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마 도모히코
1. 개요
이코마 도모히코는 1932년 효고현 출생으로, 간세이 가쿠인 대학 축구부에서 활약하며 1953년과 1955년 천황배 우승에 기여했다. 대학 졸업 후 신미쓰비시 중공업에 입사하여 선수로 활동했으며, 1955년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5경기에 출전했다. 1966년에는 미쓰비시 자동차의 선수 겸 감독을 맡았으며, 이후 가네가와 조선의 사장과 회장을 역임하다가 2009년 사망했다.
| 이름 | 이코마 도모히코 |
|---|---|
| 원어 이름 | 生駒 友彦 |
| 로마자 표기 | Ikoma Tomohiko |
| 출생일 | 1932년 8월 25일 |
| 출생지 | 효고현 |
| 사망일 | 2009년 4월 27일 |
| 사망지 | 고베시효고구 |
| 신장 | 174cm |
| 포지션 | 골키퍼 |
| 유소년 클럽 | 고베 고등학교(1948-1950) 간세이 가쿠인 대학(1951-1954) |
|---|---|
| 프로 클럽 | 미쓰비시 중공업(1955-1966) |
| 클럽 출장/득점 | 0/0 |
| 국가대표팀 |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1955-1959) |
|---|---|
| 국가대표 출장/득점 | 5/0 |
| 감독 클럽 | 미쓰비시 중공업(1966) |
|---|
| 팀 | 올 광학 |
|---|---|
| 우승 | 천황배(1953) 천황배(1955) |
-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의 축구 감독 -
요시다 야스시
요시다 야스시는 미쓰비시 자동차에서 선수로 활동하다가 은퇴 후 우라와 레즈에서 지도자 생활을 했으며, 일본 U-20 국가대표팀 감독을 거쳐 로아소 구마모토와 사뭇 프라칸 시티 FC의 감독을 역임했다. -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의 축구 감독 -
폴커 핑케
폴커 핑케는 독일의 축구 감독으로, TSV 하펠세를 2. 분데스리가로 승격시키고 SC 프라이부르크 감독으로서 팀을 분데스리가로 승격 및 UEFA컵 진출을 이끌었으며,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 1. FC 쾰른, 카메룬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역임하며 짧은 패스 기반 공격 축구를 지향하고 사회 문제에도 적극적인 인물이다. -
2009년 사망 -
정석모
경찰 출신 행정가이자 정치인인 정석모는 치안국장, 도지사, 차관, 6선 국회의원, 내무부 장관 등을 역임하며 충청권 정치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고, 정계 은퇴 후에는 건양대학교 이사장으로 활동했다. -
2009년 사망 -
한영수 (정치인)
한영수는 충청남도 서산군 출신의 정치인으로, 5·9·10·11·14·15대 국회의원을 역임하고 신민당 대변인, 민한당 정책위 의장, 국회 국방위원장 등을 지냈으나 잦은 당적 변경과 간통 혐의로 비판받았다. -
일본 사커 리그의 축구 선수 -
교토쿠 고지
교토쿠 고지는 일본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다양한 클럽과 국가대표팀을 지휘하며, 2008년 부탄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남아시아 축구 연맹컵 준결승 진출, 2003년 시미즈 에스펄스 감독으로 J리그컵 준결승과 천황배 준결승 진출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
일본 사커 리그의 축구 선수 -
스가마타 데쓰오
스가마타 데쓰오는 일본의 전 축구 선수로, 수비수로 활약하며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23경기에 출전했고, 히타치 제작소 축구부에서 선수 생활을 하며 1980년과 1982년 일본 사커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는 등 다양한 국제 대회에 출전했다.
2. 선수 경력
이코마 도모히코는 1932년 8월 25일 효고현에서 태어났다. 효고현립 고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간세이 가쿠인 대학에 진학하여 축구부에서 활동했다. 대학 시절에는 모교 선수 및 졸업생으로 구성된 올 쾅가쿠 팀의 일원으로 도키타 마사노리 등과 함께 1953년과 1955년 천황배 천황배 우승을 경험했다.
