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상요
1. 개요
전상요는 강원도 정선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이다. 1906년 의병을 조직하여 일본군과 교전했으며, 3·1 운동 당시 체포되어 투옥되었으나 탈옥 후 은거했다. 광복 후 정선향교 유림회 회장, 정선군 북면장 등을 역임했고,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되어 국회의원이 되었다. 당시 72세로 최고령 당선자였으며, 저서로 『어암건의록』과 『어암집』이 있다. 퇴임 이후의 행적은 알려진 바 없으며, 1971년에 사망했다는 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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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김웅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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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정진석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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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미상 -
미와 와사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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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미상 -
이태준
이태준은 일제 강점기와 북한에서 활동한 소설가이자 문학평론가로, 섬세한 문체와 서정적인 분위기로 현실을 그린 단편소설들을 발표하여 주목받았으며, 특히 1930년대 〈달밤〉, 〈까마귀〉, 〈복덕방〉 등의 작품으로 한국 단편소설의 미학을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월북 후 숙청되어 정확한 사망 시기와 장소는 알려져 있지 않다. -
강원특별자치도의 국회의원 -
장기영 (1903년)
장기영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으로, 제헌 국회의원, 외무부 차관보, 체신부 장관, 서울특별시장을 역임했으며, 이승만 측근으로 활동하다 결별 후 독립운동에 참여했고,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
강원특별자치도의 국회의원 -
조순
대한민국의 경제학자이자 정치인인 조순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한국은행 총재, 민선 1기 서울특별시장을 역임하고 한나라당 국회의원을 지냈다.
2. 생애
강원도정선군(현 대한민국 강원도 관할) 출신이다. 한문을 배운 후, 1906년에 이현범, 이종규 등과 의병을 조직하여 영서 지방의 이강년 의병 부대와 합류하여 정선군 지역에서 일본군과 싸웠으나 패배했다. 1919년 3·1 운동 당시 경상북도 안동에서 일본 관헌에게 체포되어 대구 형무소에 투옥되었으나, 복역 중 탈옥하여 정선군으로 돌아와 광복 때까지 동군 북면 북평리 산중에 은거했다。
이후 정선향교 유림회 회장, 정선군 북면장, 개헌 투쟁 강원도 대표, 정선군 농민회 회장, 자유당 정선군 당 부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1954년 제3대 총선거에 정선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 국회의원이 되었다. 또한 해당 선거에서 당선된 국회의원 중 당시 72세로 최고령이었으며, 개원식에서는 사회를 맡았다。 저서로는 1956년의 『어암건의록』 외에, 발행년도 미상의 『어암집』이 있다。 퇴임 이후의 행적에 대한 정보는 없으며, 몰년은 미상이다. 일부 문헌에서는 1971년에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2.1. 독립운동과 투옥
전상요는 강원도 정선군(현 대한민국 강원도 관할) 출신으로, 한문을 배웠다. 1906년에 이현범, 이종규 등과 의병을 조직하여 영서 지방의 이강년 의병 부대와 합류, 정선군 지역에서 일본군과 싸웠으나 패배했다. 1919년 3·1 운동 당시 경상북도 안동에서 일본 관헌에게 체포되어 대구 형무소에 투옥되었으나, 복역 중 탈옥하여 정선군으로 돌아와 광복 때까지 동군 북면 북평리 산중에 은거했다.
2.2. 정치 활동
전상요는 강원도 정선군 출신으로, 한문을 배웠다. 1906년 이현범, 이종규 등과 의병을 조직하여 영서 지방의 이강년 의병 부대와 합류, 정선군 지역에서 일본군과 싸웠으나 패배했다. 1919년 3·1 운동 당시 경상북도 안동에서 일본 관헌에게 체포되어 대구 형무소에 투옥되었으나, 복역 중 탈옥하여 광복 때까지 정선군 북면 북평리 산중에 은거했다.
광복 후 정선향교 유림회 회장, 정선군 북면장, 개헌 투쟁 강원도 대표, 정선군 농민회 회장, 자유당 정선군 당 부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1954년 제3대 총선거에 정선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 국회의원이 되었다. 당시 72세로 최고령 당선자였으며, 개원식에서 사회를 맡았다. 저서로는 1956년의 『어암건의록』 외에, 발행년도 미상의 『어암집』이 있다. 퇴임 이후의 행적에 대한 정보는 없으며, 몰년은 미상이다. 일부 문헌에서는 1971년에 사망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