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미륵산성
1. 개요
익산 미륵산성은 전라북도 익산시 미륵산에 위치한 산성으로, '용화산성'이라고도 불린다. 고조선 시대에 쌓았다는 설과 마한 시대에 만들어졌다는 추정이 있으며, 백제 무왕 때 창건되었다는 설도 전해진다. 고려 태조가 후백제의 신검을 토벌할 때 이 산성을 이용했다는 기록도 있다. 둘레 약 1287m, 높이 2.4m의 규모이며, 동문, 남문 등 여러 성문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백제 시대에 축성되어 조선 초기까지 개축되었으며, 현재 동문지와 주변 성벽을 정비하고 있다. 성의 길이는 1,822m로 익산 지역 최대 규모이며, 성 내부에는 건물지, 장대지, 우물터가 남아있다.
-
백제의 성 -
청주 상당산성
청주 상당산성은 청주시 시가지에 인접한 산 정상에 축조된 둘레 약 4.2km의 산성으로, 통일신라 시대에 축성되었으며 조선 시대 수축과 개축을 거쳐 현재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
백제의 성 -
익산 토성
익산 토성은 오금산 정상에 흙과 돌로 쌓은 산성으로,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전반에 축조되었으며 백제, 통일신라, 고려 시대 유물이 발견되었다. -
익산시의 문화유산 -
익산 토성
익산 토성은 오금산 정상에 흙과 돌로 쌓은 산성으로,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전반에 축조되었으며 백제, 통일신라, 고려 시대 유물이 발견되었다. -
익산시의 문화유산 -
익산 쌍릉
익산 쌍릉은 백제 무왕의 능으로 추정되는 익산시 왕궁면 소재의 백제 후기 왕릉으로, 대왕릉에서 발견된 유골 분석 결과가 무왕의 기록과 일부 일치하나, 무왕릉 확정 여부 및 소왕릉 주인공에 대한 추가 연구와 익산 천도설 관련 논쟁이 남아있다. -
대한민국의 지리에 관한 -
부산민주공원
부산민주공원은 부산광역시 중구 중앙공원 내에 위치하며 부마민주항쟁 20주년 기념으로 1999년에 개관한 공원으로, (사)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가 부산광역시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며, 부산광역시 조례에 따라 관리된다. -
대한민국의 지리에 관한 -
한강공원
한강공원은 서울과 경기도에 걸쳐 조성된 대규모 공원 시스템으로, 1982년부터 1986년까지의 한강종합개발계획을 통해 조성되었으며, 한강르네상스 사업을 통해 문화, 예술, 레저 공간으로 발전하여 다양한 행사와 활동을 제공하며 생태계 보전에도 기여한다.
2. 역사
전라북도 익산시 미륵산에 위치한 이 산성은 '용화산성'이라고도 불리는데, 옛날에는 미륵산을 용화산이라 불렀기 때문이다.
고조선 기준왕이 이곳으로 내려와 쌓았다고 하여 '기준성'이라고도 부르기도 하지만, 마한의 여러 나라 중 하나가 이곳을 중심으로 세력을 누리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산성도 그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태조가 후백제의 신검과 견훤을 쫓을 때 이를 토벌하여 마성에서 신검의 항복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 마성이 바로 이 산성이다.
미륵산성은 둘레 약 1287m, 높이 2.4m이며, 정상에서 사방으로 능선을 따라 성이 만들어졌고, 그중 하나는 물 흐르는 곳을 향하여 내려가는데 여기에는 동문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문에는 작은 성을 따로 쌓아 방어에 유리하게 하였으며, 성안에서는 돌화살촉, 포석환 등 기타 유물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2.1. 고조선 및 마한 시대
고조선 기준왕이 쌓았다고 하여 '기준성'이라고도 불리지만, 마한의 여러 나라 중 하나가 이곳을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하면서 산성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태조가 후백제의 신검과 견훤을 쫓을 때 이를 토벌하여 마성에서 신검의 항복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 마성이 바로 이 산성이다.
