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관
1. 개요
이익관은 조선 후기의 인물로, 남인 중진 문신 이서우의 첩의 아들이다. 1725년 이인좌의 난에 연루되어 투옥되었고, 국문 과정에서 이유익, 박필현, 이천해, 이일좌 등이 난에 연루되었다고 진술했다. 1728년 이순관의 괘서 사건을 알았지만 형제 사이라 고발하지 못했다고 진술했으나, 같은 해 참형당하고 가산이 몰수되었다. 그의 아들 이금강 또한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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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수된 사람 -
악비
남송 시대 장군 악비는 금나라에 맞선 애국 영웅으로, 진회의 모함으로 처형되었으나 사후 충절을 인정받아 무목이라는 시호를 받았고, 만강홍이라는 시와 함께 현대 중국에서도 존경받는 인물이지만, 최근 그의 군사 행위에 대한 재평가 논의가 있다. -
참수된 사람 -
주문모
청나라 출신 가톨릭 신부 주문모는 1794년 조선에 잠입하여 선교 활동을 하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하였으며, 초기 조선 천주교회 성장에 기여하여 2014년 시복되었다. -
1728년 사망 -
코튼 매더
코튼 매더는 미국의 회중교회 목사이자 저술가로, 뉴잉글랜드 청교도 사회에서 중요한 인물이었으며, 『미국 그리스도의 위대한 업적』을 저술하고 세일럼 마녀 재판 당시 마녀 혐의자 처형을 옹호하기도 했다. -
1728년 사망 -
마랭 마레
마랭 마레는 프랑스의 비올 연주자이자 작곡가로, 비올을 위한 작품과 오페라를 작곡했으며, 영화 《모든 세상의 아침》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졌다. -
경기도 출신 -
차훈
차훈은 2015년 밴드 엔플라잉의 기타리스트로 데뷔하여 슬래시와 마크 트레몬티를 롤 모델 삼아 독자적인 기타 연주 스타일을 구축하고, 김재현과 유튜브 채널 'Two Idiots'를 운영하며, 2022년부터는 연기 활동과 솔로 싱글 발표를 병행하다 2023년 군악대에 입대한 대한민국의 기타리스트이자 배우, 유튜버이다. -
경기도 출신 -
윤태일 (1918년)
윤태일은 만주군 장교 출신으로 한국 전쟁에 참전한 대한민국의 군인, 정치인, 기업인이며, 박정희 정권에서 서울특별시장과 대한주택공사 총재, 제9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나 만주군 복무 경력으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었다.
2. 생애
이익관은 남인 중진 문신 이서우의 서자로, 증조부는 이길남, 할아버지는 이경항이다. 친형제로는 이순관이 있었고, 누이는 민관효에게 출가하였다.
1728년 3월 28일 이인좌의 난 관련 공초에서 이익관은 자신은 난에 가담하지 않고, 형제 이순관이 괘서한 것만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으나, 결국 참형당하고 가산은 몰수되었다.
2.1. 초기 생애
이익관은 남인 중진 문신 이서우(1633년 - 1709년)의 서자로 태어났다. 이서우는 현종, 숙종 대의 인물이다. 이익관의 친형제로는 이순관이 있었고, 누이는 민관효에게 출가하였다.
2.2. 이인좌의 난 연루
1725년(영조 1) 1월, 이익관은 이인좌의 난에 연루되어 투옥되어 국문을 받았다. 그는 이유익이 흉언을 처음 하였는데, 이유익은 박필현(朴弼顯)에게 들었다고 진술했다. 또한 이천해가 생민동(生民洞)에 살다가 수각교(水閣橋)로 이사하였는데, 자신이 서울을 왕래하면서 이천해를 주인으로 삼았고, 속두(粟斗) 주기를 요구하면 이천해가 왔기 때문에 자신의 형제가 밤에 이천해와 함께 이런 말을 하였다고 했다. 이천해는 평소 당돌하였기 때문에 자신이 지시하여 시켰으며, 언근(言根)은 이일좌(李日佐)에게서 나왔는데, 이일좌는 이홍택(李弘澤)의 아들이며 이인좌(李麟佐)의 일가로 과천(果川)에 살면서 적당(賊黨)에 들어갔다고 진술했다. 영조에 의하면 이유익(李有翼)·박필현(朴弼顯)이 심유현을 꾀어 흉언을 만들어 내게 하고, 또 이익관(李翼觀) 형제, 민관효(閔觀孝)·한세홍·이일좌 등과 함께 원근에 전파했으며, 이익관이 이천해에게 변을 일으키도록 사주했다고 한다.
