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원 (1906년)
1. 개요
이문원(1906년)은 일제강점기 교원 출신으로, 해방 후 사회민주당, 한국독립당 등에서 활동했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전라북도 익산을 지역구에 당선되었으나, 1949년 국회 프락치 사건으로 체포되었다. 한국 전쟁 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갔으며, 이후 대동군 농업협동조합 부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1959년 북청 과수농장으로 추방된 후 약 10년 뒤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 출생 | 1906년 |
|---|---|
| 사망 | 1971년 |
| 직업 | 언론인 정치인 |
| 1945년 |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선전부장 |
|---|---|
| 1948년 | 제헌 국회의원 |
| 민족일보 사장 | |
| 한국전쟁 당시 납북 |
| 종교 | 천도교 |
|---|
| 배우자 | 김정애 |
|---|
| 관련 인물 | 안재홍 이광수 김효석 조헌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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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김웅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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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석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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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원 (1909년)
박태원은 일제 강점기와 북한에서 활동한 소설가로, 모더니즘 소설을 주로 썼으며, 해방 후 월북하여 북한에서 활동하다 사망했다. -
월북자 -
박헌영
박헌영은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 정치인으로, 조선공산당 창당에 참여하고 해방 후 조선공산당 재건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으나, 한국 전쟁 이후 김일성 정권에 의해 처형되어 그의 생애와 활동은 논란과 재평가의 대상이 되고 있다. -
대한민국의 제헌 국회의원 -
허영호 (정치인)
허영호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참여하고 신간회 활동을 했으나, 중일전쟁 이후 친일로 전향하여 해방 후 혜화전문학교 교장과 동국대학교 학장을 역임했으며, 제헌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되었지만 한국 전쟁 중 납북되어 사후 친일 행적이 드러나 건국훈장이 취소되고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되었다. -
대한민국의 제헌 국회의원 -
이승만
이승만은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자 독립운동가로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을 역임하고 해방 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나, 독재적 통치와 부정부패에 대한 비판도 받으며 4·19 혁명 후 하와이로 망명하여 서거하였다.
2. 약력
* 전주사범학교 졸업
* 1948년 5월 10일 제헌 국회의원(전북 익산을) 당선
* 1949년 5월 20일 국회 프락치 사건으로 체포
* 한국 전쟁 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감
* 1954년 5월경 대동군 농업협동조합 부위원장
* 1955년 9월 인민대학 특설반 입학
* 1956년 7월경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발기인 겸 상무위원
* 1959년경 북청 과수농장으로 추방
2.1. 교육 활동
전주사범학교 (현 전주교육대학교)를 졸업하고, 20년 가까이 교원으로 근무했다. 해방 후 계성국민학교와 숙명여자중학교 후원회 이사장을 역임했다.
2.2. 해방 이전 정치 활동
전주사범학교를 졸업하였다. 해방 후 사회민주당 중앙집행위원 겸 기획부장, 한국독립당 중앙당 집행위원·조직부장·농림정책위원장, 국민당 중앙집행위원 조직부장,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서울 중구 본부 집행위원 조직부장·분회장, 대동청년단 조직부장을 역임했다. 그 외 동화상사 주식회사 사장, 서울시 피복공업조합 이사, 계성국민학교 후원회 이사, 숙명여자중학교 후원회 이사장을 역임했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전라북도 익산을 지역구로 당선되었으나, 1949년 5월 20일 국회 프락치 사건으로 체포되었다.
2.3. 해방 이후 정치 활동
1948년 5월 10일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전라북도 익산을 지역구의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1949년 5월 20일, 국회 프락치 사건으로 체포되었다. 한국 전쟁 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갔는데, 이에 대해서는 "월북"이라는 견해도 있다. 1954년 5월경 대동군 농업협동조합 부위원장으로 소환되었고, 1956년 7월경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발기인 겸 상무위원을 맡았으며, 1955년 9월에는 인민대학의 특설반에 입학했다. 이후 1959년경 북청 과수농장으로 추방된 것으로 알려졌다.
2.4. 국회 프락치 사건과 한국 전쟁
1949년 5월 20일, 국회 프락치 사건으로 체포되었다. 한국 전쟁 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갔다.
2.5.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의 활동
1949년 5월 20일 국회 프락치 사건으로 체포되었는데, 한국 전쟁 중에 북한으로 갔다. 북한에서는 납북인지 월북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다. 1954년 5월경 대동군 농업협동조합 부위원장으로 소환되었고, 1955년 9월에는 인민대학의 특설반에 입학했다. 1956년 7월경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발기인 겸 상무위원을 맡았다. 이후 1959년경 북청 과수농장으로 추방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그 후 약 10년 후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자세한 것은 알려져 있지 않다.
3. 사망
한국 전쟁 중 북한에 납북되었으나, "월북"이라는 견해도 있다. 1954년 5월경 대동군 농업협동조합 부위원장으로 소환되었고, 1955년 9월에는 인민대학의 특설반에 입학했다. 1956년 7월경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발기인 겸 상무위원을 맡았으며, 1959년경 북청 과수농장으로 추방된 것으로 알려졌다。그 후 약 10년 후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자세한 것은 알려져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