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장원
1. 개요
임장원은 1994년 KBS 공채 기자로 입사하여 KBS에서 기자 및 주요 보직을 역임한 언론인이다. KBS 탐사보도부에서 활동했으며, KBS 뉴욕특파원, KBS 보도본부 경인방송센터장, 국제주간, 디지털뉴스주간, 경제주간, 시사제작국장, 통합뉴스룸국장, 심의실장을 거쳐 2024년 2월 KBS에서 퇴사했다. KBS 경제전망대 앵커, KBS 뉴스 9 주말 앵커, KBS 뉴스 12 앵커를 맡았으며, 2009년에는 한국언론교육원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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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김웅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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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정진석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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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대한민국 사람 -
김웅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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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대한민국 사람 -
정진석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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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출생 -
서형원
서형원은 환경운동연합 활동을 거쳐 과천시의회 의원 및 의장을 역임하고 녹색당 풀뿌리정치지원단장으로 활동한 환경운동가 출신 정치인이다. -
1968년 출생 -
조지호 (경찰공무원)
조지호는 대한민국 경찰청장을 역임한 경찰공무원으로, 경찰대학을 졸업하고, 1990년 경위로 임관하여 수사, 기획, 인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을 쌓았으며, 2024년 8월 10일 제24대 경찰청장으로 임명되었으나 비상계엄 가담 혐의로 직무정지되었다.
2. 학력
임장원은 1976년 국민학교에 입학하여 1982년 졸업하였다. 1982년 중학교에 입학하여 1985년에 졸업하였고, 1985년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1988년 졸업하였다. 1988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하였다.
3. 경력
3.1. KBS 기자 및 주요 보직
1994년 KBS 20기 공채 기자로 입사하여 탐사보도부에서 활동했다. 2009년에는 한국언론교육원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2010년에는 KBS 뉴욕특파원으로 근무했다. 2015년 7월 KBS 보도본부 경인방송센터장을 거쳐, 2018년 4월부터 2019년 2월까지 KBS 보도본부 국제주간을 역임했다. 이후 2019년 3월부터 2019년 11월까지 KBS 보도본부 디지털뉴스주간(국장급), 2019년 11월부터 2020년 5월까지 KBS 보도본부 경제주간(국장급)을 역임했다. 2020년 5월부터 2021년 4월까지는 KBS 보도본부 시사제작국장을 맡았다. 2021년 4월부터 2022년 4월까지 KBS 보도본부 통합뉴스룸국장, 2022년 4월부터 2023년 3월까지 KBS 심의실장을 역임했다. 2024년 2월 29일 KBS에서 퇴사했다.
3.2. 기타 경력
2009년 한국언론교육원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2025년에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 속에서 KBS 사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4. TV 방송
4.1. 앵커
임장원은 KBS 1TV 경제전망대 앵커를 역임하였다. 2003년 11월 8일부터 2009년 4월 19일까지 KBS 뉴스 9 주말 앵커를 진행했고, 2009년 4월 20일부터 2010년 3월 12일까지 KBS 뉴스 12 앵커를 맡았다.
4.2. 기타 방송
KBS 1TV에서 경제전망대 앵커를 맡았다. 2003년 11월 8일부터 2009년 4월 19일까지 KBS 뉴스 9 주말 앵커를 맡았으며, 2009년 4월 20일부터 2010년 3월 12일까지는 KBS 뉴스 12 앵커를 맡았다.
임장원은 비교적 오랜 기간 KBS 뉴스 9 주말 앵커 자리를 지켰다. 임장원 이전의 주말 앵커는 황상무, 김철민 등이었고, 이후 앵커는 김웅, 박유한 등이었다. 같은 기간 동안 KBS 뉴스 9의 여성 앵커는 정세진, 노현정, 손미나 등이었다.
KBS 뉴스 9는 과거 땡전 뉴스라는 오명을 얻기도 했지만, 임장원이 앵커를 맡았던 시기에는 이러한 논란에서 벗어나, 국민들에게 더욱 신뢰받는 뉴스로 거듭나고자 노력했다.
4.2.1. KBS 뉴스 9 앵커 경력 상세
임장원은 2003년 11월 8일부터 2009년 4월 19일까지 KBS 뉴스 9 주말 앵커를 맡았다. 이 기간 동안 KBS 뉴스 9는 주말 앵커 교체가 잦았지만, 임장원은 비교적 오랜 기간 앵커 자리를 지켰다.
임장원 이전의 주말 앵커로는 황상무, 김철민 등이 있었고, 이후에는 김웅, 박유한 등이 앵커를 맡았다. 여성 앵커로는 정세진, 노현정, 손미나 등이 있었다.
KBS 뉴스 9는 과거 땡전 뉴스라는 오명을 얻기도 했지만, 임장원이 앵커를 맡았던 시기에는 이러한 논란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