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페 은도람
1. 개요
자페 은도람은 차드 출신의 은퇴한 축구 선수이다. 그는 미드필더로 활약했으며, 프랑스 리그 1의 FC 낭트에서 1994-95 시즌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1994년 리그 1 올해의 외국인 선수로 선정되었으며, 1995년 발롱도르 후보에도 올랐다. AS 모나코에서도 선수 생활을 했으며, 1997년 트로페 데 샹피옹 우승을 경험했다. 은도람은 차드와 프랑스 이중 국적을 가지고 있으며, 그의 아들 케빈 은도람도 축구 선수로 활동했다.
| 이름 | 야페트 엔도람 |
|---|---|
| 원어 이름 | يا فث ندورام (아랍어) |
| 출생일 | 1966년 2월 27일 |
| 출생지 | 은자메나, 차드 |
| 신장 | 1.82m |
| 포지션 | 미드필더, 공격수 (과거 스트라이커) |
| 청소년 클럽 | 1985-1986: 투르비용 FC 은자메나 |
|---|---|
| 1984-1988 | 투르비용 FC |
| 1988-1990 | 토네르 야운데 |
| 1990-1997 | FC 낭트 |
| 1997-1998 | AS 모나코 FC |
| 1989-1990 | 토네르 야운데: 32경기 18골 |
| 1990-1997 | FC 낭트: 173경기 76골 |
| 1997-1998 | AS 모나코 FC: 13경기 1골 |
| 국가대표팀 | 차드 축구 국가대표팀 |
|---|---|
| 국가대표 연도 | 1989-1998 |
| 국가대표 출장 및 득점 | 36경기 13골 |
| 감독 연도 | 2007 |
|---|---|
| 감독 클럽 | FC 낭트 |
-
프랑스에 거주한 차드인 -
무함마드 살레 아룬
차드 출신 영화감독 무함마드 살레 아룬은 아프리카 사회 현실과 인간 고뇌를 다룬 영화를 제작하며 《비명을 지르는 남자》로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고 차드 관광부 장관을 역임하는 등 사회 활동에도 참여했다. -
카메룬의 외국인 남자 축구 선수 -
조지 웨아
조지 웨아는 1990년대 세계 최고의 공격수 중 한 명으로, FIFA 올해의 선수와 발롱도르를 수상한 라이베리아의 정치인이자 전 축구 선수이며, 선수 은퇴 후에는 라이베리아의 대통령을 역임했다. -
카메룬의 외국인 남자 축구 선수 -
알렉스 니멜리
알렉스 니멜리는 라이베리아와 카메룬에서 선수 경력을 시작하여 맨체스터 시티 FC에서 프리미어 리그 데뷔전을 치렀으며, 잉글랜드 U-20 대표팀과 라이베리아 대표팀으로 활동했고, 음주운전으로 벌금과 면허 정지 처분을 받았다. -
FC 낭트의 축구 감독 -
미로슬라브 블라제비치
미로슬라브 블라제비치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출신의 전 축구 감독이자 정치인으로, 여러 클럽과 국가대표팀을 지휘하며 1998년 FIFA 월드컵 3위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고, 클럽 우승 경력과 강한 카리스마로 유명하며, 크로아티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
FC 낭트의 축구 감독 -
세르지우 콘세이상
세르지우 콘세이상은 포르투갈의 전 축구 선수이자 현 축구 감독이며, 선수 시절에는 오른쪽 윙어로 활약했고, 포르투갈 국가대표로 56경기 출전하여 UEFA 유로 2000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했으며, 감독으로서 FC 포르투를 이끌고 여러 차례 우승을 달성했다.
2. 선수 경력
자페 은도람은 1989년 카메룬의 토네르 야운데에서 데뷔했다. 이듬해 리그 1의 FC 낭트로 이적하여 초기에는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뛰어난 볼 컨트롤과 창의적인 플레이로 팀의 핵심 선수로 자리잡았다.
1994-95 시즌에는 레이날 페드로스, 클로드 마케렐레 등과 함께 리그 최고의 미드필더진을 구축, 파트리스 로코, 니콜라 위덱 등의 공격진을 조율하며 12골을 기록하는 활약으로 낭트를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1997-98 시즌에는 AS 모나코로 이적했지만, 부상으로 인해 13경기 출전에 그쳤고, 이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했다.
