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폴리토 알도브란디니 (추기경)
1. 개요
이폴리토 알도브란디니는 멜돌라와 사르시나의 공작 잔프란체스코 알도브란디니와 교황 클레멘스 8세의 조카 올림피아 알도브란디니 사이에서 태어난 추기경이다. 1621년 교황 그레고리오 15세에 의해 추기경으로 임명되었으며, 1623년부터 1638년까지 교황청 재무원을 역임했다. 그는 예술 후원자였으며, 도메니코 마초키와 도메니키노를 후원했다. 그는 또한 퀴리날 언덕의 빌라 알도브란디니를 포함한 재산을 상속받았으나, 사망 후 조카에게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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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 | 1565년 1월 1일, 로마 |
|---|---|
| 사망 | 1638년 7월 19일 (73세), 로마 |
| 국적 | 교황령 |
| 서품 | 1585년 |
|---|---|
| 임명 | 1585년 12월 18일, 산피에트로인빈콜리 성당의 추기경 사제 1605년 6월 1일, 오스티아-벨레트리 대교구의 추기경 주교 |
| 주교 서임 | 1605년 6월 9일, 교황 레오 11세 |
| 가문 | 알도브란디니 가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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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궁무처장 -
라파엘레 리아리오
교황 식스토 4세의 종손인 라파엘레 리아리오는 15세기 후반 이탈리아 추기경이자 족벌주의 정책 수혜자로서 파치 음모 사건에 연루되었으나, 교황청 내 외교관 및 고문으로 활동하며 미켈란젤로를 후원하는 등 로마 르네상스 전성기 도래에 기여했고 그의 궁전은 칸첼레리아 궁전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
교황 궁무처장 -
교황 레오 13세
교황 레오 13세는 1878년 선출된 제256대 교황으로, 교회와 현대 세계의 간극을 좁히고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 장려, 노동자 권익 옹호 및 가톨릭 사회 교리 확립에 기여했으며, 회칙 《노동 헌장》을 통해 자본주의 폐해를 경고하고 사회 문제에 대한 교회의 입장을 정립했다. -
1638년 사망 -
하치스카 이에마사
하치스카 이에마사는 센고쿠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에 걸쳐 활약하며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섬기고 시코쿠 정벌 이후 아와 18만 석의 다이묘가 되었으며, 임진왜란 참전과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영지를 보전하고 다도에 조예가 깊었던 무장이다. -
1638년 사망 -
장유 (조선)
장유는 조선 중기의 문신, 학자, 작가로서 김장생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최명길, 조익, 이시백과 절친했으며 인조반정에 참여하여 정사공신으로 신풍군에 봉해졌고, 대사간, 대사헌, 대제학, 이조판서, 병조판서, 공조판서, 우의정 등을 역임하며 병자호란 당시 최명길과 함께 강화를 주장했고 신흠, 이정구, 이식과 함께 월상계택 4대가로 불린 인물이다. -
이탈리아의 추기경 -
에르콜레 콘살비
에르콜레 콘살비는 이탈리아 출신의 추기경이자 국무성성 장관으로, 나폴레옹과의 정교 협약 체결 및 빈 회의 참여를 통해 교황령 영토 회복에 기여했으며, 내정 개혁을 추진하다 실각하고 사망했다. -
이탈리아의 추기경 -
쥘 마자랭
쥘 마자랭은 이탈리아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하며 30년 전쟁 종식과 프랑스-스페인 전쟁 승리에 기여하고 프롱드의 난을 진압하여 루이 14세의 절대왕정 기반을 다진 추기경이자 정치가이다.
2. 생애
이폴리토 알도브란디니는 멜돌라와 사르시나의 공작인 잔프란체스코 알도브란디니와 교황 클레멘스 8세의 조카인 올림피아 알도브란디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1593년, 교황의 초청으로 그의 부모는 로마로 이주했다. 이폴리토의 누나 마르게리타는 파르마 공작 부인이 되었다.
교황 그레고리오 15세는 1621년 4월 추기경 회의에서 그를 성 마리아 누오바의 추기경-부제로 임명했다. 1626년에는 성 안젤로 인 페스케리아를, 1634년에는 산트 유스타키오를 선택했다.
1623년부터 1638년까지 로마 가톨릭 교회의 교황청 재무원으로 재직했으며, 마페오 바르베리니가 교황으로 선출된 1623년 교황 선거에 참여했다.
2.1. 가문과 초기 생애
그는 멜돌라와 사르시나의 공작인 잔프란체스코 알도브란디니와 교황 클레멘스 8세의 조카인 올림피아 알도브란디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1593년, 교황의 초청으로 그의 부모는 로마로 이주했다. 이폴리토의 누나인 마르게리타는 파르마 공작 부인이 되었다.
2.2. 추기경 서임과 활동
교황 그레고리오 15세는 1621년 4월 추기경 회의에서 그를 성 마리아 누오바의 추기경-부제로 임명했다. 그는 1626년에 성 안젤로 인 페스케리아를, 1634년에 산트 유스타키오를 선택했다.
1623년부터 1638년까지 로마 가톨릭 교회의 교황청 재무원으로 재직했으며, 마페오 바르베리니가 교황으로 선출된 1623년 교황 선거에 참여했다.
2.3. 예술 후원
이폴리토는 예술 후원자였으며, 1621년 그의 시종으로 바로크 작곡가 도메니코 마초키를 고용했다. 또한 1634년 여름 프라스카티에 있는 빌라 알도브란디니에 머물렀던 도메니키노의 후원자이기도 했다.
그의 외삼촌인 피에트로 알도브란디니 추기경은 페라라의 교황 사절이자 유명한 예술 후원자였다. 1597년 알폰소 2세 데스테가 후계자 없이 사망하고 페라라 공국이 교황령에 편입되면서 데스테 가문의 보물로 그의 컬렉션이 확장되었다. 피에트로 추기경은 자신의 재산을 누이 올림피아에게 남겼다. 1637년 그녀가 사망하면서, 이 재산은 퀴리날에 있는 빌라 알도브란디니를 포함하여 그녀의 장남이자 이폴리토 알도브란디니 추기경에게 넘어갔다.
2.4. 재산 상속과 사망
이폴리토는 예술 후원자였으며, 1621년 그의 시종으로 들어온 바로크 작곡가 도메니코 마초키를 고용했다. 그는 또한 1634년 여름 프라스카티에 있는 빌라 알도브란디니에 머물렀던 도메니키노의 후원자이기도 했다.
그의 외삼촌인 피에트로 알도브란디니 추기경은 페라라의 교황 사절이자 유명한 예술 후원자였다. 1597년 알폰소 2세 데스테가 후계자 없이 사망하고 페라라 공국이 교황령에 편입되면서 데스테 가문의 보물로 그의 컬렉션이 확장되었다. 피에트로 추기경은 자신의 재산을 누이 올림피아에게 남겼다. 1637년 그녀가 사망하면서, 이 재산은 퀴리날에 있는 빌라 알도브란디니를 포함하여 그녀의 장남이자 이폴리토 알도브란디니 추기경에게 넘어갔다. 이듬해 추기경이 사망하자 이 재산은 그의 조카 올림피아 알도브란디니에게 돌아갔고, 그녀는 가문의 유일한 상속자가 되었다. 그녀가 카밀로 프란체스코 마리아 팜필리와 결혼하면서 재산과 부동산은 팜필리 가문으로 넘어가 도리아 팜필리 미술관의 핵심이 되었다.
알도브란디니 추기경은 1638년 7월 19일 42세의 나이로 사망하여 산타 마리아 소프라 미네르바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