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희
1. 개요
개희는 남송 영종의 연호로, 1205년부터 1207년까지 사용되었다. 1204년 12월 11일에 이듬해부터 개원한다는 조서가 내려졌으며, 1207년 12월 26일에는 다음해부터 가정으로 개원한다는 조서가 내려졌다. 이 기간 동안 금나라와의 관계, 한탁주의 실각 등 주요 사건들이 발생했다.
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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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2. 연대 대조표
3. 주요 사건
가태 4년(1204년) 12월 11일 이듬해부터 개원한다는 조서가 내려왔다.
개희 원년(1205년) 5월, 금나라가 송나라에 국경에서의 소란을 책망하였다. 7월 5일 한탁주가 평장군국사에 임명되어 재상의 자리에 올랐다.
개희 2년(1206년) 4월 19일 진회의 왕작을 박탈하였다. 5월 7일 금나라에 대한 북벌 조칙이 내려졌다. 7월 3일 아주의 남만이 반란을 일으켰으나 진압되었다. 10월 29일 금나라 군대가 회수를 건너 남침하였다. 11월, 회남에서 대산관에 이르는 곳곳에서 송나라 군대가 패주하였다. 12월 27일 사천의 오희가 금나라와 내통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개희 3년(1207년) 2월 28일 오희를 주살하였다. 4월, 송나라가 금나라에 화의를 청하였다. 7월 11일 메뚜기와 수해의 재변으로 인해 영종의 「죄기조」가 내려졌다. 11월 3일 사미원 주도의 정변이 일어나 한탁주는 실각하여 살해되었다. 12월 26일 이듬해부터 “가정”으로 개원한다는 조서가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