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고리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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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고리 2세는 체르니히우의 올레크 스뱌토슬라비치의 아들로, 1146년 형 프세볼로트 2세의 뒤를 이어 키예프 대공이 되었으나, 이자슬라프 2세를 지지하는 키예프 주민들에 의해 감옥에 갇혔다. 석방 후 수도원에서 지내다 1147년 이자슬라프를 살해하려는 올레그 일족의 음모와 연루되어 키예프 베체에 의해 처형당했다. 동방 정교회는 그를 성인으로 추대했으며, 유해는 체르니고프의 구세주 변모 대성당에 안치되었다. 그의 축일은 9월 19일이며, '정의로운 신앙'과 '순교자'라는 칭호로 존경받는다.

이고리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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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체르니히우올레크 스뱌토슬라비치 공작의 아들로 태어났다. 1146년 형인 프세볼로트 2세가 사망하자 키예프 대공으로 즉위했으나, 키예프 주민들은 이자슬라프를 지지했다.

이고리는 이자슬라프와의 전쟁에서 패배하여 키예프 주민들에게 감옥에 갇혔다. 이후 질병으로 석방되어 수도원에 정착했고, 병이 회복된 후에도 수도원에 남았다.

2.1. 권력 투쟁과 죽음

1146년 8월 1일, 형 브세볼로드가 사망하자 그의 유언에 따라 키예프 대공 자리를 계승했다. 그러나 키예프 사람들은 몰래 페레야슬라프 공 이쟈슬라프에게 대공위에 오르도록 요청했다. 이고리와 이쟈슬라프 사이에 전투가 벌어지자 키예프 군대는 이쟈슬라프 측으로 돌아서 이고리는 붙잡혀 유폐되었다. 이후 병을 얻어 석방된 이고리는 수도원에 들어가 스키마(Схима러시아어)가 되었다. 병에서 회복된 후에도 수도원에서 지냈다.

1147년, 이쟈슬라프를 살해하려는 올레그 일족(이고리 형제의 아버지 올레그에서 시작된 일족)의 음모가 드러나자, 키예프의 베체(민회)는 보복으로 이고리를 처형하기로 결정했다. 사람들은 성찬 예식 중인 교회에 들이닥쳐 성모의 이콘 앞에서 이고리를 붙잡았다. 이고리는 살해되었고, 시체는 시장에 내걸렸다.

이고리는 처음에는 키예프 교외의 성 시메온 수도원에 매장되었으나, 1150년에 불후체가 된 그의 유해는 동생 스뱌토슬라프에 의해 체르니고프의 구세주 변모 대성당에 안치되었다. 성유해를 안치한 날(6월 5일)과 살해된 날(9월 19일)이 이고리의 기념일이 되었다. (그레고리력으로는 6월 18일10월 2일에 해당한다).

2.2. 사후

이고리 2세는 동방 정교회에서 성인으로 존경받으며, 축일은 9월 19일이다. 그는 "정의로운 신앙"과 "순교자"라는 성인 칭호를 받았다.

이고리는 처음에는 키예프 교외의 성 시메온 수도원에 매장되었으나, 1150년에 그의 유해는 불후체로, 동생 스뱌토슬라프에 의해 체르니고프의 구세주 변모 대성당에 안치되었다. 이 성유해를 안치한 날(6월 5일)과 살해된 날(9월 19일)이 이고리의 기념일이 되었다. (ἡμερολόγιον고대 그리스어으로는 6월 18일10월 2일에 해당한다).

3. 성인 추대

동방 정교회에서 성인으로 존경받으며, 축일은 9월 19일이다. 그는 "정의로운 신앙"과 "순교자"라는 성인 칭호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