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일 (1939년)
1. 개요
이영일은 1939년생으로, 4.19 혁명에 참여하여 학생운동을 했으며 민족통일전국학생연맹 선전위원장을 지냈다. 1965년 남북학생회담 제안과 관련하여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나, 4.19 혁명 유공으로 형 면제되었다.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수료했다.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고,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전남 광주시 서구에서 당선되어 재선했다. 이후 여러 차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1997년 재보궐선거에서 광주 동구에서 당선되어 3선 의원이 되었다.
| 이름 | 이영일 |
|---|---|
| 원어명 | 李榮一 |
| 본명 | 이철행 |
| 출생일 | 1939년 11월 17일 |
| 국적 | 대한민국 |
| 직업 | 정치인 |
| 경력 | 제11·12·15대 국회의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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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대학교 교수 -
박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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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대학교 교수 -
고귀남
언론인 출신 정치인 고귀남은 전남매일신보 기자, 유신정우회 및 민주정의당 국회의원, 서울 패럴림픽 조직위원장, 장애인고용촉진공단 이사장을 역임하며 장애인 고용 촉진에 기여했으나, 통일주체국민회의 활동 이력으로 비판도 받았다. -
대한민국의 학생운동가 -
유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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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학생운동가 -
홍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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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로국민연합 -
임동원
대한민국의 군인 출신 정치인이자 외교관인 임동원은 육군사관학교 졸업 후 군과 정부의 요직을 거쳐 나이지리아, 오스트레일리아 대사, 통일부 장관, 국가정보원장 등을 역임하며 김대중 정부 시절 햇볕정책의 핵심 역할을 수행했으나, 제2연평해전 발언과 불법 감청 혐의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
하나로국민연합 -
이한동
이한동은 대한민국의 6선 국회의원 및 국무총리를 지낸 정치인으로, 판검사 출신이며 여러 정당을 거치며 활동했고 6·29 선언과 직선제 개헌에 기여, 노동 운동 탄압 논란, 인사청문회 후 임명된 최초의 국무총리, DJP 연합 붕괴 시 당적 제명, 대선 낙선 후 사회 활동, 그리고 회고록 《정치는 중업이다》를 남긴 인물이다.
2. 학생운동
1960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 3학년 당시 4.19 혁명에 참여하여 학생운동을 벌였으며, 1961년 민족통일전국학생연맹을 결성, 선전위원장을 지냈다.
1965년 민족통일전국학생연맹 선전위원장으로서 남북학생회담을 제안한 사건과 관련, 5.16 군사정변 재판에서 7년 징역형을 선고받았지만, 이듬해 4.19 혁명 유공자로 형 면제 출감하였다.
1966년 한독당 내란음모사건으로 구형공판에서 7년형을 구형받았지만, 5월 10일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3. 학력
* 1952년 광주서석초등학교 졸업
* 1955년 광주서중학교 졸업
* 1958년 광주제일고등학교 졸업
* 1964년 서울대학교 문리대 정치학과 학사
* 1975년 동국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수료
4. 역대 선거 결과
4.1. 상세 선거 결과
이영일은 대한민국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초선 의원이 되었다. 이후 대한민국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전남 광주시 서구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출마하여 28.21%의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다.
대한민국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와 대한민국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광주 서구 갑에 각각 민주정의당과 민주자유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1997년 12.18 재보궐선거에서는 광주 동구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출마하여 무투표 당선으로 3선 의원이 되었다. 대한민국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광주 동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