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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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임유는 고려 명종 때 과거에 급제하여 참지정사, 중서시랑평장사 등을 역임한 인물이다. 그는 청렴하고 온화한 성품으로 다섯 왕을 섬기며 부지런히 관직을 수행했고, 16년간 제고를 맡아 문장과 저술에 능했다. 조충, 이규보 등을 선발하는 과거를 주관했으며, 만년에는 불교를 독실하게 믿어 금으로 금자대장경을 필사했다. 1212년에 사망했으며, 시호는 양숙, 희종 묘정에 배향되었다. 슬하에 네 아들을 두었다.

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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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임유는 고려 명종 때 과거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쳤으며, 신종 때 수태부(守太傅)·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로 승진하였다. 1212년 64세로 사망하여 시호는 양숙(良淑)이며, 희종 묘정에 배향되었다.

2.1. 관직 생활

고려 명종 때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거쳐 참지정사(叅知政事)가 되었다. 신종 초에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로 임명되고 수태부(守太傅)·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로 승진하였다.

성품은 욕심없고 깨끗하며 자애롭고 온화하여 가문과 권세를 내세우며 교만하지 않았다. 노비나 천한 종일지라도 욕을 하거나 꾸짖은 적이 없었다. 다섯 왕을 내리 섬겼는데, 관직에 있으면서 부지런하고 조심하였으며 일을 처리하는 것은 현명하고 미더웠다.

16년간 제고(制誥)를 맡아 문장과 저술로 유명하였다. 조충, 이규보, 김창, 유승단 등을 선발하며 4번 과거를 주관하였다.

2.2. 성품과 일화

임유는 성품이 욕심 없고 청렴하며, 온화하고 자애로워 가문이나 권세를 내세워 교만하지 않았다. 노비나 천한 종이라도 욕하거나 꾸짖는 일이 없었다. 다섯 왕을 섬기면서 관직 생활을 부지런하고 신중하게 하였으며, 일을 현명하고 믿음직하게 처리하였다.

16년간 제고(制誥)를 맡아 문장과 저술로 이름을 알렸다. 네 번 과거를 주관하여 조충, 이규보, 김창, 유승단 등을 선발하였다.

만년에는 불교에 더욱 독실하게 귀의하여 금으로 『금자대장경(金字大藏經)』의 거의 반을 썼는데, 이를 두고 식자들이 비웃기도 하였다.

2.3. 불교 신앙

임유는 성품이 욕심없고 깨끗하며 자애롭고 온화하여 가문과 권세를 내세우며 교만하지 않았다. 노비나 천한 종일지라도 욕을 하거나 꾸짖은 적이 없었다. 다섯 왕을 내리 섬겼는데, 관직에 있으면서 부지런하고 조심하였으며 일을 처리하는 것은 현명하고 미더웠다.

만년에 불교를 더욱 독실하게 믿어서 금으로 『금자대장경(金字大藏經)』의 거의 반을 쓰니 식자들이 비웃었다.

2.4. 사망과 평가

임유는 성품이 욕심 없고 청렴하며, 자애롭고 온화하여 가문이나 권세를 내세워 교만하지 않았다. 노비나 천한 종이라도 욕하거나 꾸짖는 일이 없었다. 고려 의종, 명종, 신종, 희종, 강종 다섯 왕을 섬기면서 관직에 있을 때 부지런하고 신중했으며, 일을 현명하고 믿음직하게 처리했다.

16년간 제고(制誥)를 맡아 문장과 저술로 유명했다. 조충, 이규보, 김창, 유승단 등을 선발하는 과거 시험을 4번 주관하였다.

만년에는 불교에 더욱 독실하게 귀의하여 금으로 『금자대장경(金字大藏經)』을 거의 반 가까이 썼는데, 당시 식자들은 이를 비웃었다.

1212년에 64세로 사망하니 시호를 양숙(良淑)이라 하였다. 희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3. 가족

아들은 임경숙, 임경겸, 임효순, 임경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