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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형 (축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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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태형은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이다. 1987년 대우 로얄즈에서 데뷔하여 포항제철 아톰즈를 거쳐 전북 버팔로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1983년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4강 진출에 기여했으며,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1983년부터 1984년까지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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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형 (축구인)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로마자 표기I Taehyeong
출생일1964년 9월 1일
출생지대한민국
173cm
포지션미드필더
선수 경력
청소년 클럽해당사항 없음
클럽 연도1987-1990
클럽대우 로얄즈
클럽 연도1991-1992
클럽포항제철 아톰즈
클럽 연도1994
클럽전북 버팔로
출장수 (골)해당사항 없음
국가대표 경력
국가대표팀 연도1983
국가대표팀대한민국 U-20
국가대표팀 연도1983-1984
국가대표팀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출장수 (골)해당사항 없음
기타 정보
현 소속팀해당사항 없음
등번호해당사항 없음

2. 선수 경력

이태형은 1987년 대우 로얄즈에 입단하여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1987년 5월 9일 포항제철 아톰즈와의 경기에서 K리그 첫 골을 기록하였으나, 정해원, 이태호, 김주성 등 뛰어난 선수들에게 밀려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는 못했다.[1]

1991년 7월 포항제철 아톰즈로 현금 트레이드된 후, 같은 달 10일 일화와의 경기에서 프로통산 1700번째 골을 기록했다.[1] 그러나 이후 박태하, 최문식, 장영훈 등 신진급 선수들에게 밀려 자리를 잡지 못했다.

1993년 이흥실 등 7명과 함께[2] 당시 완산 푸마에 지명된 황선홍의 지명권을 포항제철 아톰즈에 넘겨주는 조건으로 완산 푸마로 이적했으나, 여러 사정으로 프로 리그 경기를 뛰지 못하고 1년 동안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1994년 우여곡절 끝에 K리그에 참가한 신생팀 전북 버팔로에서 프로 선수로 복귀했지만, 결국 그 해를 끝으로 은퇴했다.

1983년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참가하여 팀의 4강 진출에 기여했다. 1983년 11월 1일 태국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경기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으며, 1984년 6월 3일 과테말라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경기에서 국가대표팀 첫 골을 기록했다.

2. 1. 클럽팀 경력

1987년 대우 로얄즈에 입단했다. 1987년 5월 9일 포항제철 아톰즈와의 경기에서 K리그 첫 골을 터뜨렸으나 정해원, 이태호, 김주성 등 쟁쟁한 선수들에게 밀려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1] 1991년 7월 포항제철 아톰즈로 현금 트레이드된 뒤, 같은 달 10일 일화와의 경기에서 프로통산 1700골을 기록했다.[1] 그러나 이후 박태하, 최문식, 장영훈 등 신진급 선수에게 밀려 설 자리를 잃었다. 1993년 이흥실 등 7명과 함께[2] 당시 완산 푸마에 지명된 황선홍의 지명권을 포항제철 아톰즈에 넘겨주는 대가로 완산 푸마 유니폼을 입었으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프로리그를 밟지 못해 1년 동안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1994년 우여곡절 끝에 K리그에 참가한 신생팀 전북 버팔로에서 프로 선수로 복귀하였으나, 결국 그 해를 끝으로 은퇴했다.

2. 2. 국가대표팀 경력

1983년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참가하여 팀의 4강 진출에 공헌했다. 1983년 11월 1일 태국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경기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1984년 6월 3일 과테말라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경기에서 국가대표팀 첫 골을 기록했다.

참조

[1] 뉴스 移籍(이적)선수들"그라운드가 비좁다" https://newslibrary.[...] 경향신문 1991-07-13
[2] 뉴스 黃(황)선홍 포철行(행) 확정 https://newslibrary.[...] 동아일보 1993-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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