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영 (당)
1. 개요
이원영은 당나라의 황족으로, 이연과 유보림 사이에서 태어났다. 정관 13년 등왕에 봉해졌고, 금주 자사, 소주 자사, 홍주 도독 등을 역임했다. 홍주 도독으로 재임 시 강남 3대 명루 중 하나인 등왕각을 조영했다. 684년에 사망했으며, 사도와 기주 도독으로 추증되었다. 헌릉에 배장되었고, 18명의 아들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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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고조의 황자 -
당 태종
당 태종은 당나라의 제2대 황제로서, 뛰어난 군사적 재능과 정관의 치로 불리는 치세를 통해 당나라의 전성기를 이끌었으며, 균전제 등 제도를 정비하고 영토를 확장하는 등 긍정적, 부정적 평가를 함께 받는 인물이다. -
당 고조의 황자 -
이건성
당 고조 이연의 장남 이건성은 당나라 건국에 기여했으나 동생 이세민과의 권력 투쟁 중 현무문의 변에서 살해당한 후 황태자로 복권된 인물이다. -
684년 사망 -
낙빈왕
낙빈왕은 당나라 초기의 뛰어난 시인이자 문장가로, 왕발, 양형, 노조린과 함께 '당나라 사걸'로 불리며, 측천무후를 비판하는 격문을 작성한 것으로 유명하고, 화려한 변문 스타일과 복잡한 구성을 특징으로 하는 작품을 남겼으며, 이경업의 난 이후 행방이 묘연해졌으나 그의 삶과 문학은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
684년 사망 -
무아위야 2세
무아위야 2세는 우마이야 칼리파조의 제3대 칼리파로, 짧은 통치 기간 동안 칼브 부족의 지지를 받았으나 건강 악화로 국정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해 그의 사망 후 우마이야 왕조는 혼란에 빠졌다. -
생년 미상 -
손니 알리
손니 알리는 송가이 제국의 군주로서 니제르 강 유역을 장악한 후 팀북투와 젠네를 정복하고 군사력을 강화하여 제국을 확장했으며, 전통 신앙과 이슬람교 조화, 법에 의한 국가 통제, 무역 확립 등 내치에도 힘썼다. -
생년 미상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2. 생애
(내용 없음)
2.1. 초기 생애
이연(李淵)과 유보림(柳宝林) 사이에서 태어났다. 정관 13년(639년), 등왕(滕王)에 봉해졌으며, 실봉 1,000호를 받았다. 정관 15년(641년), 금주(金州) 자사에 임명되었으나, 행동이 제멋대로였고 절도가 없었다고 전해진다. 태종의 상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속관들을 모아 연회와 가무를 즐겼다고 한다.
영휘 3년(652년), 소주(蘇州) 자사로 옮겨졌다. 영휘 4년(653년)에는 홍주(洪州) 도독으로 부임하여 등왕각을 세웠다. 이 등왕각은 우한(武漢)의 황학루, 악양(岳陽)의 악양루와 함께 강남 3대 명루(名樓)로 손꼽힌다. 등왕각은 훗날 시인 왕발이 지은 등왕각서(滕王閣序)로 더욱 유명해졌으며, 후대 화가들의 그림 소재로도 자주 등장했다.
용삭 2년(662년), 융주(隆州) 자사로 전임되었다. 이후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 및 양주(梁州) 도독의 지위에 올랐다. 문명 원년(684년) 4월에 사망하였다. 사후 사도(司徒)와 기주(冀州) 도독의 관직이 추증되었으며, 고조의 능인 헌릉에 배장(陪葬)되었다.
슬하에 아들로는 장락왕(長樂王) 이순기(李循琦)를 포함하여 18명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