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소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이와소는 일본 미야지마섬에 위치한 전통 료칸으로, 1854년에 찻집으로 시작하여 메이지 시대에 여관으로 개업했다. 단풍 만두의 탄생과 관련이 있으며, 2002년에는 와카미야 온천이 발견되었다. 쇼와 천황이 숙박했으며, G8 서밋, G7 외무장관 회의, G7 히로시마 서밋 등 주요 국제 회의의 회담 및 회식 장소로 사용되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료칸 - 게이운칸 (료칸)
게이운칸은 705년 발견된 온천을 기원으로 1300년 이상 동일 가문이 운영해 온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숙박 시설 중 하나인 일본 료칸으로, 아카이시 산맥 기슭에 위치하며 모든 객실에 개인 온천탕과 가케나가시 욕조를 갖춘 것이 특징이다. - 료칸 - 호시료칸
호시 료칸은 718년에 개업한 일본의 료칸으로, 한때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여관으로 기네스 세계 기록에 등재되었으나 현재는 두 번째로 오래된 여관이며, 등록 유형 문화재로 지정된 건물들이 있고 경영난으로 분할 및 특별 청산 개시 명령을 받는 등 경영 위기를 겪었다. - 하쓰카이치시의 건축물 - 이쓰쿠시마 신사
이쓰쿠시마 신사는 히로시마현 미야지마에 위치한 신사로, 바다 위에 떠 있는 듯한 도리이와 독특한 건축 양식, 다수의 국보급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자 유명 관광 명소이다. - 하쓰카이치시의 건축물 - 히로시마항
히로시마항은 히로시마현에 위치한 고대부터 이용된 항구로, 근대적인 무역항 및 군항으로 정비되어 쇼와 시대에 항만 시설이 확장되었으며, 현재 국제 컨테이너 터미널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여러 해운 회사의 정기 항로가 운영된다.
| 이와소 | |
|---|---|
| 기본 정보 | |
![]() | |
| 명칭 | 이와소 |
| 정식 명칭 | (알 수 없음) |
| 로마자 표기 | Iwasō |
| 종류 | 여관 |
| 상세 정보 | |
| 체인 | (알 수 없음) |
| 개발사 | (알 수 없음) |
| 설계 | (알 수 없음) |
| 시공 | (알 수 없음) |
| 운영 | (알 수 없음) |
| 소유주 | (알 수 없음) |
| 이전 명칭 | (알 수 없음) |
| 부지 면적 | (알 수 없음) |
| 건축 면적 | (알 수 없음) |
| 연면적 | (알 수 없음) |
| 최저 층수 | (알 수 없음) |
| 최고 층수 | (알 수 없음) |
| 레스토랑 수 | (알 수 없음) |
| 객실 수 | 38개 |
| 싱글룸 수 | (알 수 없음) |
| 더블룸 수 | (알 수 없음) |
| 트윈룸 수 | (알 수 없음) |
| 스위트룸 수 | (알 수 없음) |
| 주차 시설 | (알 수 없음) |
| 최고 높이 | (알 수 없음) |
| 개업일 | 1854년 |
| 리모델링 | (알 수 없음) |
| 폐업일 | (알 수 없음) |
| 교통 정보 | |
| 가장 가까운 역 | 미야지마 선착장 |
| 가장 가까운 IC | (알 수 없음) |
| 위치 정보 | |
| 우편 번호 | 739-0522 |
| 주소 | 히로시마현하쓰카이치시 미야지마초 남정 345-1 |
| 기타 정보 | |
| 공식 웹사이트 | 이와소 공식 웹사이트 |
2. 연혁
이쓰쿠시마 신사에서 관현제가 열리면 전후 1개월 동안 시가 열려 번성했다. 이에 주목한 초대 이와쿠니야 소헤이는 가에이 연간(1848년-1855년)에 인바야 시게키와 함께 단풍계곡 개척을 히로시마번 미야지마 봉행소에 신청했다. 소헤이와 시게키는 단풍계곡 강을 사이에 두고 경쟁하듯이 땅을 고르고 초목을 심어 정자를 지었고, 두 정자를 잇는 다리를 놓았다. 이것이 현재 단풍계곡 공원의 시초이다.
