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당나라)
1. 개요
이유는 당나라 소종의 장남으로, 897년에 황태자가 되었으나 900년 환관 유계수의 쿠데타로 황제가 되었고, 이진으로 개명했다. 그러나 이듬해 소종이 복위하면서 덕왕으로 강등되었다. 이후 주전충의 견제를 받다 905년 주전충에 의해 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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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소종의 황자 -
당 애제
당 애제는 당나라의 마지막 황제이며, 주전충에 의해 옹립되어 황위에 올랐으나 선양을 강요당해 당나라가 멸망하고 독살되어 사후 애황제로 추시되었다. -
905년 사망 -
양행밀
당나라 말기 군벌 양행밀은 도둑에서 시작해 회남절도사가 되어 장강 중류 지역을 장악하고 오나라를 건국했으며, 당나라 신하로서의 입장을 지키며 당나라 연호를 사용했다. -
당나라의 황태자 -
이건성
당 고조 이연의 장남 이건성은 당나라 건국에 기여했으나 동생 이세민과의 권력 투쟁 중 현무문의 변에서 살해당한 후 황태자로 복권된 인물이다. -
당나라의 황태자 -
이현 (당)
이현은 당 고종의 아들이자 측천무후의 아들로, 학문에 능통하여 황태자에 책봉되었으나 폐위되어 유배된 후 자결했으며, 예종 복위 후 장회태자라는 시호를 받았다.
2. 생애
이유는 소종의 장남으로, 정확한 출생 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다. 어머니는 혜황후이다. 891년에 소종은 이유를 덕왕(德王)으로 봉했다.
896년, 황제 당 소종과 조정이 군벌 이무정의 공격으로 황도 장안에서 화주(華州, 현대 웨이난 시, 산시 성)로 피난하였다. 이후 당 소종은 진국 절도사(鎮國, 화주에 본부를 둠) 한건의 실질적인 통제를 받게 되었다. 897년 봄, 소종은 이유를 황태자로 책봉하고, 이윤의 이름을 이유로 바꾸었다. 그 직후, 이유의 어머니인 혜비는 황후로 책봉되었다.
900년, 환관 유계수 등은 소종이 술에 취해 몇몇 환관들과 시녀들을 죽이자, 신책군 병사들을 이끌고 궁궐로 들어가 소종에게 옥새를 넘기도록 강요한 뒤 가택 연금하고 이유를 황제로 옹립했다. 유계수는 이유를 황제로 선포하고 그의 이름을 이진으로 바꾸었다. 소종은 태상황으로, 황후 하씨는 태상황후로 존경받았지만 사실상 가택 연금 상태였다. 그러나 두 달도 채 안 되어 소종에게 충성하는 신책 군인들이 유계수와 왕중선을 살해하고 소종을 복위시켰다. 소종은 이진이 어리므로 책임을 묻지 않고, 그를 다시 태자궁으로 돌려보냈지만 태자 칭호는 박탈하고 덕왕으로 봉했다.
이후, 주전충의 견제를 받던 이유는 905년, 주전충이 구곡지에서 연회를 열어 이유와 그의 형제들을 초대한 뒤 모두 살해하고 시신을 연못에 유기했다.
2.1. 출생과 초기 생애
이유는 소종의 장남으로, 정확한 출생 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다. 어머니는 혜황후이다. 891년에 소종은 이유를 덕왕(德王)으로 봉했다. 그의 남동생 이좌는 892년에 태어났다.
2.2. 황태자 시절
896년, 황제 당 소종과 조정이 군벌 이무정의 공격으로 황도 장안에서 화주(華州, 현대 웨이난 시, 산시 성)로 피난하였다. 이후 당 소종은 진국 절도사(鎮國, 화주에 본부를 둠) 한건의 실질적인 통제를 받게 되었다. 한건은 소종에게 압력을 가해 황자들이 지휘권을 포기하게 하고 가택 연금되도록 강요하였다. 이후 한건은 이유를 황태자로 책봉할 것을 제안했고, 897년 봄, 소종은 이유를 황태자로 책봉하고, 이윤의 이름을 이유로 바꾸었다. 그 직후, 이유의 어머니인 혜비는 황후로 책봉되었다.
건녕 4년 2월에 황태자가 되었다. 광화 3년 11월에 유계술 등 일부 환관 세력의 쿠데타로 소종이 폐위되고, 황태자 이유가 새 황제로 즉위했다. 그러나 이듬해 천복 원년 정월에 반대 세력의 환관들이 봉기하여 소종이 복위했다. 이유는 퇴위당했고, 황태자 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덕왕으로 강등되었다.
2.3. 즉위와 폐위
900년, 환관 유계수 등은 소종이 술에 취해 몇몇 환관들과 시녀들을 죽이자, 신책군 병사들을 이끌고 궁궐로 들어가 소종에게 옥새를 넘기도록 강요한 뒤 가택 연금하고 이유를 황제로 옹립했다. 유계수는 이유를 황제로 선포하고 그의 이름을 이진으로 바꾸었다. 소종은 태상황으로, 황후 하씨는 태상황후로 존경받았지만 사실상 가택 연금 상태였다.
그러나 두 달도 채 안 되어 소종에게 충성하는 신책 군인들이 유계수와 왕중선을 살해하고 소종을 복위시켰다. 소란 중에 한 무리의 환관들이 이유를 좌신책군으로 호송했고, 옥새는 소종에게 돌아갔다. 소종은 이진이 어리므로 책임을 묻지 않고, 그를 다시 태자궁으로 돌려보냈지만 태자 칭호는 박탈하고 덕왕으로 봉했다.
2.4. 비극적인 죽음
이유는 소종 복위 이후 주전충의 견제를 받게 되었다. 905년, 주전충은 이유와 그의 형제들을 구곡지에서 열린 연회에 초대하여 모두 살해하고 시신을 연못에 유기했다. 이는 주전충이 황위를 찬탈하기 위한 잔혹한 행위였다.
사일 축제 때, 주전충은 장현휘에게 이유와 그의 여덟 명의 동생들을 구곡지에서 열린 잔치에 초대하도록 했다. 잔치에서 주전충은 군인들에게 황족들을 붙잡아 목 졸라 죽이게 했다. 그들의 시신은 연못에 버려졌다.
천우 2년(905년) 2월 무술일, 아버지를 살해한 주전충에게 초청받은 이유(李裕)는 동생인 제왕 이서(棣王李祤)와 이혜(李禊), 이인(李禋), 이위(李禕), 이비(李祕), 이기(李祺), 이진(李禛), 이상(李祥) 등과 함께 낙양 원내에서 거짓 연회 중에 주전충이 보낸 자객의 손에 의해 교살되었다. 그들의 유해는 부근의 구곡지에 던져졌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