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이다 기요노리
1. 개요
이마이다 기요노리는 오카야마현 출신으로, 도쿄제국대학 법과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체신성 관료로 시작하여 체신차관,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을 역임했다. 그는 1910년 오사카 중앙우체국장을 시작으로 여러 요직을 거쳤으며, 1914년부터 1915년까지 통신 사업 연구를 위해 유럽 유학을 다녀왔다. 1931년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으로 발탁되었으며, 1936년 퇴임 후 귀족원 칙선의원으로 활동하다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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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이마이다 기요노리 |
|---|---|
| 로마자 표기 | Imaida Kiyotoku |
| 출생 | 1900년 3월 22일 |
| 사망 | 1986년 6월 8일 (86세) |
| 출신교 | 도쿄 제국대학 법학부 졸업 |
| 직업 | 관료 정치인 |
| 소속 정당 | 자유민주당 |
|---|---|
| 주요 경력 | 내각총리대신비서관 자치대신 국가공안위원회 위원장 참의원 의원 (4기) |
| 1923년 | 고등문관시험 행정과 합격 |
|---|---|
| 1924년 | 내무성 입성 |
| 이시카와현 경찰부장 | 군마현 경제부장 시즈오카현 내무부장 |
| 1945년 | 미야기현 내무부장 |
| 1946년 | 경제안정본부 총무부장 |
| 1948년 | 내각관방장관비서실장 |
| 1950년 | 내각총리대신비서관 |
| 1953년 | 참의원 전국구 당선 (자유당) |
| 1959년 | 참의원 전국구 당선 (자유민주당) |
| 1965년 | 참의원 전국구 당선 (자유민주당) |
| 1967년 | 제2차 사토 내각 자치대신, 국가공안위원회 위원장 |
| 1971년 | 참의원 전국구 당선 (자유민주당) |
| 훈장 | 훈1등 욱일대수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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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한국사 -
토기
토기는 점토를 구워 만든 그릇으로, 일본에서는 구움 정도에 따라 도자기, 자기와 구분되며 인류 최초의 화학적 변화 응용 사례로 식생활과 문화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고, 다원설이 유력한 발상지와 일본 열도 1만 6500년 전 토기 발견이 특징이며, 일본어 관점에서 정의, 역사, 제작 과정, 용도, 세계 각지 토기 문화를 설명한다. -
1940년 사망 -
마이클 조지프 새비지
마이클 조지프 새비지는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으로 뉴질랜드 노동당 창당에 기여하고 총리직에 올라 사회 보장 제도 도입, 방송 국영화 등 정책을 추진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참전을 결정하고 뉴질랜드 복지 국가 설계자로 평가받았다. -
1940년 사망 -
윤덕영
윤덕영은 조선 말기 문신이자 대한제국 관료, 일제 강점기 조선귀족으로, 한일 병합 조약에 적극 가담하고 순종의 일본 천황 알현을 강요했으며 고종 독살 의혹을 받았고, 친일파 명단에 포함되었다. -
조선총독부 -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는 1910년부터 1945년까지 35년간 지속된 시기로, 강제 병합, 경제적 착취, 정치적 억압, 문화적 동화 정책 등이 특징이며, 3·1 운동과 같은 독립 운동이 전개되었고, 위안부 문제 등 심각한 인권 유린이 있었으며, 현재까지도 다양한 논의와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
조선총독부 -
3·1 운동
3·1 운동은 1919년 일본의 무단 통치에 저항하여 시작된 한국의 독립운동으로, 민족대표 33인의 독립선언서 낭독을 시작으로 전국으로 확산되었으며, 일본의 무력 진압으로 많은 사상자를 냈지만 대한민국 임시 정부 수립의 계기가 되었다.
2. 생애
이마이다 기요노리는 오카야마현 출신으로, 오카야마 번사 구니시오 요사부로(国塩与三郎)의 삼남으로 태어나 이마이다 젠쥬로(今井田善十郎)의 양자가 되었다. 간사이 중학교, 제6고등학교를 거쳐 1909년 도쿄제국대학 법과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했다. 이후 체신성 관료, 조선총독부 정무총감, 귀족원 칙선의원 등을 역임하였다.
2.1. 관료 생활
오카야마현 출신으로 옛 오카야마 번사 구니시오 요사부로(国塩与三郎)의 삼남으로 태어나 이마이다 젠쥬로(今井田善十郎)의 양자가 되었다. 간사이 중학교, 제6고등학교를 거쳐 1909년 7월에 도쿄제국대학 법과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하였다. 통신속이 되어 체신성 통신국에 배속되었다가 동년 11월에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하였다. 1910년 4월에 통신사무관이 되어 오사카 중앙 우편국장으로 취임하였으며 이후 고베 체신관리국 총무부장, 체신성 전기국 관리과, 동부체신국 경리부 규화과장 등을 역임하였다. 1914년 2월부터 1915년 5월까지 통신사업 연구를 위해 영국, 독일, 프랑스에 유학했다. 귀국 이후 체신성 통신국 전화과장, 통신국 서무과장, 도쿄 체신국장, 구마모토 체신국장, 체신성 간이보험국장, 체신성 저금국장 등을 역임하였고 1927년 7월에 퇴관하였다. 같은 달 오사카 시 전기국장이 되어 1929년 7월까지 재임하였다. 1929년에 체신차관에 취임하였고 1931년에 우가키 가즈시게가 조선총독으로 취임하면서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으로 발탁되었다. 1936년 8월에 우가키 총독이 사임하자 정무총감에서 퇴임하였다.
2.2. 조선총독부 정무총감
1931년 우가키 가즈시게가 조선총독으로 취임하면서 정무총감으로 발탁되었다. 1936년 8월에 우가키 총독이 사임하자 정무총감에서 퇴임하였다. 같은 해 9월에 귀족원 칙선의원으로 선임되어 연구회 소속으로 사망할 때까지 재임하였다.
2.3. 정계 활동 및 사망
오카야마현 출신으로 1909년 7월 도쿄제국대학 법과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하였다. 1910년 4월 통신사무관이 되어 오사카 중앙 우편국장으로 취임하였으며, 이후 고베 체신관리국 총무부장, 체신성 전기국 관리과, 동부체신국 경리부 규화과장 등을 역임하였다. 1914년 2월부터 1915년 5월까지 통신사업 연구를 위해 영국, 독일, 프랑스에 유학했다. 귀국 후 체신성 통신국 전화과장, 통신국 서무과장, 도쿄 체신국장, 구마모토 체신국장, 체신성 간이보험국장, 체신성 저금국장 등을 역임하고 1927년 7월 퇴관하였다. 같은 달 오사카 시 전기국장이 되어 1929년 7월까지 재임하였다. 1929년 체신차관에 취임하였고, 1931년 우가키 가즈시게가 조선총독으로 취임하면서 정무총감으로 발탁되었다. 1936년 8월 우가키 총독의 사임에 따라 정무총감에서 퇴임하였다. 같은 해 9월 귀족원 칙선의원으로 선임되어 연구회 소속으로 사망할 때까지 재임하였다.
3.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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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가족 관계
| | 이름 || 비고 | ||
|---|---|---|
| 양자 | 이마이다 겐지로 | 구니시오(国塩) 출신, 체신성 관료 |
5. 저서 및 관련 자료
* 이마이다 기요노리 전(伝) 편찬회 편, 《이마이다 기요노리》, 다케다 야스오, 194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