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강 (18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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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강은 1898년 출생하여 1975년 열반한 한국의 승려이다. 1913년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1921년 태안사에서 깨달음을 얻었으며, 1923년 만공으로부터 전법게를 받고 선종 제77대 조사(祖師)가 되었다. 33세에 통도사 보광선원 조실이 되어 한국 불교 역사상 최연소 조실 기록을 세웠으며, 법주사, 김천 수도선원, 광주 자운사, 도봉산 망월사, 인천 용화사 등에서 조실을 역임했다. 혜월, 혜봉, 용성, 한암, 만공, 보월 등 당대의 선지식들에게 견성을 인가받았으며, 만공은 전강을 새로운 법맥으로 인정했다. 전강의 제자로는 송담 등이 있으며, 70년대 한국 불교는 "남경봉 북전강"으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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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전강은 1898년 11월 16일 전라남도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출생하였다. 1913년 해인사에서 제산화상을 은사로, 응해화상을 계사로 출가하였다. 1921년 전라남도 곡성군 태안사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1923년 만공으로부터 전법게를 받고 선종 제77대 조사가 되었다.

전강은 33세에 통도사 보광선원의 조실이 되었는데, 이는 한국 불교 역사상 최연소 기록이다. 37세에는 법주사 복천선원, 39세에는 김천 수도선원의 조실을 역임하였다. 51세에는 광주 자운사, 63세에는 도봉산 망월사의 조실을 맡았다. 64세에는 인천 용화사에 법보선원을 개설하였다.

2.1. 출가 및 깨달음 (1898-1923)

전강은 1898년 11월 16일 전라남도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출생하였다. 1913년 해인사에서 제산화상을 은사로, 응해화상을 계사로 출가하였다. 1921년 전라남도 곡성군 태안사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1923년 만공으로부터 전법게를 받고 선종 제77대 조사가 되었다.

2.2. 조실 활동 (1931-1961)

전강은 33세에 통도사 보광선원의 조실이 되었는데, 이는 한국 불교 역사상 최연소 기록이다. 37세에는 법주사 복천선원, 39세에는 김천 수도선원의 조실을 역임하였다. 51세에는 광주 자운사, 63세에는 도봉산 망월사의 조실을 맡았다. 64세에는 인천 용화사에 법보선원을 개설하였다.

2.3. 열반 (1975)

1975년 1월 13일, 용화사 선방에서 법문하던 중 "삶과 죽음의 목적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자, "학! 거꾸로 해도, 9 곱하기 9는 81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그 순간 열반에 들었다.

3. 인가

혜월, 혜봉, 용성, 한암, 만공, 보월 등 당대의 6대 선지식들로부터 모두 견성을 인가받았다. 만공에게 처음에 한 번 탈락하고 다시 찾아가서 인가를 받았다. 인가란 정말 깨달았는지 여부를 시험해 보고 합격 판정을 하는 것을 말한다. 선불교에서는 인가가 매우 중요하며, 자신보다 먼저 깨달은 수행자에게 모두 인가받는 것이 관례다.

4. 보월과의 관계 및 법맥 논쟁

보월은 만공의 맏제자로 깨달은 승려이다. 만공의 법맥을 이었으나, 40세에 요절하였다. 보월은 열반하기 전에 제자인 금오를 인가했다. 그러나 이 문제로 법맥이 금오로 이어지는지, 아니면 만공이 새로 법맥을 정해야 하는지가 문제 되었다. 만공은 전강을 새로운 법맥으로 인정했다. 대신 만공은 금오에게 보월의 법맥임을 증명하는 건당식을 열어주고 전법게를 내렸다. 그리하여 석가모니 이래 선불교 제76대 조사는 만공이고, 제77대 조사는 전강이 되었다.

5. 제자

70년대 한국 불교는 "남경봉 북전강"으로 불렸으며, 이는 중국 당나라 때 "남혜능 북신수", "남설봉 북조주"에 비견된다. 오늘날에는 "남진제 북송담"이라고 불리는데, 인천 용화사의 송담은 전강의 맏제자이다.

6. 평가 및 영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