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홍려)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이(大鴻臚)는 전한 소제 때 대홍려로, 제북왕 유관을 소환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후원 2년, 제북왕 유관이 폐위된 사건에 연루되었으며, 당시 대홍려 재임 시기가 전광명의 재임 시기와 겹쳐 논쟁이 있다. 왕선겸은 이가 전광명으로, 기록 오류로 인해 이름이 잘못 표기되었다고 주장했다. 관련 기록은 반고의 《한서》에 수록되어 있다.

이 (대홍려)
📚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생몰년 미상 - 유급
    유급은 전한 말기에 신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 멸망으로 작위를 잃은 유영의 아들이다.
  • 생몰년 미상 - 야스케
    야스케는 16세기 일본에 기록된 최초의 아프리카인으로,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았으며, 혼노지의 변에서 함께 싸웠으나 이후 행적은 불확실하고,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에서 소재로 활용된다.
  • 한나라의 정치인 - 구독
    구기(緱起)는 전한 시대에 기후(騎虎)에 봉해지고 태상(太常)을 역임한 인물로, 기원전 32년 사망 후 그의 아들 구숭(求崇)이 기후 자리를 계승했다.
  • 한나라의 정치인 - 석편
    석편은 전한 시대의 관료로, 기원전 138년에 내사에 임명되어 석경의 뒤를 이어 내사를 지냈으며, 정당시가 그의 후임자이다.
  • 전한 사람 - 전한 무제
    전한의 제7대 황제인 전한 무제는 54년간 재위하며 유교 기반 중앙집권 강화, 흉노 정벌을 통한 영토 확장, 소금과 철의 전매제 등 경제 개혁을 추진하여 전한의 최전성기를 이끌었으나, 과도한 군사 지출, 사치스러운 생활, 무고의 난 등 부정적인 면모도 보였다.
  • 전한 사람 - 구독
    구기(緱起)는 전한 시대에 기후(騎虎)에 봉해지고 태상(太常)을 역임한 인물로, 기원전 32년 사망 후 그의 아들 구숭(求崇)이 기후 자리를 계승했다.

2. 행적

후원 2년(기원전 87년), 제북유관이 아버지 제북식왕의 왕후와 첩 등과 간통하고 황제를 저주하였다는 상주가 올라왔다. 소제대홍려 이를 보내 유관을 소환하였고, 유관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제북국은 폐지되어 북안현(北安縣)이 되었고 태산군에 흡수되었다.

이의 대홍려 재임 시기는 전광명의 재임 시기와 겹치는데, 자세한 정황은 알려져 있지 않다. 왕선겸은 이가 곧 전광명이며, 원래 '광명(廣明)'으로 기록되었어야 할 것이 '광(廣)' 자가 빠지고, '명(明)' 자가 잘못 기록되어 '이(利)'가 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2.1. 제북왕 유관 사건

후원 2년(기원전 87년), 제북유관이 아버지 제북식왕의 왕후 광(光)·첩 효아(孝兒)와 간통하고 황제를 저주하였다는 상주가 올라왔다. 소제대홍려 이를 보내 유관을 소환하였고, 유관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제북국은 폐지되어 북안현(北安縣)이 되었고 태산군에 흡수되었다.

왕선겸은 이가 곧 전광명이며, 본래 '광명(廣明)'으로 기록되었어야 할 것이 '광(廣)' 자가 빠진 데다가, '명(明)' 자가 전사 과정에서 '리(利)'로 잘못 기록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2.2. 대홍려 재임 시기 논쟁

후원 2년(기원전 87년)은 전광명대홍려 재임 시기와 겹치는데, 정황은 알 수 없다. 왕선겸은 이가 곧 전광명이며, 본래 '廣明'으로 기록되었어야 할 것이 廣이 빠진 데다가, 明이 전사 과정에서 利로 잘못 기록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3. 관직 임명

후원 2년(기원전 87년), 제북유관이 아버지 제북식왕의 왕후 등과 간통하고 황제를 저주하였다는 상주가 올라와, 소제대홍려 이 를 보내 유관을 소환하였다. 유관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제북국은 북안현(北安縣)이 되어 태산군에 흡수되었다.

3.1. 전임자와 후임자

후원 2년(기원전 87년) 당시 대홍려는 이였으나, 같은 시기 전광명이 대홍려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어 정황은 알 수 없다. 왕선겸은 이가 곧 전광명으로, 본래 '廣明'으로 기록되었어야 할 것이 廣이 빠진 데다가, 明이 전사 과정에서 利로 잘못 기록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4. 출전

반고의 《한서》에 따르면, 왕선겸은 이가 곧 전광명이며, 본래 '廣明'으로 기록되었어야 할 것이 廣(넓을 광) 자가 빠지고, 明(밝을 명) 자가 전사 과정에서 利(이로울 리) 자로 잘못 기록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4.1. 사료

반고의 《한서》 권7 소제기(昭帝紀) · 권44 회남형산제북왕전(淮南衡山濟北王傳)에 이(대홍려)에 관한 기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