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메디카
1. 개요
잭 메디카는 1930년대 미국의 수영 선수로, 워싱턴 대학교 재학 시절 NCAA 선수권 대회에서 3년 연속 우승하고 AAU 선수권 대회에서도 여러 차례 우승하며 11개의 세계 기록을 경신했다. 그는 특히 400미터 자유형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고, 1500미터 자유형에서 은메달, 800미터 계영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베를린 올림픽 이후 은퇴한 메디카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미국 해군에서 수중 생존법을 지도했으며, 이후 대학교 수영 코치를 역임했고, 1966년 국제 수영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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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Jack Chapman Medica |
|---|---|
| 별칭 | 해당사항 없음 |
| 종목 | 자유형 |
| 소속 클럽 | Washington Athletic Club |
| 대학 팀 | 워싱턴 대학교 |
| 출생일 | 1914년 10월 15일 |
| 출생지 |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 |
| 사망일 | 1985년 4월 15일 |
| 사망지 | 미국, 네바다주, 카슨시티 |
| 키 | 해당사항 없음 |
| 몸무게 | 해당사항 없음 |
| 남자 수영 | 해당사항 없음 |
|---|---|
| 미국 대표 | 해당사항 없음 |
| 올림픽 경기 대회 | 해당사항 없음 |
| 금메달 | 1936년 베를린 400m 자유형 |
| 은메달 | 1936년 베를린 1500m 자유형 |
| 은메달 | 1936년 베를린 4×200m 자유형 계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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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하계 올림픽 수영 참가 선수 -
주앙 아벨란제
주앙 아벨란제는 브라질 스포츠 행정가로서 올림픽 선수 출전, 브라질 올림픽 위원회 위원을 거쳐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을 역임하며 FIFA 월드컵 본선 참가국 확대와 FIFA 여자 월드컵 창설 등 국제 축구 발전에 기여했으나, 상업화 촉진 및 부패 스캔들로 비판받기도 했다. -
1936년 하계 올림픽 수영 참가 선수 -
기요카와 마사지
기요카와 마사지는 1932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배영 100m에서 우승하고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했으며, 국제 올림픽 위원회 부회장을 역임한 일본의 수영 선수이자 기업인이다. -
1985년 사망 -
에프렘 짐발리스트
러시아 제국 출신 미국 바이올리니스트, 작곡가, 지휘자, 음악 교육자인 에프렘 짐발리스트는 레오폴트 아우어의 제자로서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며 명성을 얻었고 커티스 음악원에서 후학을 양성했으며 은퇴 후에도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심사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
1985년 사망 -
김기진
김기진은 팔봉이라는 호를 사용한 한국의 문학평론가, 소설가, 시인으로, KAPF에서 활동하며 경향파 문학 이론을 이끌었으나 친일 행적을 보였고 광복 후에는 반공주의 문인으로 활동했다. -
1914년 출생 -
유옥우
유옥우는 자유당에서 정계 입문 후 야당에서 활동하며 여러 차례 국회의원을 지냈고, 한일협정 반대 운동 중 옥고를 치렀으며 정치 테러를 당하기도 했으나, 국가보위입법회의 참여 경력으로 비판받기도 한 정치인이다. -
1914년 출생 -
이호 (법조인)
이호는 일제강점기 일본 유학 후 법조인으로 활동하며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법무부 장관, 내무부 장관, 주일본 대사 등을 역임하고 12·12 군사 반란 이후 국가보위입법회의 의장을 지냈다.
2. 선수 경력
워싱턴 대학교 학생 시절, 메디카는 NCAA 선수권 대회에서 1934년부터 1936년까지 3년 연속 220야드, 440야드, 1500미터 자유형에서 우승했다. AAU 주최 실외 선수권 대회에서는 1933년과 1934년에 440야드 및 880야드 자유형, 1934년에는 1마일 자유형에서 우승했다. 실내 선수권 대회에서는 1935년과 1936년에 220야드 자유형에서 우승했다. 그는 이 시기에 다양한 거리 종목에서 세계 기록을 11차례나 경신했다.
메디카는 대학 재학 중 전성기를 맞았다. 1934년 일본 선수권에 초청되어 마키노 쇼조, 네가미 히로시 등 일본 최고 선수들을 꺾고 우승했으며, 1935년 미일 대항전에서도 네가미와 같은 기록을 냈지만 근소한 차이로 승리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이후 은퇴한 메디카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미국 해군을 위해 수중 생존법을 지도했다. 이후 컬럼비아 대학교와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수영 코치를 역임했으며, 1976년까지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코치직을 맡았다.
2.1. 1936년 베를린 올림픽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은 잭 메디카가 선수로서 최고의 기량을 선보인 대회였다. 당시 남자 수영계는 미국과 일본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었으며, 메디카는 일본 선수들의 강력한 도전 속에서 값진 성과를 거두었다.
메디카는 400m 자유형, 1500m 자유형, 800m 계영 3종목에 미국 대표로 출전했다. 800m 계영에서는 랄프 플래너건, 존 마쇼니스, 폴 울프와 팀을 이루어 일본에 이어 은메달을 획득했다. 400m 자유형 결승전은 명승부로 꼽힌다. 초반에는 일본의 우토 슌페이가 앞섰지만, 뛰어난 스태미너를 가진 메디카가 막판 역전에 성공하며 올림픽 신기록(4분 44초 5)으로 금메달을 획득했다. 1500m 자유형에서는 테라다 노보루에게 뒤져 은메달에 머물렀다.
3. 은퇴 이후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이후 잭 메디카는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제2차 세계 대전 기간에는 미국 해군에서 수중 생존법을 가르쳤다. 전쟁이 끝난 후,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2년간 수영 코치를 맡았으며, 이후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1976년까지 수영 코치로 활동했다.
1966년, 국제 수영 명예의 전당(International Swimming Hall of Fame)에 헌액되었다. 1985년 네바다주 카슨시티에서 사망했다.
4. 업적 및 평가
메디카는 선수 시절 총 11개의 세계 기록을 경신하며 당대 최고의 수영 선수 중 한 명으로 인정받았다. 워싱턴 대학교 학생 시절, NCAA 주최 선수권 대회에서 1934년부터 1936년까지 3년 연속으로 220야드, 440야드, 1500미터 자유형에서 우승했다. AAU 주최 대회에서도 여러 차례 우승을 차지했다.
1930년대는 미국과 일본이 남자 수영계의 패권을 다투던 시기였다. 메디카는 1932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일본이 유일하게 금메달을 획득하지 못한 400미터 자유형에서 버스터 크래브의 후계자로 주목받았다. 1934년 일본 선수권에 초청되어 우승하고, 1935년 미일 대항전에서도 승리하는 등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일본의 강력한 경쟁자로 떠올랐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메디카는 400미터 자유형 금메달, 800미터 계영과 1500미터 자유형 은메달을 획득했다. 400미터 자유형 결승에서는 초반에 일본 대표 우토 슌페이에게 리드를 빼앗겼으나, 뛰어난 스태미너를 바탕으로 막판 역전에 성공하며 올림픽 신기록을 세웠다.
은퇴 후에는 미국 해군에서 수중 생존법을 지도했고, 컬럼비아 대학교와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수영 코치를 역임했다. 1966년에는 국제 수영 명예의 전당(International Swimming Hall of Fame)에 헌액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