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헌 (1896년)
1. 개요
이병헌은 1896년 11월 20일에 태어나 1976년 1월 17일에 사망한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이다. 보성전문학교 법과를 졸업하고, 3·1 운동 당시 독립선언서 인쇄와 배포를 지원했으며, 신간회 발기인 겸 간사로 활동했다. 해방 후에는 한국민주당에 참여하여 민주의원 서무과장 등을 역임했고, 1960년 민주당 소속으로 평택시에서 민의원에 당선되었다. 1969년에는 회고록을 발표했으며,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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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회의 인물 -
한용운
한용운은 충청남도 홍성 출신의 승려이자 시인, 독립운동가로, 3.1 운동에 참여하여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불교 혁신과 민족 독립을 위해 헌신했으며, 시집 《님의 침묵》을 통해 저항 문학을 대표했다. -
신간회의 인물 -
권동진
권동진은 조선 말기 개화파 관료이자 독립운동가, 정치인으로, 을미사변 가담 후 천도교에 입교, 3·1 운동 민족대표, 신간회 부회장을 역임하고 광복 후 우익 정치인으로 활동하며 반탁운동을 전개했다. -
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김웅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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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정진석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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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의 국회의원 -
추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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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의 국회의원 -
이학영
2. 생애
1919년 1월 중순경 손병희의 부탁으로 비폭력·대중화·일원화의 독립운동 3대 원칙을 기록해 동지들에게 전달하였다. 같은 해 2월에는 천도교 교단으로부터 독립운동 자금 5000KRW을 인출해 이승훈에게 전달해 기독교계의 독립만세운동을 지원하였다.
1919년 2월 27일 보성사에서 3·1독립선언서의 인쇄를 돕고 이를 비밀리에 천도교당으로 운반한 후 다시 전국 각지에 배부케 하였다. 같은 해 3월 1일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할 때 당시 진행 상황을 기록하는 한편, 탑골공원에 모인 학생 및 시민과의 연락을 담당하였다. 같은 날 서울 시내 곳곳에서 벌어진 시위와 3월 5일 남대문역 앞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도 참여하였다. 이후 체포된 민족대표들의 가족들에게 생활비를 지원하기도 하였다.
1927년 2월 신간회가 창립되자 발기인 겸 간사로 활동했다.
1945년 해방 후에는 한국민주당에 참여했고, 민주의원의 서무과장, 국립경찰전문학교 교수 겸 총무과장, 대한행정신문사장을 거쳤다.
1960년에 평택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해 민의원에 당선되었다.
1969년에는 《신동아》에 〈신간회운동(新幹會運動)〉이라는 회고록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천도교 교역자로 중앙총부와 천도교 청년동맹 경성지부에서 시무한 바 있었다.
1976년 1월 17일 사망하였다.
2.2. 독립운동
손병희의 부탁으로 비폭력·대중화·일원화의 독립운동 3대 원칙을 기록해 동지들에게 전달하였다. 1919년 2월 천도교 교단으로부터 독립운동 자금 5000KRW을 인출해 이승훈에게 전달해 기독교계의 독립만세운동을 지원하였다.
1919년 2월 27일 보성사에서 3·1독립선언서 인쇄를 돕고 이를 비밀리에 천도교당으로 운반한 후 다시 전국 각지에 배부케 하였다. 1919년 3월 1일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할 때 당시 진행 상황을 기록하는 한편, 탑골공원에 모인 학생 및 시민과의 연락을 담당하였다. 같은 해 3월 1일 서울 시내 곳곳에서 벌어진 시위와 3월 5일 남대문역 앞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도 참여하였다. 이후 체포된 민족대표들의 가족들에게 생활비를 지원하기도 하였다.
1927년 2월 신간회가 창립되자 발기인 겸 간사로 활동했다. 1969년에는 《신동아》에 〈신간회운동(新幹會運動)〉이라는 회고록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2.4. 정계 활동
해방 후 한국민주당에 참여했고, 민주의원 서무과장, 국립경찰전문학교 교수 겸 총무과장, 대한행정신문사장을 거쳤다.
1960년 평택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해 민의원에 당선되었다.
1969년에는 《신동아》에 〈신간회운동(新幹會運動)〉이라는 회고록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2.5. 말년
1969년 《신동아》에 〈신간회운동(新幹會運動)〉 회고록을 발표했다. 천도교 교역자로 중앙총부와 천도교 청년동맹 경성지부에서 시무했다.
1976년 1월 17일 사망했다.
4. 저서
* 《삼일운동비사》(시사시보사출판국, 19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