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산옹주
1. 개요
전산옹주는 조선의 왕족으로, 조선 정종의 딸이다. 처음에는 안성군주로 불렸으며, 남편인 사직 이희종이 첩에게 빠져 가정을 돌보지 않자 세종이 전산옹주에게 미두를 지급하도록 명했다는 기록이 있다. 전산옹주의 정확한 생애와 사망 연도는 기록에 남아 있지 않다.
| 작위: 군주, 옹주 | |
| 별칭 | 안성군주(安城郡主) |
|---|---|
| 배우자 | 사직 이희종(司直 李希宗) |
|---|---|
| 자녀 | 3남 1녀 |
| 자녀 (이름) | 이현손(李賢孫), 이옥산(李玉山), 이형산(李荊山), 조경남(曹敬南)의 처 |
| 왕조 | 조선 왕조 |
|---|---|
| 아버지 | 정종 |
| 어머니 | 미상 |
| 조부 | 태조 |
| 숙부 | 태종 |
| 사촌 | 세종 등 |
| 출생지 | 조선 |
|---|---|
| 사망지 | 조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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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왕족 -
덕혜옹주
덕혜옹주는 고종과 귀인 양씨 사이에서 태어나 불행한 삶을 살았던 대한제국의 옹주로, 일본 유학 후 결혼 생활 중 조현병 증세를 보였으며 해방 후 귀국하여 창덕궁에서 생을 마감했고, 그녀의 삶은 여러 작품의 소재가 되었다. -
조선의 왕족 -
흥선대원군
조선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은 안동 김씨 세도정치 종식 후 권력을 장악하여 개혁을 추진했으나, 쇄국정책과 독재적 통치로 비판받았고, 실각 후 재집권을 시도하다 톈진으로 압송, 명성황후 암살 의혹 등 격변기 조선의 대표적 인물로 긍정·부정적 평가가 공존한다. -
조선 정종의 자녀 -
무림군
무림군은 조선 세조의 아들 정종과 숙의 기씨 사이에서 태어난 왕자로, 정부인 홍씨와의 사이에서 자녀를 두었으며, 세조의 순행을 호종하고 문폐사로 활동하며 지방 실정을 조사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
조선 정종의 자녀 -
도평군
도평군은 조선 정종의 아들로, 기생 첩을 사랑하여 탄핵을 받았으나 세종의 비호를 받았고, 예종 즉위년에 군호를 하사받았으며 1470년 이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
생몰년 미상 -
유급
유급은 전한 말기에 신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 멸망으로 작위를 잃은 유영의 아들이다. -
생몰년 미상 -
야스케
야스케는 16세기 일본에 기록된 최초의 아프리카인으로,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았으며, 혼노지의 변에서 함께 싸웠으나 이후 행적은 불확실하고,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에서 소재로 활용된다.
2. 생애
전산옹주는 언제 태어나고 사망했는지 기록에 나와 있지 않고, 처음에 안성군주 호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실록에 부마가 첩에게 빠져 처자를 돌보지 않아 종매인 전산군주에게 세종이 봄과 가을에 미두를 내려 주라는 기록이 있을 뿐, 그녀의 삶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다.
2.1. 초기 생애
전산옹주는 언제 태어나고 사망했는지 기록에 나와 있지 않고, 처음에 안성군주 호를 받았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녀의 삶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지만, 실록에 부마(駙馬)가 첩에게 빠져 처자를 돌보지 않아 종매(從妹)인 전산군주에게 세종이 봄과 가을에 미두(米豆)를 내려 주라는 기록이 있다.
2.2. 결혼 생활
전산옹주는 언제 태어나고 사망했는지 기록에 남아 있지 않으며, 처음에는 안성군주(安城郡主)로 불렸다. 전산옹주의 삶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지만,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남편 이희종이 첩에 빠져 가정을 돌보지 않아 세종이 전산옹주에게 봄과 가을에 미두(쌀과 콩)를 지급하라고 명했다는 기록이 있다.
3.1. 친정 전주 이씨
* 조부: 태조 (1335~1408, 재위: 1392~1398)
* 조모: 신의왕후 (1337~1391)
* 아버지: 정종 (1357~1419, 재위: 1398~1400)
* 어머니: 미상
3.2. 시가 용인 이씨
* 부마 : 사직 이희종
장남 : 이현손
차남 : 이옥산
삼남 : 이형산
장녀 : 조경남에게 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