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방 (당 황족)
1. 개요
이지방은 당나라 황족으로, 가부원외랑, 범양군 사마, 공부 시랑, 태자우서자, 종정경 등을 역임했다. 안록산의 난 이후 낙양으로 돌아갔으며, 어사대부로 토번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다가 2년간 억류되기도 했다. 예부상서에 임명되었으나 태자빈객으로 발령되었고, 대력 3년(768년) 가을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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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의 재상 -
혼감
혼감은 당나라 군인으로, 11세에 삭방군에 들어가 군공을 세우고 안사의 난과 주차의 난에서 활약하여 좌효위장군, 개부의동삼사, 태상경 등을 거쳐 염주성 수축 공로로 검교사도 겸 중서령이 되었으며, 799년에 사망했다. -
당나라의 예부상서 -
마식 (당나라)
마식은 당나라 중기의 인물로, 헌종 연간에 진사과에 급제하여 문종 연간에 재상이 되었으나 환관과의 관계로 파면되어 절도사로 좌천되었다. -
당나라의 예부상서 -
이도종
이도종은 당나라 초기에 당 고조 이연의 종실로서 당나라 건국과 여러 전쟁에서 공을 세워 왕에 봉해졌고, 당 태종 시기 토욕혼 정벌, 문성공주를 토번으로 시집보내는 등 활약했으나, 당 고종 시기 모반 혐의로 유배 중 사망 후 관직이 복구되었으며 당나라 초기 가장 뛰어난 왕족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다. -
당나라의 황족 -
이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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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의 황족 -
이사훈
당나라 화가 이사훈은 당 고조의 종실이자 금벽산수화풍을 발전시켜 '대 이장군'이라 불렸으며 그의 화풍은 아들 이소도에게 전해져 북종화의 시조로 여겨진다.
2. 생애
(내용 없음)
2.1. 초기 생애 및 관직
개원 말 가부원외랑에 임명되었다. 이후 안록산의 추천으로 범양군 사마에 임명되었다. 안록산의 난이 일어나자 사임하고 낙양으로 돌아갔다. 이후 공부 시랑, 태자우서자, 종정경 등을 역임하였다. 광덕 초년인 763년, 대종의 명으로 어사대부 재직 중 사신으로 토번에 파견되었다. 그러나 토번 국왕에게 붙잡혀 2년간 감금되었다가 귀국하였다. 귀국 후 예부 상서에 임명되었으나, 곧 태자빈객으로 옮겨졌다.
대력 3년(768년) 가을에 사망하였으며, 사망 원인과 당시 나이는 알려지지 않았다.
2.2. 안록산의 난과 낙향
개원 말엽 가부원외랑으로 임명되었으며, 이후 안록산의 추천을 받아 범양군 사마가 되었다. 그러나 안록산이 난을 일으키자 관직을 버리고 낙양으로 돌아왔다. 이후 공부 시랑, 태자우서자, 종정경 등의 관직을 거쳤다. 광덕 초년인 763년에는 대종의 명으로 어사대부로서 토번에 사신으로 갔으나, 토번 국왕에게 붙잡혀 2년간 억류되었다가 풀려나 귀국했다. 귀국 후 예부 상서에 임명되었지만, 곧 태자빈객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력 3년인 768년 가을에 사망하였으며, 사망 당시 나이나 정확한 사인은 알려져 있지 않다.
2.3. 토번 파견과 억류
광덕 초년인 763년, 대종의 칙명을 받아 어사대부 직책에 있으면서 토번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그러나 토번의 국왕에게 붙잡혀 2년간 억류되었다가 풀려나 귀국하였다. 이후 예부상서에 임명되었으나, 곧 태자빈객으로 자리를 옮겼다.
2.4. 귀국 후 관직
개원 말, 가부원외랑에 임명되었고, 이후 안록산의 추천으로 범양군 사마가 되었다. 안록산의 난이 일어나자 사임하고 낙양으로 돌아왔다. 이후 공부 시랑, 태자우서자, 종정경 등을 역임했다. 광덕 초년(763년)에는 대종의 명으로 어사대부 재직 중 사신으로 토번에 파견되었다. 그러나 토번 국왕에게 붙잡혀 2년간 억류되었다가 귀국했다. 귀국 후 예부 상서에 임명되었으나 곧 태자빈객으로 옮겼다.
대력 3년(768년) 가을에 사망했으며, 사망 원인과 당시 나이는 알려지지 않았다。
2.5. 사망
대력 3년(768년) 가을에 사망했으나, 그의 사망 원인과 나이는 불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