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국민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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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새정치국민회의는 1995년 9월 5일 김대중을 총재로 하여 창당된 정당이다. 1996년 총선에서 79석을 얻어 제2당이 되었으며, 1997년 대선에서 자유민주연합과 연합하여 김대중을 대통령으로 당선시켰다. 2000년 자유민주연합과 합당하여 새천년민주당을 창당하였다. 참여 민주주의와 공정한 시장경제를 추구하며,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 문화 선진국 지향 등을 주요 가치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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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연합은 1995년 김종필을 중심으로 창당된 중도 보수 정당으로, 충청권 기반을 바탕으로 제15대 총선에서 제2야당으로 도약했으나, DJP 연합을 통해 여당이 된 이후 지지율 하락과 내부 갈등으로 2006년 한나라당에 흡수 합당되어 해체되었다.
새정치국민회의 - [정당]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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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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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표기 | 새정치국민회의 |
한자 표기 | 새政治國民會議 |
로마자 표기 | Saejeongchigungminhoeui |
약칭 | 국민회의 |
설립일 | 1995년 9월 5일 |
해산일 | 2000년 1월 20일 |
해산 이유 | 신당 결성 |
합병 정당 | 국민신당 |
분당 정당 | 민주당 |
후계 정당 | 새천년민주당 |
본부 위치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나루로 67 |
색상 | 녹색 |
정치 | |
총재 | 김대중 |
이념 | 자유주의 신자유주의 중도개혁주의 |
정치적 위치 | 중도 |
국가적 연합 | DJP연합 |
기타 | |
웹사이트 | 새정치국민회의 (폐쇄) |
2. 역사
1992년 12월 18일에 치러진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김영삼에게 패한 김대중은 정계 은퇴를 선언했으나, 1995년 7월 18일 정계 복귀와 함께 신당 결성을 선언했다. 민주당(1991-1995)[2] 내 동교동계(김대중계) 의원 17명은 9월 5일에 창당 준비위원회를 개최하고 위원장에 김대중을 선출했다. 같은 날, 창당 대회를 열고 김대중을 총재(당수)로 하는 새정치국민회의가 결성되었다.
이듬해 1996년 4월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79석을 획득하여 야당 제1당의 자리를 지켰으나, 목표였던 100석에는 미치지 못했고, 전국구 14번으로 출마했던 김대중도 낙선하는 어려운 결과를 맞았다. 1997년 12월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김대중을 대통령 후보로 선출하고, 김종필이 이끄는 자유민주연합(자민련)과 단일화(DJP연합)를 실현했다. 김영삼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 등의 호재를 바탕으로 김대중은 염원하던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국회에서는 신한국당과 민주당이 합당한 거대 야당 한나라당이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국민회의는 소수 여당으로서 어려운 국회 운영을 겪어야 했다.
2. 1. 자민련과의 연대
김대중 대통령은 수도권과 호남권의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국정 수행을 보좌하였으나, 충청권에서 강력한 경쟁 상대였던 자유민주연합(자민련)과의 관계 설정이 중요 과제였다. 김대중은 자민련과의 연대를 구상하였고, 당내 진보 성향 의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원내대표의 설득으로 1998년 11월 13일 새정치국민회의-자민련 연대가 시작되었다.[2] 김대중 대통령 임기 종료와 함께 2002년에 연대가 종료되었으나, 자민련 의원 대부분은 탈당 후 개별적으로 새천년민주당에 입당하였다.2. 2. 정당 통합
1996년 총선에서 새정치국민회의는 79석을 얻어 제2당이 되었다. 이후 김대중의 민주당과 합당하였다.[2] 2000년 이인제가 이끄는 자유민주연합 및 일부 보수 정치인들과 합당하여 새천년민주당을 창당하였다.3. 이념 및 정책
새정치국민회의는 참여 민주주의와 공정한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한 중도 국민 정당을 표방하였다.[1]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환경, 과학기술, 여성, 청년, 외교·안보, 통일 등 다양한 분야에서 다음과 같은 정책을 추진하였다.[1]
분야 | 내용 |
---|---|
정치 | 참여의 정치 |
경제 |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 |
사회 | 안정과 꿈과 희망의 건강 사회 |
문화 | 문화 선진국 지향 |
교육 | 지식 혁명과 전인 교육 |
환경 | 자연과의 공존 공영 |
과학기술 | 과학기술 전쟁에서의 승리 |
여성 | 평등과 참여 보장 |
청년 | 사회 공동 참여자 |
외교·안보 | 자주 협력의 외교·안보 체제 |
통일 | 점진적이고 평화적인 민족 통일 |
21세기 | 도덕적 선진 국가 |
4. 논란
새정치국민회의는 6.25 전쟁 관련 만주 폭격 발언에 대한 반박 논평과 야당 의원 빼가기 논란 등 여러 논란에 휩싸였다.
