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키 다쓰코
1. 개요
이마키 다쓰코는 곤츄나곤 이마키 사다나리의 딸로, 1823년 닌코 천황의 후궁으로 들어가 나이시노죠가 되었다. 1832년 다섯째 황자를 낳았으나 요절하였고, 1846년 닌코 천황 사후에는 코쥬인이라 칭했다. 1854년 대리 연소 사건으로 책임을 지고 두문불출하다가, 1875년 67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묘소는 교토시 산포지에 있다.
이마키 다쓰코
기본 정보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현재 이미지를 사용할 수 없음
| 본명 | 今城 媋子 (이마키 다쓰코) |
|---|---|
| 출생 | 1932년 1월 20일 |
| 사망 | 2015년 1월 2일 (82세) |
| 직업 | 일본의 서예가 |
| 분야 | 서예 |
| 서체 | 전서, 예서 |
| 주요 업적 | 일본 서예계 공헌 |
상세 정보
| 출생지 | 도쿄도 |
|---|---|
| 사망지 | 도쿄도 |
| 국적 | 일본 |
| 학력 | 일본여자대학 문학부 국문학과 졸업 도쿄대학 대학원 수료 |
| 사사 | 오자키 소운에게 사사 |
| 소속 | 일본 서예 미술원 이사, 전각 협회 회원 |
| 수상 | 일본 서예 미술전 문부대신상, 서예 예술원상 |
| 활동 | 일본 서예 미술전 심사원 일본 전각 협회 이사 |
| 스타일 | 고전 탐구와 현대적 감각의 조화 |
| 특징 |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부드러움 |
| 영향 | 현대 서예의 발전과 여성 서예가 양성에 기여 |
📚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이마키가 -
이마키 시게코
이마키 시게코는 1848년 고메이 천황의 후궁에서 시작하여 쇼쇼나이시가 되었고, 이와쿠라 도모미 등과 교류하며 정치적 견해를 공유했으며, 가즈노미야 강가를 추진했으나 배척당해 은거했다가 사면받아 복권된 인물이다. -
닌코 천황 -
오기마치 나오코
-
닌코 천황 -
다카쓰카사 야스코
다카쓰카사 야스코는 닌코 천황의 뇨고이자 고메이 천황의 양모로, 관백 다카쓰카사 마사히로의 딸이며 닌코 천황의 황녀를 낳았으나 요절 후 고메이 천황을 양자로 들여 그가 즉위하자 황태후가 되었으나 곧 사망하여 노치노쓰키노와 능에 묻혔다. -
19세기 일본 사람 -
우타가와 히로시게
우타가와 히로시게는 에도 시대 후기 우키요에 화가로, 풍경화 스타일을 확립하여 『도카이도 오십삼차』, 『에도 명소 백경』 등의 대표작을 남겼고 서양 인상파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
19세기 일본 사람 -
주만 가나에
주만 가나에는 메이지 시대의 교육자이자 야구 선수로, "야구"라는 용어를 일본에 정착시키고 일본 최초의 야구 전문서를 출판하여 일본 야구 용어 표준화와 이론 발전에 기여했으며, 교육계에서도 활동한 인물이다.
2. 생애
권중납언 이마키 사다나리의 딸로 태어나 1823년 닌코 천황의 후궁이 되었다. 쇼지(掌侍)로 일하며 1832년 황자를 낳았으나 요절하였다. 1846년 천황이 사망하자 출가하여 고준인(孝順院)이라 칭하였고, 1854년에는 다이리 화재의 책임을 지고 폐문되기도 했다. 1875년 67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묘소는 교토시 산포지에 있다.
2.2. 닌코 천황 후궁 시절
곤츄나곤 이마키 사다나리의 딸로 태어났다. 1823년 (분세이 6년)부터 닌코 천황의 후궁으로 들어가 쇼지(掌侍)가 되었다. 1832년 (덴포 3년)에 다섯째 황자인 조자쿠코인노미야(常寂光院宮)를 낳았지만, 황자는 곧 요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