2.2. 백제 시대
백제 무왕 때 창건되었다는 설이 전해진다. 1990년 발굴조사 결과 백제 시대에 축성된 사실이 확인되었다.
2.4. 조선 시대
익산 미륵산성은 전라북도 익산시 미륵산에 위치한 산성으로, '용화산성'이라고도 불린다. 옛날에는 미륵산을 용화산이라 불렀기 때문이다. 고조선시대 기준왕이 이곳으로 내려와 쌓았다고 하여 '기준성'이라고도 부르지만, 마한의 여러 나라 중 하나가 이곳을 중심으로 세력을 누리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산성도 그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태조가 후백제의 신검과 견훤을 쫓을 때 이를 토벌하여 마성에서 신검의 항복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 마성이 바로 이 산성이다.
미륵산성은 둘레 약 1287m, 높이 2.4m이며, 정상에서 사방으로 능선을 따라 성이 만들어졌고, 그 중 하나는 물 흐르는 곳을 향하여 내려가는데 여기에는 동문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문에는 작은 성을 따로 쌓아 방어에 유리하게 하였으며, 성안에서는 돌화살촉, 포석환 등 기타 유물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발굴조사를 통해 조선 초기까지 개축이 이루어진 사실이 확인되었다.
3. 구조
미륵산성은 해발 430m 미륵산(일명 용화산) 최고봉인 장군봉과 동쪽 계곡을 둘러 쌓은 석성으로 기준성 또는 백제 무왕대 창건된 성으로 전해지고 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고조선 왕 준이 금마땅에 내려와 마한을 개국하고 성을 쌓았다 하여 기준성으로 불린다'고 기록되어 있다. 성내에서는 무문토기편과 청동기, 백제토기편 및 기와편이 출토되고 있으나 1990년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의 동문지 발굴조사결과 백제시대에 축성되어 조선 초기까지 4차에 걸쳐 개축된 사실이 확인되었다.
성의 길이는 1,822m로서 익산지역 최대규모의 산성이다. 성은 산 경사면에 쌓았는데, 성벽의 높이는 4~5m이며, 폭은 6m정도이다. 성 내부에는 건물지, 장대지, 우물터가 남아 있다. 현재 동문지, 남문지와 10개의 치(성벽에서 돌출시켜 쌓은 성벽)가 남아있고 동문지와 주변 성벽을 정비하고 있다.
==== 성문 ====
미륵산성에는 동문, 남문 등 여러 성문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문에는 작은 성을 쌓아 방어력을 높였다. 현재 동문지와 남문지가 남아있으며, 10개의 치가 확인된다.
3.1. 성문
미륵산성에는 동문, 남문 등 여러 성문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문에는 작은 성을 쌓아 방어력을 높였다. 현재 동문지와 남문지가 남아있으며, 10개의 치가 확인된다.
3.2. 시설
미륵산성은 해발 430m 미륵산(일명 용화산) 최고봉인 장군봉과 동쪽 계곡을 둘러 쌓은 석성으로 기준성 또는 백제 무왕대 창건된 성으로 전해지고 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고조선 왕 준이 금마땅에 내려와 마한을 개국하고 성을 쌓았다 하여 기준성으로 불린다'고 기록되어 있다. 성내에서는 무문토기편과 청동기, 백제토기편 및 기와편이 출토되고 있으나 1990년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의 동문지 발굴조사결과 백제시대에 축성되어 조선 초기까지 4차에 걸쳐 개축된 사실이 확인되었다.
성의 길이는 1,822m로서 익산지역 최대규모의 산성이다. 성은 산 경사면에 쌓았는데, 성벽의 높이는 4~5m이며, 폭은 6m정도이다. 성 내부에는 건물지, 장대지, 우물터가 남아 있다. 현재 동문지, 남문지와 10개의 치(성벽에서 돌출시켜 쌓은 성벽)가 남아있고 동문지와 주변 성벽을 정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