2.1. 클럽 경력
은도람은 은자메나의 투르비용 FC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카메룬의 토네르 야운데를 거쳐 1990년 프랑스 리그 1의 FC 낭트로 이적했다. 낭트에서 은도람은 팀의 핵심 선수로 자리 잡았으며, 특히 1994-95 시즌에는 레이날 페드로스, 클로드 마케렐레 등과 함께 리그 최고의 미드필더진을 구축하여 팀의 리그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스스로도 12골을 기록하는 활약을 펼쳤다.
1995–96 UEFA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전에서 유벤투스 FC를 상대로 득점을 기록하기도 했다.(총합 3-4 패배). 1996-97 시즌에는 개인 통산 리그 최다 득점인 21골을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낭트의 재정난으로 인해 주축 선수들이 팀을 떠나면서 은도람 역시 1997년 AS 모나코로 이적했으나, 부상으로 인해 13경기 출전에 그쳤고, 1997-98 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2.1.1. 클럽별 상세 기록
| 클럽 | 시즌 | 리그 | 컵 | 대륙 | 합계 | |||||
|---|---|---|---|---|---|---|---|---|---|---|
| 디비전 | 출전 | 골 | 출전 | 골 | 출전 | 골 | 출전 | 골 | ||
| 투르비용 | 1984 | 차드 프리미어 리그 | ||||||||
| 1985 | ||||||||||
| 1986 | ||||||||||
| 1987 | ||||||||||
| 1988 | ||||||||||
| 토네르 | 1988 | 엘리트 원 | ||||||||
| 1989 | ||||||||||
| 1990 | 32 | -|-|-|-|-|- | 32 | 18 | ||||||
| 낭트 아틀란티크 | 1990-91 | 프랑스 디비시옹 1 | 19 | 2 | 3 | 1 | 0 | 0 | 22 | 3 |
| 1991-92 | 25 | 4 | 1 | 0 | 0 | 0 | 26 | 4 | ||
| 1992-93 | 31 | 10 | 5 | 0 | 0 | 0 | 36 | 10 | ||
| 1993-94 | 26 | 8 | 4 | 0 | 1 | 0 | 31 | 8 | ||
| 1994-95 | 32 | 12 | 1 | 1 | 8 | 3 | 41 | 16 | ||
| 1995-96 | 24 | 15 | 2 | 1 | 7 | 3 | 33 | 19 | ||
| 1996-97 | 35 | 21 | 0 | 0 | 0 | 0 | 35 | 21 | ||
| 합계 | 192 | 72 | 17 | 3 | 16 | 6 | 225 | 81 | ||
| 모나코 | 1997-98 | 프랑스 디비시옹 1 | 13 | 1 | 1 | 2 | 2 | 0 | 16 | 3 |
| 선수 통산 기록 | 237 | 91 | 18 | 5 | 18 | 6 | 273 | 102 | ||
3. 수상 내역
3.1. 클럽
낭트에서 은도람은 이적 초기에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기대만큼의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그러나 점차 두각을 나타내며, 뛰어난 볼 컨트롤과 상상력 넘치는 플레이로 부동의 사령탑으로 활약했다.
1994-1995 시즌에는 레이날 페드로스, 클로드 마케렐레 등과 함께 리그 최고의 중원을 형성했다. 파트리스 로코, 니콜라 위덱 등의 강력한 공격진을 조율하며, 스스로도 13골을 기록하는 활약으로 FC 낭트를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팀의 재정난으로 인해 1995-1996 시즌에는 로코와 크리스티안 카랑뵈가, 1996-1997 시즌에는 위덱, 페드로스, 브누아 코에가 이적하면서 우승팀은 점차 해체되었고, 1997-1998 시즌에는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로 이적한 마케렐레와 함께 은도람도 AS 모나코로 이적했다.
AS 모나코에서는 부상으로 인해 단 13경기에 출전하는 데 그쳤고, 이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했다.
3.2. 개인
* 1994년 프랑스 1부 리그 올해의 외국인 선수
* 1995 발롱도르 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