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상요
1. 개요
전상요는 강원도 정선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이다. 1906년 의병을 조직하여 일본군과 교전했으며, 3·1 운동 당시 체포되어 투옥되었으나 탈옥 후 은거했다. 광복 후 정선향교 유림회 회장, 정선군 북면장 등을 역임했고,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되어 국회의원이 되었다. 당시 72세로 최고령 당선자였으며, 저서로 『어암건의록』과 『어암집』이 있다. 퇴임 이후의 행적은 알려진 바 없으며, 1971년에 사망했다는 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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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김웅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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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정진석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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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의 국회의원 -
노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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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의 국회의원 -
허영호 (정치인)
허영호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참여하고 신간회 활동을 했으나, 중일전쟁 이후 친일로 전향하여 해방 후 혜화전문학교 교장과 동국대학교 학장을 역임했으며, 제헌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되었지만 한국 전쟁 중 납북되어 사후 친일 행적이 드러나 건국훈장이 취소되고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되었다. -
1883년 출생 -
김시현 (1883년)
김시현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 제2대 및 제5대 국회의원을 역임했으며,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국민당 후보로,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되었다. -
1883년 출생 -
기타 잇키
기타 잇키는 일본 제국 헌법의 천황제를 비판하고 군사혁명을 통한 국가 개조를 주장한 사상가이자 혁명가로, 그의 사상은 2·26 사건에 영향을 미쳤으며, 진보적인 면모와 극단적인 민족주의적 경향을 동시에 지녔다는 평가를 받으며 2·26사건 연루 혐의로 사형당했다.
2. 생애
강원도정선군(현 대한민국 강원도 관할) 출신이다. 한문을 배운 후, 1906년에 이현범, 이종규 등과 의병을 조직하여 영서 지방의 이강년 의병 부대와 합류하여 정선군 지역에서 일본군과 싸웠으나 패배했다. 1919년 3·1 운동 당시 경상북도 안동에서 일본 관헌에게 체포되어 대구 형무소에 투옥되었으나, 복역 중 탈옥하여 정선군으로 돌아와 광복 때까지 동군 북면 북평리 산중에 은거했다。
이후 정선향교 유림회 회장, 정선군 북면장, 개헌 투쟁 강원도 대표, 정선군 농민회 회장, 자유당 정선군 당 부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1954년 제3대 총선거에 정선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 국회의원이 되었다. 또한 해당 선거에서 당선된 국회의원 중 당시 72세로 최고령이었으며, 개원식에서는 사회를 맡았다。 저서로는 1956년의 『어암건의록』 외에, 발행년도 미상의 『어암집』이 있다。 퇴임 이후의 행적에 대한 정보는 없으며, 몰년은 미상이다. 일부 문헌에서는 1971년에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2.1. 독립운동과 투옥
전상요는 강원도 정선군(현 대한민국 강원도 관할) 출신으로, 한문을 배웠다. 1906년에 이현범, 이종규 등과 의병을 조직하여 영서 지방의 이강년 의병 부대와 합류, 정선군 지역에서 일본군과 싸웠으나 패배했다. 1919년 3·1 운동 당시 경상북도 안동에서 일본 관헌에게 체포되어 대구 형무소에 투옥되었으나, 복역 중 탈옥하여 정선군으로 돌아와 광복 때까지 동군 북면 북평리 산중에 은거했다.
2.2. 정치 활동
전상요는 강원도 정선군 출신으로, 한문을 배웠다. 1906년 이현범, 이종규 등과 의병을 조직하여 영서 지방의 이강년 의병 부대와 합류, 정선군 지역에서 일본군과 싸웠으나 패배했다. 1919년 3·1 운동 당시 경상북도 안동에서 일본 관헌에게 체포되어 대구 형무소에 투옥되었으나, 복역 중 탈옥하여 광복 때까지 정선군 북면 북평리 산중에 은거했다.
광복 후 정선향교 유림회 회장, 정선군 북면장, 개헌 투쟁 강원도 대표, 정선군 농민회 회장, 자유당 정선군 당 부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1954년 제3대 총선거에 정선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 국회의원이 되었다. 당시 72세로 최고령 당선자였으며, 개원식에서 사회를 맡았다. 저서로는 1956년의 『어암건의록』 외에, 발행년도 미상의 『어암집』이 있다. 퇴임 이후의 행적에 대한 정보는 없으며, 몰년은 미상이다. 일부 문헌에서는 1971년에 사망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