대학 졸업 후인 1955년, 신미쓰비시 중공업(후의 미쓰비시 중공업)에 입단하여 이노우에 겐, 키타구치 아키라 등과 함께 팀의 초창기를 이끌었다. 미쓰비시 소속으로 1956년 전국 도시 대항 축구 선수권 대회 준우승, 1959년 전일본 실업단 축구 선수권 대회 준우승 등에 기여했다.
일본 국가대표팀 선수로는 다케코시 시게마루 감독 시절인 1955년에 발탁되어 동남아시아 원정에서 데뷔했다. 같은 해 버마와의 경기를 통해 국제 A매치에 처음 출전했으며, 총 5경기에 나섰다.
1965년 팀이 새로 출범한 일본 사커 리그에 참가했으나 리그 경기에 출전하지는 못했다. 선수 생활 막바지에는 미쓰비시 중공업에서 선수 겸 코치를 맡았고, 은퇴 직후인 1966년에는 감독으로 한 시즌 동안 팀을 이끌었다.
2.1. 클럽 경력
효고현 출신이다. 간세이 가쿠인 대학 재학 시절, 대학 선수 및 졸업생으로 구성된 올 쾅가쿠 팀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도키타 마사노리 등과 함께 1953년과 1955년 천황배의 천황배 우승에 기여했다.
대학 졸업 후 1955년 신미쓰비시 중공업(후의 미쓰비시 중공업)에 입단하여, 이노우에 겐, 키타구치 아키라 등과 함께 팀의 창설기를 이끌었다. 그의 활약으로 팀은 1956년 전국 도시 대항 축구 선수권 대회 준우승, 1959년 전일본 실업단 축구 선수권 대회 준우승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1965년 팀이 새로 출범한 일본 사커 리그에 참가했으나, 이코마는 선수 생활의 막바지에 있었다.
2.1.1. 클럽 통계
대학 졸업 후, 1955년에 미쓰비시 자동차에 입단했다. 1965년, 새로 출범한 일본 사커 리그에 팀이 참가했지만, 그는 리그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1966년에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2.2. 국가대표팀 경력
간세이 가쿠인 대학 재학 중이던 1955년, 다케코시 시게마루 감독이 이끌던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의 동남아시아 원정 명단에 포함되었다. 같은 해 1월 2일 양곤에서 열린 버마와의 국제 친선 경기를 통해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이 해에 총 5경기의 국제 A매치에 출전하였다.
2.2.1. 국가대표팀 통계
1955년 1월 2일, 이코마는 간세이 가쿠인 대학 학생 신분으로 버마를 상대로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1955년 한 해 동안 일본 대표팀에서 총 5경기에 출전했으나 득점은 기록하지 못했다.
|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기록 | ||
|---|---|---|
| 연도 | 출장 | 득점 |
| 1955 | 5 | 0 |
| |5||0 | ||
2.2.2. 국가대표팀 출전 기록
1955년 1월 2일, 이코마는 간세이 가쿠인 대학 학생 신분으로 버마를 상대로 일본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1955년 일본 대표팀에서 5경기에 출전했다.
|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 ||
|---|---|---|
| 연도 | 출장 | 득점 |
| 1955 | 5 | 0 |
| |5||0 |
* 국제 A매치: 5경기 0득점 (1955)
3. 감독 경력
선수 은퇴 후 미쓰비시 중공업 축구부에서 코치로 활동하다가, 1966년에는 선수 겸 감독으로 승격하여 한 시즌 동안 팀을 이끌었다. 1966 시즌 종료 후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축구 해설자로도 활동했다.
미쓰비시 퇴사 후에는 실업가로 활동하며 가네가와 조선의 사장과 회장을 역임했다.
3.1. 감독 통계
1966년, 미쓰비시 중공업에서 선수 겸 감독을 맡아 1시즌 동안 팀을 이끌었다. 1966 시즌 종료 후 감독직에서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