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공
1. 개요
적공은 전한 시대의 인물로, 원광 5년(기원전 130년) 정위에 임명되었다. 정위 재직 시 찾아오는 빈객의 변화를 통해 권력과 재산에 따라 변하는 인간관계를 비판하는 글을 남겼다. 사마천의 《사기》와 반고의 《한서》에 관련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 이름 | 翟公 (적공) |
|---|---|
| 생몰년도 | 기원전 560년 ~ 기원전 502년 |
| 성씨 | 희성 |
|---|---|
| 씨족 | 위씨 |
| 작위 | 경 |
| 봉지 | 위나라 |
| 아버지 | 위강 |
|---|---|
| 아들 | 위서 |
| 활동 시기 | 춘추 시대 말기 |
|---|---|
| 주요 활동 | 위나라의 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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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의 정치인 -
구독
구기(緱起)는 전한 시대에 기후(騎虎)에 봉해지고 태상(太常)을 역임한 인물로, 기원전 32년 사망 후 그의 아들 구숭(求崇)이 기후 자리를 계승했다. -
한나라의 정치인 -
석편
석편은 전한 시대의 관료로, 기원전 138년에 내사에 임명되어 석경의 뒤를 이어 내사를 지냈으며, 정당시가 그의 후임자이다. -
전한 사람 -
전한 무제
전한의 제7대 황제인 전한 무제는 54년간 재위하며 유교 기반 중앙집권 강화, 흉노 정벌을 통한 영토 확장, 소금과 철의 전매제 등 경제 개혁을 추진하여 전한의 최전성기를 이끌었으나, 과도한 군사 지출, 사치스러운 생활, 무고의 난 등 부정적인 면모도 보였다. -
전한 사람 -
구독
구기(緱起)는 전한 시대에 기후(騎虎)에 봉해지고 태상(太常)을 역임한 인물로, 기원전 32년 사망 후 그의 아들 구숭(求崇)이 기후 자리를 계승했다. -
전한의 관료 -
구독
구기(緱起)는 전한 시대에 기후(騎虎)에 봉해지고 태상(太常)을 역임한 인물로, 기원전 32년 사망 후 그의 아들 구숭(求崇)이 기후 자리를 계승했다. -
전한의 관료 -
석편
석편은 전한 시대의 관료로, 기원전 138년에 내사에 임명되어 석경의 뒤를 이어 내사를 지냈으며, 정당시가 그의 후임자이다.
2. 생애와 행적
원광 5년(기원전 130년), 정위에 임명되었다.
적공이 정위가 되었을 때 찾아오는 빈객이 많았으나, 해임되고 나니 발길이 끊어졌다. 이후 다시 정위가 되었는데, 빈객이 몰려드니 적공은 문 앞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한 번 죽고 사니 사귐의 정을 알겠고, 한 번 가멸고 가난해지니 사귐의 모양새를 알겠으며, 한 번 존귀하고 비천해지니 사귐의 정이 보이는구나." 이는 권력과 재산의 유무에 따라 변하는 인간관계와 세태를 날카롭게 비판한 것으로, 당시 널리 퍼져있던 세속적인 풍조를 꼬집은 것이다.
2.1. 정위 임명과 파면
원광 5년(기원전 130년), 정위에 임명되었다. 정위는 전한 시대의 고위 관직으로, 법률과 재판을 담당하였다.
적공이 정위가 되었을 때 찾아오는 빈객이 많았으나, 해임되고 나니 발길이 끊어졌다. 이후 다시 정위가 되었는데, 빈객이 몰려드니 적공은 문 앞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한 번 죽고 사니 사귐의 정을 알겠고, 한 번 가멸고 가난해지니 사귐의 모양새를 알겠으며, 한 번 존귀하고 비천해지니 사귐의 정이 보이는구나."
2.2. 세태를 풍자하는 글
원광 5년(기원전 130년), 정위에 임명되었다.
적공은 정위에 재임명 되었을 때와 파면되었을 때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수가 크게 달라지는 것을 경험하였다. 복직 후 몰려드는 빈객들을 보며, 적공은 문 앞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겨 세태를 풍자했다.
"한 번 죽고 사니 사귐의 정을 알겠고, 한 번 가멸고 가난해지니 사귐의 모양새를 알겠으며, 한 번 존귀하고 비천해지니 사귐의 정이 보이는구나."
이는 권력과 재산의 유무에 따라 변하는 인간관계와 세태를 비판한 것이다.
3. 사료
사마천의 《사기》 권120에는 적공과 관련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반고의 《한서》권19하 백관공경표 下에도 관련 내용이 있다.
반고의 《한서》 권19하 백관공경표(百官公卿表) 下에는 적공에 대한 기록이 사마천의 《사기》와는 다르게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