4. 1. 6.25 전쟁 관련 만주 폭격 발언 반박 논평
1996년 6월 24일, 김영삼 대통령은 전방 부대 시찰 중 "6.25 당시에 만주를 폭격했으면 통일을 이룰 수 있었다"라고 발언하여 큰 논란이 되었다.[7]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정동영 대변인은 이 발언이 국가 안보를 해치고 4자회담[6] 성사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라며, "국가이익을 현저하게 해칠 우려가 있는 발언을 한 것은 대통령의 직무와 관련해 탄핵 소추도 가능한 발언"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7] 자유민주연합 또한 "대통령 자신이 북을 자극하여 찬물을 끼얹고 있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는 논평을 냈다.[7]이에 대해 집권당인 신한국당 김철 대변인은 "어느 쪽의 안보를 지키려는 정당인지 의심이 들 정도"라며 새정치국민회의가 북한에 대해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인다고 반박했다.[7] 새정치국민회의는 김영삼 대통령에게 발언에 대한 해명을 촉구했고, 신한국당은 당시 대다수 국민이 맥아더의 주장을 지지했으며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서 새정치국민회의가 6.25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부족하다고 맞섰다.[8]
4. 2. 야당 의원 빼가기 논란
15대 대선에서 여권 분열로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여소야대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인위적인 정계 개편을 단행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당시 공동여당이었던 새정치국민회의와 자유민주연합의 의석수 합이 야당인 한나라당에 미치지 못했다. 이에 1997년 제15대 대선에서 낙선하고 이듬해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주목할 만한 성적을 거두지 못한 이인제의 국민신당과 합당을 추진하였다. 또한, 검찰의 한나라당에 대한 전방위적인 사정으로 몇몇 의원들을 빼앗았다는 논란이 있었으나, 일부 의원들은 자발적으로 당적을 변경하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공동여당은 국회 과반 의석수를 확보하였다.5. 역대 지도부
김대중 총재 시기 부총재단은 김근태, 김영배, 박상규, 신낙균, 이종찬, 정대철, 조세형 등으로 구성되었다.[1] 지도위원으로는 권로갑, 길승균, 유재건, 김정호, 김상현, 김대식, 나종일, 유준상, 신순범, 신용석, 안동선, 이용희, 정영모, 정희경, 천용택, 한광옥, 허재영 등이 활동했다.[1]
당 4역은 원내총무 신기하, 사무총장 조순형, 정책위원장 손세일, 지방자치위원장 장석화였다.[1] 대변인은 박지원이 역임했다.[1]
5. 1. 총재
5. 2. 총재권한대행
대수 | 역대 총재권한대행 | 임기 |
---|---|---|
1 | 조세형 | 1996년 9월 10일 ~ 1999년 4월 5일 |
2 | 김영배 | 1999년 4월 6일 ~ 1999년 7월 8일 |
3 | 이만섭 | 1999년 7월 9일 ~ 2000년 1월 20일 |
6. 주요 선거 결과
단체장
단체장
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