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쓰카사 야스코
1. 개요
다카쓰카사 야스코는 다카쓰카사 마사히로의 딸로, 닌코 천황의 뇨고였다. 언니인 다카쓰카사 쓰나코가 사망한 후 닌코 천황에게 입내하여 뇨고가 되었고, 황녀를 출산했으나 요절했다. 이후 4황자 히로노미야(고메이 천황)를 양자로 삼았으며, 닌코 천황 사후에는 고메이 천황의 황태후가 되었다. 37세에 사망하여 노치노쓰키노와 능에 묻혔다.
| 입후 근거 | 제121대 천황 적모 |
|---|---|
| 여원호 | 신사쿠헤이몬인 (新朔平門院) |
| 휘 | 기요히메 (清姫) |
| 씨족 | 후지와라 씨 (다카쓰카사 가문) |
| 배우자 | 닌코 천황 |
| 양자 | 고메이 천황 |
| 출생일 | 분카 8년 2월 25일 (1811년 3월 19일) |
|---|---|
| 사망일 | 고카 4년 10월 13일 (1847년 11월 20일) |
| 능묘 | 노치노쓰키노와 능 |
| 아버지 | 다카쓰카사 마사히로 |
| 어머니 | 이노우에 우메코 |
| 입내 | 분세이 8년 (1825년) |
|---|---|
| 뇨고 선하 | 분세이 8년 (1825년) |
| 준후 | 분세이 13년 5월 22일 (1830년) |
| 황태후 | 고카 4년 3월 14일 (1847년) |
| 여원 | 고카 4년 10월 13일 (1847년 11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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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코 천황 -
오기마치 나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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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코 천황 -
다카쓰카사 쓰나코
다카쓰카사 쓰나코는 닌코 천황의 뇨고로, 관백 다카쓰카사 마사히로의 딸이며 황자 야스히토 친왕을 낳았으나, 황녀를 출산 중 난산으로 사망 후 신코카코몬인이라는 여원호가 추증되었다. -
다카쓰카사가 -
다카쓰카사 노부코
다카쓰카사 노부코는 도쿠가와 마사코를 고미즈오 천황의 중궁으로 삼는 데 관여하고, 도쿠가와 쓰나요시와 결혼하여 에도 성 오오쿠에서 활동하며 다양한 일화를 남겼으며, 쓰나요시 사후 얼마 되지 않아 사망했다. -
다카쓰카사가 -
다카쓰카사 가즈코
쇼와 천황과 고준 황후의 셋째 딸인 다카쓰카사 가즈코는 1950년 평민과 결혼하여 황적을 이탈하고 이세 신궁의 사이슈를 지냈으며, 결혼 후 남편의 죽음과 자택 침입 등 불행을 겪었다. -
일본의 황태후 -
진구 황후
진구 황후는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일본의 전설적인 인물로, 섭정 기간 동안 구마소 정벌과 삼한 정벌 등의 업적을 이루었으며, 역사적 실존 여부에 대한 논란과 왜곡된 측면이 비판적으로 검토되고, 문화적으로도 영향을 미쳤다. -
일본의 황태후 -
쇼켄 황태후
쇼켄 황태후는 메이지 천황의 황후로서 사회 사업과 여성 교육에 헌신했으며, 일본 적십자사 설립에 기여하고 국제 적십자 기금 조성에 힘썼다.
2. 가계
아버지는 관백 鷹司 政煕일본어이다. 생모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아버지의 측실이자 곤츄나곤 豊岡 尚輔일본어의 딸 hiko일본어라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井上 義胤일본어의 딸 梅子일본어가 생모이며 豊岡 尚輔일본어의 딸 視子일본어는 준모(準母, 양어머니에 준하는 여성)였다는 설이다.
이복 오빠로는 관백 鷹司 政通일본어가 있으며, 동복 언니는 닌코 천황의 뇨고(女御)가 된 鷹司 繋子일본어이다. 이 외에도 여러 형제자매가 있었다.
입내(入内, 천황에게 시집가는 것)할 당시에는 아버지 마사히로가 이미 출가(落飾일본어)하여 은거한 상태였기 때문에, 오빠인 마사미치 부부의 양녀 자격으로 입내하였다.
3. 생애
에도 시대 후기의 공가 출신 여성으로, 닌코 천황의 뇨고이자 고메이 천황의 양모이다.
언니인 쓰나코가 닌코 천황의 뇨고였으나 1823년에 요절하자, 1825년 15세의 나이로 언니의 뒤를 이어 입궁하여 뇨고가 되었다. 1830년 황녀를 낳았으나 다음 해에 요절하였고, 이후 자식을 얻지 못하여 1835년 덴지 오기마치 마사코가 낳은 히로노미야(훗날의 고메이 천황)를 양자로 삼았다.
1846년 닌코 천황이 사망하고 양자인 고메이 천황이 즉위하자, 이듬해인 1847년 황태후가 되었다. 그러나 같은 해 10월 13일 출가하여 뇨인 칭호를 받은 당일에 37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능묘는 교토시 히가시야마구 센뉴지 내의 노치노쓰키노와 능이다.
3.1. 닌코 천황의 뇨고
분세이 6년(1823년), 닌코 천황의 뇨고였던 언니 쓰나코가 난산으로 26세에 요절하였다. 이에 분세이 7년(1824년) 9월, 고카쿠 상황과 닌코 천황은 다카쓰카사 가문에 야스코(아명 키요히메)를 언니의 뒤를 이어 천황에게 입내시켜 달라고 요청하였다. 당시 아버지 다카쓰카사 마사히로는 은거 중이었기에, 야스코는 오빠 다카쓰카사 마사미치 부부의 양녀 자격으로 분세이 8년(1825년), 15세의 나이로 입내하여 뇨고 선하를 받았다.
분세이 12년 12월(1830년 1월), 야스코는 황녀를 출산했으나, 황녀는 덴포 2년(1831년)에 요절하였다. 이후 자식을 얻지 못하자, 덴포 6년(1835년), 텐지 오기마치 나오코 소생의 넷째 황자 히로노미야(오사히토 친왕, 훗날의 고메이 천황)를 양자로 삼았다.
3.2. 고메이 천황의 양모
분세이 12년 12월(1830년 1월)에 황녀를 출산했지만, 황녀는 덴포 2년(1831년)에 요절하였다. 이후 자식을 얻지 못하자, 덴포 6년(1835년), 덴지 오기마치 마사코 소생의 넷째 황자 히로노미야 (오사히토 친왕, 훗날의 고메이 천황)를 양자로 삼았다.
고카 3년(1846년), 닌코 천황이 사망하고, 야스코의 양자였던 오사히토 친왕이 고메이 천황으로 즉위하였다. 이듬해인 고카 4년(1847년) 3월, 야스코는 새로운 천황의 적모(嫡母)로서 황태후(皇太后)가 되었다. 하지만 같은 해 10월 13일에 출가하여 뇨인(女院) 칭호를 받았으나, 그날 사망하였다. 향년 37세였다. 능묘는 교토시 히가시야마구 센뉴지 내의 노치노쓰키노와 능(後月輪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