안세이 원년(1854년), 소헤이는 찻집을 개업했다. 이와소라는 이름은 이와쿠니야 소헤이에서 유래했다.
메이지 시대에 들어서자마자 여관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1892년(메이지 25년) 미센의 나무를 이용하여 본채와 현관부를 건축했다.
다이쇼 시대부터 쇼와 시대 초기까지 강변 연회장과 별채를 지었다. 현재 남아있는 별채는 류몬테이(1924년(다이쇼 13년), 슈킨테이(1928년(쇼와 3년), 샤쿠후칸(1944년(쇼와 19년))이다.
1945년 9월, 마쿠라자키 태풍으로 단풍계곡 강에서 토석류가 발생하여 이와소도 피해를 입고 강변 연회장이 유실되었으나, 자력으로 복구했다. 이후 단풍계곡 강 복구 공사가 진행되어 단풍계곡 강 정원 사방 시설이 완성되었다.
1947년 12월 5일, 쇼와 천황이 미야지마를 방문했을 때 이와소가 숙박소로 지정되었다.[1]
2002년(헤이세이 14년), 메이지 시대부터 사용하던 우물에서 라돈을 포함한 양질의 온천이 발견되었다. 이 온천은 와카미야가하라라고 불리던 곳에 있어 와카미야 온천으로 명명되었다.
2008년(헤이세이 20년) G8 의장 서밋(제34회 주요국 정상 회의) 게스트 숙박, 2016년(헤이세이 28년) G7 외무장관 회의(제42회 선진국 정상 회의) 회식, 2023년(레이와 5년) G7 히로시마 서밋(제49회 선진국 정상 회의) 세션 3(워킹 디너) "외교·안보" 회담 장소로 사용되었다.[2]
2. 1. 설립 배경
가에이 연간(1848년-1855년)에 이와쿠니야 소헤이가 히로시마번 미야지마 봉행소에 단풍계곡(모미지다니) 개척을 신청하면서 이와소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소헤이는 인바야 시게키와 함께 단풍계곡 강을 사이에 두고 경쟁하듯이 땅을 고르고 정자를 지었으며, 이것이 현재 모미지다니 공원의 시초가 되었다. 안세이 원년(1854년), 소헤이는 찻집을 개업하였고, '이와소'라는 이름은 이와쿠니야 소헤이에서 유래했다.이쓰쿠시마 신사에서 관현제가 열리면 주변에서 시장이 열려 번성했는데, 소헤이는 이에 주목하여 단풍계곡 개척을 신청한 것이었다.
2. 2. 메이지 시대 이후
메이지 시대에 들어서자마자 료칸으로 개업하였다. 1892년(메이지 25년) 미센의 나무를 이용하여 본채와 현재의 현관 건물을 건축하였다.이와소 측 발표에 따르면, 당시 여주인이 "고객에게 이와소에서만 맛볼 수 있는 다과를 제공하고 싶다"고 하여 가스텔라 반죽 안에 팥소를 넣은 만주를 고안, 타카츠도의 타카츠 죠스케에게 제작을 의뢰하여 1906년(메이지 39년) "단풍 모양 구운 만두", 즉 모미지 만주가 탄생하였다고 한다. 다만, 이토 히로부미가 이와소 찻집에서 휴식할 때 시중을 들던 여성의 손을 보고 "얼마나 사랑스러운 단풍 같은 손인가, 먹어버리고 싶다"고 농담한 것을 이와소 여주인이 듣고 의뢰했다는 풍문도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이와소 여주인이 타카츠에게 의뢰, 타카츠가 시행착오 끝에 단풍 만주를 고안했다고 알려져 있다.
