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강왕
1. 개요
정강왕은 신라의 제50대 왕으로, 886년 헌강왕 사후 즉위하였다. 887년 황룡사에서 백고좌를 열고, 이찬 김요의 반란을 진압했으나, 같은 해 병으로 사망했다. 후사가 없어 여동생을 왕위에 오르게 하라는 유언을 남겼으며, 보제사 동남쪽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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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7년 사망 -
고코 천황
닌묘 천황의 아들로 태어나 후지와라노 모토쓰네의 옹립으로 즉위한 고코 천황은 궁중 행사 부흥과 예술 장려에 힘썼으며, 퇴위 후 와카가 《오구라 백인일수》에 수록되었다. -
887년 사망 -
이국창
이국창은 당나라 말기 사타족 출신 군인으로, 방훈의 난과 황소의 난을 진압하는 데 기여하여 대북절도사에 봉해졌으며, 손자 이존욱이 후당을 건국하면서 헌조 문경황제로 추존되었다. -
9세기 한국의 군주 -
진성여왕
진성여왕은 신라 경문왕의 딸로, 정강왕 사후 887년에 즉위하여 음란한 행실과 국정 문란, 민란 발생으로 혼란을 겪다가 897년 효공왕에게 양위하고 사망했다. -
9세기 한국의 군주 -
견훤
견훤은 신라 장군 출신으로 후백제를 건국하고 왕건과 대립하다가 아들 신검의 반란으로 고려에 투항하여 상부의 칭호를 받았으며, 후백제 멸망 후 사망했다. -
생년 미상 -
손니 알리
손니 알리는 송가이 제국의 군주로서 니제르 강 유역을 장악한 후 팀북투와 젠네를 정복하고 군사력을 강화하여 제국을 확장했으며, 전통 신앙과 이슬람교 조화, 법에 의한 국가 통제, 무역 확립 등 내치에도 힘썼다. -
생년 미상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2. 생애
886년 헌강왕이 사망한 후, 헌강왕의 태자 김요가 아직 두 돌이 안된 어린 나이였으므로, 김황이 신라 제50대 왕에 즉위하였다. 887년 1월 황룡사에서 백고좌를 열어 왕이 직접 행차하여 강의를 들었다. 같은 달, 한주(漢州)의 이찬 김요(金蕘)가 반란을 일으키자 군사를 파견하여 김요를 죽였다.
5월에 병을 얻어 쓰러졌다. "나에게는 후사가 없고, 여동생(후일의 진성여왕)이 총명하니 왕위에 오르게 하라"고 유언하고, 7월 5일에 사망했다. 시호는 정강왕(定康王)으로, 보제사(경상북도 경주시 배반동 서남부) 동남쪽에 매장되었다고 하며, 그 능묘는 경주시 남산동 사적 제186호로 비정되어 있다.
4. 정강왕릉
887년 7월 5일에 사망했다. 시호를 정강왕(定康王)으로 받아 보제사(경상북도 경주시 배반동의 서남부) 동남쪽에 매장되었다고 하며, 그 능묘는 경주시 남산동의 사적 제186호로 비정되어 있다.
5. 평가
정강왕은 선왕인 헌강왕을 본받아 887년 1월 황룡사에서 백고좌를 열었고, 왕이 직접 행차하여 강의를 들었다. 같은 달, 한주(경기도 광주시)의 이찬(2등 관위) 김요(金蕘)가 반란을 일으키자, 군사를 보내 김요를 죽였다.
반란을 평정한 후, 5월에 왕은 병을 얻어 쓰러졌다. 이때 "나에게는 후사가 없고, 여동생(후일의 진성여왕)이 총명하니 왕위에 오르게 하라"고 유언하고, 7월 5일에 사망했다. 시호는 정강왕(定康王)이며, 보제사(경상북도 경주시 배반동의 서남부) 동남쪽에 매장되었다고 하며, 그 능묘는 경주시 남산동의 사적 제186호로 비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