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바노 블라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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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바노 블라손은 이탈리아의 전 축구 선수로, 수비수로 활약했다. 1939년 프로 고리치아에서 선수 경력을 시작하여 트리에스티나, 인테르나치오날레, 엘라스 베로나, 파도바 등에서 뛰었다. 인테르나치오날레 소속으로 세리에 A에서 2회 우승했으며, 1950년 FIFA 월드컵에 이탈리아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견고한 수비 능력과 깔끔한 경기 운영으로 평가받았으며, 말년에는 자유 수비수 역할을 수행했다.

이바노 블라손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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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바노 블라손
본명이바노 블라손
출생일1923년 5월 24일
출생지산로렌초디모사, 이탈리아 왕국
사망일2002년 3월 13일
사망지고리치아, 이탈리아
포지션수비수
클럽 경력
연도1939–1944
클럽프로 고리치아
출장11
득점?
연도1945–1950
클럽트리에스티나
출장149
득점12
연도1950–1954
클럽인테르나치오날레
출장85
득점5
연도1954–1955
클럽베로나
출장15
득점1
연도1955–1962
클럽파도바
출장176
득점3
국가대표 경력
연도1950
국가대표팀이탈리아
출장1
득점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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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구단 경력

이바노 블라손은 1939년 프로 고리치아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트리에스티나에서 주목받는 선수로 성장했다. 이후 인테르나치오날레로 이적하여 리그 우승을 경험했으며, 엘라스 베로나를 거쳐 파도바에서 선수 생활의 마지막 시기를 보냈다. 그의 경력 동안 세리에 A세리에 B 무대를 오가며 활약했으며, 특히 트리에스티나, 인테르나치오날레, 파도바 소속으로 리그에서 인상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2.1. 프로 고리치아 (1939-1943)

1939년 프로 고리치아에서 선수 경력을 시작했다.

2.2. 트리에스티나 (1945-1950)

1939년 프로 고리치아에서 축구를 시작한 블라손은 트리에스티나에서 선수 경력을 꽃피웠다. 1945-46 시즌에 트리에스티나 소속으로 이탈리아 최상위 리그에 데뷔했으며, 특히 1947-48 시즌에는 팀의 주축 선수로 활약하며 당시 강력한 전력을 자랑하던 '그란데 토리노'에 이어 리그 준우승이라는 역사적인 성과를 달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블라손은 1950년까지 트리에스티나에서 활약했다.

2.3. 인테르나치오날레 (1950-1954)

1950년, 트리에스티나에서의 활약을 뒤로하고 인테르나치오날레로 이적했다. 그는 인테르나치오날레 소속으로 1953년과 1954년에 연속으로 세리에 A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성공적인 시기를 보냈다.

2.4. 엘라스 베로나 (1954-1955)

인테르나치오날레에서 1953년과 1954년에 연속으로 리그 우승을 경험한 후, 블라손은 세리에 B엘라스 베로나로 이적하여 1954-55 시즌 한 해 동안 활동했다. 베로나에서 한 시즌을 보낸 뒤, 그는 세리에 A파도바로 팀을 옮겼다.

2.5. 파도바 (1955-1962)

세리에 B엘라스 베로나에서 1년을 보낸 후, 그는 세리에 A파도바로 이적하여 7년을 활약했다. 이 기간 동안 1957-58 시즌에 팀이 리그 3위를 차지하는 데 기여했다.

3. 국가대표팀 경력

블라손은 이탈리아 대표팀 소속으로 1950년 FIFA 월드컵에 참가했다. 그는 이 대회에서 단 한 경기에 출전했는데, 이는 1950년 7월 2일에 열린 파라과이와의 경기로 이탈리아가 2-0으로 승리했다. 이 경기는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국가대표팀 경기였다.

4. 경기 방식

수비수였던 블라손은 뛰어난 신체 능력과 대인 방어 능력으로 정평이 났으며, 거칠면서도 깔끔하고 공정한 경기를 펼치는 선수로 알려졌다. 그는 다양한 수비 역할을 소화할 수 있었는데, 초창기에는 WM 혹은 "체계"(sistema)라 불리는 배치 형태에서 주로 측면 수비수(풀백)로 활약했다. 이 역할은 현대 축구의 중앙 수비수(센터백)와 유사했다.

그러나 선수 생활 말년에는 스위퍼(최후방 수비수)로 역할을 바꾸었다. 라 가체타 델로 스포르트의 안드레아 스키안키 기자는 블라손이 인테르나치오날레 시절 알프레도 포니 감독과 파도바 시절 네레오 로코 감독의 지도 아래 이탈리아 축구 역사상 최초의 공식적인 '리베로'(자유 수비수) 역할을 수행한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했다. 이 역할에서 그는 수비진 최후방에 위치하며 상대 공격을 저지하고 위험 지역에서 공을 걷어내는 임무를 맡았다.

포니 감독 시절의 인테르나치오날레에서는 측면 수비수와 스위퍼 역할 외에도 centromediano metodista이탈리아어 또는 돌출 수비수로도 활약했다. 이 역할은 현대 축구의 수비형 미드필더와 후방 플레이메이커(딥라잉 플레이메이커)의 임무를 결합한 것과 비슷했다. 비록 그의 주 역할은 공을 걷어내는 전통적인 스위퍼였지만, 때로는 정확하고 긴 패스를 통해 역습의 시발점 역할을 하기도 했다. 수비 능력 외에도 강력한 슈팅 능력을 갖추고 있어 프리킥이나 페널티킥을 전담하기도 했다.

5. 개인사

고리치아도 산 로렌초 디 모사 출신이다. 그의 형 자코모 블라손 역시 프로 축구 선수로 활동했다. 그들을 구분하기 위해 자코모는 블라손 I으로, 이바노는 블라손 II로 불렸다.

6. 수상

인테르나치오날레
* 세리에 A: 1952–53, 1953–54

프로 고리치아
* 세리에 C: 194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