2. 3. 다이쇼, 쇼와 시대
다이쇼 시대부터 쇼와 초기까지 이와소는 강변 연회장과 별채를 증축했다.[1] 현재 남아있는 별채로는 류몬테이(1924년), 슈킨테이(1928년), 샤쿠후칸(1944년)이 있다.[1]1945년 9월, 마쿠라자키 태풍이 미야지마를 덮쳐 모미지다니 강에서 토석류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이와소도 피해를 보아 강변 연회장이 유실되었으나,[1] 자체적으로 복구했다.[1] 이후 모미지다니 강 복구 공사가 진행되어 모미지다니 강 정원 사방 시설이 완성되었다.[1]
1947년 12월 5일, 쇼와 천황이 미야지마를 방문했을 때 이와소가 숙소로 지정되었다.[1]
2. 4. 헤이세이 시대 이후
2002년, 메이지 시대부터 사용하던 우물을 조사한 결과, 지하 5m에서 라돈을 포함한 양질의 온천이 발견되었다. 온천 주변은 옛날 와카미야가하라라고 불렸기 때문에 와카미야 온천이라고 이름 지어졌다.미야지마를 방문한 각국 황족, 정치가, 문화인 등 다양한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인물이 이와소에 숙박하고 있다. 2008년 G8 의장 서밋(제34회 주요국 정상 회의)의 게스트 숙박지, 2016년 G7 외무장관 회의(제42회 선진국 정상 회의)의 회식 회의장으로 사용되었다. 또한, 2023년 G7 히로시마 서밋(제49회 선진국 정상 회의)에서는 세션 3(워킹 디너) "외교·안보"의 회담 회장이 되었다.[2]
3. 시설
모미지다니 공원(단풍계곡 공원) 입구에 있으며, 이쓰쿠시마 신사까지 걸어서 3분 거리에 있다. 모미지다니 강을 따라 본관, 신관, 5개의 별채로 구성되어 있다. 객실은 모두 다다미방이며, 가이세키 요리를 제공한다.
3. 1. 본관
모미지바시(단풍 다리) 옆에 있는 목조 2층 건물이다. 1892년(메이지 25년)에 지어진 현관 건물과 1981년(쇼와 56년)에 개축된 로비가 있다. 객실은 5실이며, 욕실은 없으므로 신관 욕실을 이용해야 한다.3. 2. 신관
모미지다니(단풍계곡)를 조망하는 5층 건물이다. 객실은 29실이며, 모든 객실에 욕실과 양식 변기가 갖춰져 있고 휠체어로 접근할 수 있다. 13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간겐(관현)" 연회장이 있다. 지하에는 "와카미야 온천"이 있는데, 온천수는 단순 약 방사능 냉광천이다. 노천탕에서는 미야지마의 사슴을 볼 수도 있다.
3. 3. 별채
본관 안쪽에 한 채씩 5개의 단독 주택 형태의 별채가 있으며, 공식적으로는 4개가 안내되고 있다. 다음은 본관에서 가까운 쪽(서쪽)부터 나열한 것이다.- 긴푸테이(吟風亭) - 1951년(쇼와 26년)에 지어졌다. 모미지다니와 가장 조화로운 별채이다.
- 슈킨테이(集錦亭) - 1928년(쇼와 3년)에 지어졌다. 내부에 욕실이 있다.
- 류몬테이(龍門亭) - 아사노 나가코토가 이름을 지었다. 1924년(다이쇼 13년)에 지어졌다.
- 센신테이(泉心亭) - 센 소사(13대)가 이름을 지었다. 1950년(쇼와 25년)에 지어졌다. 내부에 욕실이 있다.
이 외에 1933년(쇼와 8년)에 지어져 귀빈실로 사용되고 있는 샤쿠후칸(石楓館)이 있다.
4. 교통
미야지마 선착장에서 도보 15분
5. 기타
이와소는 과거부터 한국의 주요 인사들이 자주 방문하는 곳이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및 진보 진영 인사들이 미야지마를 방문할 때 자주 이용하는 숙소 중 하나이다.[2]
이와소는 모미지 만주(단풍 만주)의 탄생에 기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소 측에 따르면, 당시 여주인이 이와소에서만 맛볼 수 있는 다과를 원했고, 카스텔라 반죽 안에 팥소를 넣은 만주를 고안하여 타카츠도(高津堂)의 타카츠 죠스케에게 제작을 의뢰하여 1906년 "단풍 모양 구운 만두" 즉 모미지 만주가 탄생했다고 한다.[1]
참조
[1]
서적
昭和天皇御召列車全記録
新潮社
[2]
웹사이트
G7広島サミット(セッション3(ワーキング・ディナー)「外交・安全保障」概要) {{!}} トピックス
https://www.g7hirosh[...]
2023-05-19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