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학규 (1897년)
1. 개요
임학규는 1897년 출생하여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로 활동했으며, 광복 후 한국독립당 상임고문을 역임했다. 1919년 서천군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여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았으며, 이후 조선중앙일보 등에서 일했다. 1948년 김구의 차남 김신과 사돈 관계를 맺었고, 1949년 한국독립당 상임고문이 되었다. 1964년 민주공화당 전임고문에 위촉되었으며, 1974년 7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후 1983년 대통령 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 이름 | 임학규 |
|---|---|
| 원래 이름 | 林學規 |
| 출생지 | 조선 충청남도 서천 |
| 사망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
| 출생일 | 1897년 6월 23일 |
| 사망일 | 1974년 7월 1일 |
| 거주지 | 조선 충청남도 서천 대한제국 충청남도 서천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서천 일제강점기 경성부 미 군정 조선 서울특별자유시 서울특별시 |
| 종교 | 유교(성리학) → 개신교(감리회) |
| 본관 | 평택(平澤) |
| 배우자 | 파평 윤씨 부인 |
| 자녀 | 3남 3녀(삼녀 임윤연) |
| 친인척 | 김신(셋째사위) |
| 소속 국가 | 경무대 비서실 |
|---|---|
| 직책 | 행정관 |
| 임기 | 1948년 8월 21일 ~ 1948년 12월 11일 |
| 대통령 | 이승만 대한민국 대통령 |
| 부통령 | 이시영 대한민국 부통령 |
| 총리 | 이범석 대한민국 국무총리 |
| 장관 | 이기붕 대한민국 경무대 비서실장 |
| 경력 | 한국독립당 상임고문 겸 당무위원 민주공화당 전임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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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당 | 무소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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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임씨 -
임수정 (배우)
임수정은 1998년 모델로 데뷔하여 2001년 드라마를 통해 연기를 시작한 대한민국의 배우로, 영화와 드라마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대중적 인지도와 연기력을 인정받고 있다. -
평택 임씨 -
임해규
임해규는 서울대학교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고 부천시의회 의원, 국회의원, 경기연구원 원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백석문화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인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자 교육인이다. -
서천군 출신 -
구만섭
구만섭은 대한민국의 공무원으로, 행정고시 합격 후 총무처, 행정안전부, 대통령비서실 등에서 근무하며 천안시 부시장, 제주특별자치도 행정부지사, 국가기록원장, 행정안전부 차관보 등을 역임했고, 현재 대통령비서실 지방시대비서관으로 재직 중이다. -
서천군 출신 -
서영제
서영제는 검사 출신 변호사로, 서울지방검찰청 검사장, 대전고등검찰청 검사장, 대구고등검찰청 검사장 등을 역임했으며, 변호사 활동과 함께 한솔제지 사외이사, 충남대학교 법학대학원장, 세종대학교 감사를 지냈다. -
한국독립당의 당원 -
김시현 (1883년)
김시현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 제2대 및 제5대 국회의원을 역임했으며,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국민당 후보로,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되었다. -
한국독립당의 당원 -
김정례
김정례는 대한민국 제1세대 여성운동가이자 정치인으로서, 여성단체 창립 및 국회의원, 보건사회부 장관, 정당 상임고문 등을 역임하며 여성계와 정계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여성 정치 진출에 기여했다.
2. 생애
임학규는 1897년 충청남도 서천군에서 태어났다. 1919년 서천군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체포되어 1년간 옥고를 치렀다. 1920년 출소 후 1923년 가족과 함께 경성부로 상경하여 조선중앙일보, 동아일보 등에서 일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1945년 광복을 맞이하였으며, 1948년 셋째 딸 임윤연이 김구의 차남 김신과 결혼하면서 김신과 사돈 관계를 맺었다.
1949년 한국독립당에 입당하여 정치 활동을 시작했으나, 사돈 김구의 사망 이후 탈당했다. 1964년 민주공화당 전임고문으로 위촉되었으나, 1971년 셋째 딸의 사망으로 1973년 탈당하였다. 1974년 78세를 일기로 별세하였다.
2.1. 독립 운동과 광복 직후
1919년 4월 28일 충청남도 서천군 마산면 신장리에서 송기면(宋箕勉)의 지휘 아래 전개된 대규모의 독립만세운동에 궐기하여, 송기면·이근호(李根浩)·유성렬(劉性烈) 등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튿날인 1919년 4월 29일 (음력 3월 1일)에 거사를 진행, 동지들과 함께 태극기 200여 매를 장꾼들에게 나누어 주며 독립만세운동 참여를 독려, 2천여 명의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장터 행진을 하였다. 그러나 일본 경찰에 의해 주도 인물들이 체포되자, 시위 군중들과 함께 주재소로 몰려가 석방을 요구하며 독립만세를 외치다 체포되었다. 1919년 6월 14일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으며, 1920년에 만기 출감하였다.
출소 후 1923년 가족과 함께 경성부로 상경하여 조선중앙일보 등기물 배달부, 동아일보 보급소 보급원 등으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1945년 8월 15일 경성에서 조선 광복을 맞이했다. 1948년 셋째 딸 임윤연이 김구의 차남 김신과 결혼하여 김신과 사돈 관계를 맺었다.
2.2. 현실 정치 참여
1949년 2월 1일 한국독립당 상임고문으로 입당하였으나, 그 해 6월 26일 사돈 김구가 사망하자 큰 충격을 받았다. 1957년 한국독립당 상임고문 직위를 사퇴하고 탈당하였다. 1964년 68세의 나이로 민주공화당 전임고문으로 위촉되었다. 1971년 11월 11일 셋째 딸 임윤연이 위암으로 사망하자, 큰 슬픔에 잠겼다. 1973년 3월 20일 민주공화당 전임고문 직위에서 사퇴하고 탈당하였다. 1974년 7월 1일 78세를 일기로 별세하였다.
3. 사후
1983년 대한민국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