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태식
1. 개요
인태식은 충청남도 당진 출신으로,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 세무 관리로 근무했으며,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에는 강원도 내무국장, 재무부 사세국장, 관재청장, 재무부 장관을 역임했다. 자유당과 민주공화당에서 활동하며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정계 은퇴 후에는 동아건설 사장을 역임했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러 차례 당선과 낙선을 경험했다.
| 이름 | 인태식 |
|---|---|
| 출생일 | 1902년 12월 17일 |
| 출생지 | 대한제국 충청남도 당진 |
| 사망일 | 1975년 5월 22일 |
| 사망지 | 대한민국 서울 |
| 본관 | 교동(喬桐) |
| 직업 | 정치인 |
| 정당 | 무소속 |
| 의원 선수 | 3 |
| 학력 | 일본 도호쿠제국대학교 법학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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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 경력 | 대한민국 관재청장 대한민국 재무부장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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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 인씨 -
인명진
인명진은 대한민국의 목사, 시민운동가, 정치인으로,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에 참여하고 한나라당 윤리위원장, 새누리당 및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
교동 인씨 -
인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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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제4대 국회의원 -
주요한
주요한은 일제강점기 시인이자 언론인이자 정치인이며, 친일 행위로 인해 논란이 있으며, 국회의원과 상공부 장관을 역임했다. -
대한민국의 제4대 국회의원 -
유옥우
유옥우는 자유당에서 정계 입문 후 야당에서 활동하며 여러 차례 국회의원을 지냈고, 한일협정 반대 운동 중 옥고를 치렀으며 정치 테러를 당하기도 했으나, 국가보위입법회의 참여 경력으로 비판받기도 한 정치인이다. -
대한민국의 제6대 국회의원 -
김종필
5·16 군사정변 주역이자 초대 중앙정보부장, 두 차례 국무총리를 지낸 김종필은 한일 국교 정상화 기여와 '김-오히라 메모' 논란, 9선 국회의원, DJP 연합을 통한 총리 재임 등 한국 현대사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권위주의 시대의 어두운 면과 지역주의 정치의 상징으로도 평가받는 정치인이다. -
대한민국의 제6대 국회의원 -
김영삼
2. 생애
충청남도 당진에서 태어나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와 야마구치 고등학교, 도호쿠 제국대학에서 수학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에서 세무 관리로 공직 생활을 시작했으며, 해방 이후 제1공화국과 제3공화국 시기에 걸쳐 재무부 장관, 여당의 정책 책임자, 국회 예산결산위원장 등 정부와 정당의 주요 직책을 맡았다. 정계에서 물러난 뒤에는 동아건설 사장을 역임하며 기업인으로 활동했다.
2.1.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당진 출신이다.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후의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27년 일본 야마구치 고등학교 문과 을류를 졸업했다. 1930년에는 도호쿠 제국대학 법문학부 법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 조선총독부의 세무 관리 부서에서 근무했다. 1938년 홍천세무서장을 시작으로 청주세무서장, 강원도 재무국 간세과장을 역임했다.
2.2.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제1공화국 시기에는 강원도 내무국장, 재무부 사세국장(1949년), 관재청장(1953년)을 지냈다. 1953년에는 아세아극동경제회의 수석대표로 참여하기도 했다. 1956년부터 1957년까지는 재무부 장관을 역임했다. 당시 여당인 자유당 내에서는 재무 전문가로 평가받았다.
이후 제3공화국 시기에는 여당인 민주공화당 소속으로 활동하며 1964년 당 정책위원회 의장과 국회 예산결산위원장을 맡는 등 주요 직책을 거쳤다.
정계에서 물러난 뒤에는 동아건설 사장을 지내며 기업인으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