 28일에는 송나라 북벌군이 출정하였으나, 5월 24일 부리에서 금군에게 대패하였다. 6월 14일에는 북벌의 실패를 자인하는 효종의 "죄기조"가 내려졌다. 7월에는 명주에 연해제치사가 복치되었고, 8월 20일에는 금이 회북을 반환하고 세폐 지급을 조건으로 화의를 요청하였다. 10월 24일에는 홍주를 융흥부로 고쳤다.
융흥 2년(1164년) 3월, 광서의 도적을 토벌하였다. 7월 2일에는 회북 포기에 반대했던 우윤문이 소환되었고, 8월 28일에는 장준이 사망하였다. 10월 2일 송나라 사자가 우이의 금군 진영에 이르렀지만, 조건 미비를 이유로 거절당했다. 10월 29일 금군이 회남을 침구하자, 11월 5일 변경 장사를 초유하는 조칙이 내려졌고, 11월 15일 송나라가 금에 화의를 요청하였다.
융흥 3년(1165년) 정월 초하루에 연호를 건도로 즉시 개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