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라-캅카바
1. 개요
일라-캅카바는 아무르계 하나족 족장으로, 유프라테스강 연안 마리 상류를 세력권으로 삼았던 인물이다. 야기드-림과의 분쟁에서 패하여 바빌로니아로 도망쳤으며, 에슈눈나와 영토 분쟁을 벌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아들 샴시-아다드 1세는 아시리아 왕이 된 후 아시리아 왕명표를 편찬하며 일라-캅카바를 아시리아 왕 계보에 포함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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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1세기 통치자 -
멘투호테프 3세
멘투호테프 3세는 이집트 제11왕조의 파라오로 12년간 통치하며 푼트 원정과 건축 사업을 진행했으나 무덤은 발견되지 않았고 '상카레'라는 왕명을 사용했다. -
기원전 21세기 통치자 -
멘투호테프 2세
멘투호테프 2세는 이집트 제11왕조의 파라오로, 이집트 제1중간기를 종식시키고 중왕국 시대를 열었으며, 내전 끝에 이집트를 통일하고 중앙 집권화 정책과 활발한 대외 활동을 펼쳤고, 데이르 엘 바흐리에 혁신적인 장례 사원을 건설하여 후대에 영향을 미쳤다. -
아모리인 -
바빌로니아
바빌로니아는 현재 이라크 지역의 메소포타미아 남부에 위치한 고대 문명으로, 다양한 언어와 문화가 공존하며 함무라비 법전과 네부카드네자르 2세 등의 강력한 군주 아래 번성했으나 페르시아 제국에 정복당하며 쇠퇴한 문명이다. -
아모리인 -
아수르
아수르는 메소포타미아 북부의 고대 도시이자 국가, 수호신 이름이며 아시리아 문명의 발상지로 종교적 중심지였으나 현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보호받고 있다. -
아시리아 -
아슈르나시르팔 2세
아슈르나시르팔 2세는 기원전 9세기에 아시리아를 통치하며 정복 사업을 통해 세력을 확장하고, 잔혹한 통치로 악명을 떨쳤으며, 칼후를 새로운 수도로 건설하고 예술 발전을 이끌었다. -
아시리아 -
샬마네세르 3세
샬마네세르 3세는 신아시리아 제국의 왕으로서 영토 확장과 지배력 안정에 기여했으며, 잦은 원정과 카르카르 전투, 예후로부터의 조공, 중앙집권적 통치, 도시 재건 및 예술 장려 등의 업적을 남겼다.
2. 생애
그는 아무르계 하나족 족장 중 한 명으로, 아마도 유프라테스강 연안의 도시 마리 상류를 세력권으로 삼았다. 같은 하나족인 야기드-림과 주변 지배권을 놓고 다툰 것으로 보이며, 아마 그는 이에 패하여 바빌로니아로 도망쳤다. 그 후 에슈눈나와 영토를 두고 항쟁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에게는 두 아들, 아미누와 샴시-아다드 1세가 있었지만, 아미누는 일찍 죽었고, 샴시-아다드 1세가 후계자가 되었다.
2.1. 초기 생애와 부족 간 분쟁
일라-캅카바는 아무르계 하나족 족장 중 한 명으로, 아마도 유프라테스강 연안의 도시 마리 상류를 세력권으로 삼았다. 같은 하나족인 야기드-림과 주변 지배권을 놓고 다툰 것으로 보이며, 아마 그는 이에 패하여 바빌로니아로 도망쳤다. 그 후 에슈눈나와 영토를 두고 항쟁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에게는 두 아들, 아미누와 샴시-아다드 1세가 있었지만, 아미누는 일찍 죽었고, 샴시-아다드 1세가 후계자가 되었다.
2.2. 아들 샴시-아다드 1세
3. 아시리아 왕명표에서의 일라 카브카부
샴시-아다드 1세는 아슈르를 정복하고 아시리아 왕이 된 후, 자신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아시리아 왕명표를 편찬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원래 비 아무르 계통의 아시리아 왕 계보에 아무르 계통의 계보를 끼워 넣었다. 더 나아가 자신의 아버지 일라-캅카바를 아득한 과거의 제25대 왕으로 기록했다. 이 때문에 일라-캅카바의 이름은 아시리아 왕으로서 후세에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