1728년 3월 17일, 이익관은 이복 형 이홍관에게 동생 이순관이 이인좌의 난에 가담한 사실을 알리며, 장차 집안을 모두 멸망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이홍관은 관가(官家)에 고발하려고 여러 번 생각했으나, 검극(劍戟)이 길에 가득 차 두려워서 즉시 고발하지 못했다. 신광원(愼光遠)이 복법(伏法)된 뒤에 이순관이 그 어미와 함께 가고자 한 것도 이익관이 울면서 이홍관에게 고한 것이라고 한다.
1728년 3월 27일 공초에서 이익관은 이유익(李有翼)을 모르고 자신의 아우가 이유익을 안다고 했다. 자신의 아우가 말하기를, ‘내가 스스로 짓고, 스스로 쓰고, 스스로 서소문(西小門) 밖에다 걸고는 민관효에게 보였더니, 민관효가 이유익에게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고 진술했다. 그는 이순관을 붙잡아 바치려 했으나 형제 사이여서 차마 하지 못하고 책망하였더니, 이순관이 ‘영웅(英雄)들이 창기(倡起)하여 축록(逐鹿, 사슴을 쫓는다) 하려는 마음이 이러하니, 공(功)이 있을 것이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순관은 신광원(愼光遠)의 매부(妹夫)이기 때문에 이처럼 흉악한 일을 한 것이며, 자신은 비록 형제 사이지만 실상 알지 못한다고 진술했다.
3월 28일 공초에서 그는 괘서(掛書)할 때 민관효(閔關孝)의 집에 모여 자신이 짓고 자신의 아우가 썼는데, 이유익(李有翼)이 그 자리에 있었다고 했다. 이유익이 처음으로 이런 흉언(凶言)을 하였는데, 그도 박필현(朴弼顯)에게 들었다고 하였다. 이천해(李天海)는 군사(軍士)인데 자신이 알고 있으며, 이천해가 처음에 생민동(生民洞)에 살다가 수각교(水閣橋)로 이사하여 자신이 서울로 왕래할 때 이천해를 주인으로 삼았는데, 좁쌀 말을 얻기 위해 마침 자신의 집으로 나왔기 때문에 자신의 형제가 밤에 이천해와 함께 이런 말을 하였다고 했다. 이천해는 평소 당돌하였으므로 자신이 이일좌(李日佐)에게서 언근(言根)이 나왔다고 말하라고 하였으니, 이일좌는 이홍택(李弘澤)의 아들로 과천(果川)에 살며, 이인좌의 일족(一族)으로 적당에 들었다고 하니 모역한 것이 사실이라고 진술했다.
같은 날 다른 공초에서 이일좌(李日佐)는 자신이 나라를 원망하는 말을 이익관에게 했다고 진술했다. 이익관은 자신은 이인좌의 난에 가담하지 않고, 형제 이순관이 괘서한 것만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날 이익관은 참형당하고 그의 가산은 노적(孥籍)되었다.
2.3. 사후
그의 아들 이금강(李今剛)은 만 17세였다는 이유로 1728년 3월 29일 처형당했다.
1728년 6월 1일 이유익(李有翼)의 공초(供招)에서 이익관이 괘서의 글을 지었다는 내용이 언급되었다. 이유익은 공초에서 '경중(京中)에서 괘서(掛書)한 적(賊)은 곧 이서우(李瑞雨)의 첩자(妾子)이고 민관효(閔觀孝)의 처남인데 이는 바로 이순관(李順觀)·이익관(李翼觀)이다.'라고 하였다. 이어 '역적 이익관의 공초에 '당초 흉악한 말을 한 자는 이유익·박필현(朴弼顯)이며, 민관효가 이익관에게 괘서하는 일을 시키며 말하기를, 「그대들이 이 일을 하면 좋은 벼슬을 얻을 것이다.」 하였으며, 이익관이 글을 짓고 이순관이 썼으며, 2월 22일 날이 밝기 전에 성안에 들어가 서소문(西小門)에 그 글을 걸었으며, 이순관이 그 글을 민관효에게 보이고 민관효가 이유익에게 말하였는데, 이순관은 곧 역적 신광원(愼光遠)의 매부입니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