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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고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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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백고좌법회는 내란과 외침을 막고 국가의 평안을 기원하기 위해 100개의 불상, 보살상, 사자좌를 마련하고 100명의 법사를 초청하여 《불설인왕반야바라밀경》을 강독하는 의식이다. 신라 시대에 처음 시작되었으며, 왕실 주도로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는 호국적 성격을 띠었다. 신라의 백고좌법회는 밀교적인 성격이 배제되었으며, 왕이나 귀족을 위한 강설법회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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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고좌
기본 정보
한자白高座
영어Baekgojwa
종류강경(강설) 법회
시대삼국 시대 ~ 고려 시대
지역흥륜사, 황룡사 등
관련 인물원효, 자장 등
역사
기원중국 남북조 시대
한국 전래삼국 시대
유행고려 시대까지 지속
내용
의미덕이 높은 승려가 높은 강좌에 앉아 불교 경전을 강론하는 법회
진행 방식법사(法師)가 고좌(高座)에 올라 경전의 내용을 강론
청중은 법사의 설명을 들으며 질문과 답변을 통해 이해를 깊게 함
주요 경전반야경
유마경
승만경
특징
사회적 기능불교 교리 전파
승려와 신도 간의 소통 증진
불교 문화 발전 기여
의의불교 학문 발전
대중 교화
사회 통합
관련 용어
강사 (講師)경전을 강론하는 승려
강경 (講經)경전을 강론하는 것
법회 (法會)불법을 강설하고 듣는 모임
고좌 (高座)설법을 위해 높게 만든 자리

2. 정의

구마라습이 번역한 《불설인왕반야바라밀경(佛說仁王般若波羅密經)》 2권을 소의경전으로 하여 내란과 외침을 막고 국가를 평안하게 하기 위하여 호국적 불교 신앙에 따라 100개의 불상과 100개의 보살상, 100개의 사자좌(師子座)를 설치하고 100명의 법사를 초청하여 《인왕반야경》을 강독하는 의식이다.[2]

특히, 신라 승려들의 《인왕반야바라밀경》에 대한 연구는 활발하여 원측의 《인왕반야경소》 6권, 태현의 《인왕반야고적기]》 1권,

3. 명칭

백고좌법회는 인왕도장, 인왕경도장, 인왕백좌도장, 백고좌인왕도장, 백고좌회, 백고좌도장, 백좌인왕회, 백좌인왕경도장, 백좌인왕도장, 백좌회, 백좌도장, 백좌법석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2]

4. 역사

백고좌는 불교 행사 중 하나로, 신라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511년 진흥왕 12년에 고구려에서 온 승려 혜량이 승통이 된 후 백고좌법회와 팔관회를 처음 열었다.[2]

신라에서 백고좌법회가 정기적으로 열렸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총 10회에 걸쳐 열렸다.[2] 613년 수나라 사신이 방문했을 때 황룡사에서 열렸고, 636년 선덕여왕의 쾌유를 위해, 877년 헌강왕 때도 열렸다.[2]

이 법회는 왕이나 귀족을 위한 행사였으며, 국가 안녕을 기원하는 호국 불교 의식이었다.[2] 구마라습이 번역한 《불설인왕반야바라밀경》을 중심으로 진행되었으며, 고려 불교와 달리 밀교적 요소는 없었다.[2]

신라 승려들은 《인왕반야바라밀경》 연구에 많은 업적을 남겼는데, 원측의 《인왕반야경소》, 태현의 《인왕반야고적기》, 현범의 《인왕반야경소》, 예원의 《인왕경주》 등이 대표적이다.[2]

4. 1. 신라의 백고좌법회

신라 진흥왕 12년(511년)에 한국 최초로 백고좌법회가 열렸다.[2] 진흥왕은 고구려에서 귀화한 승려 혜량에게 신라 승관제도의 최고위직인 승통을 제수했다.[2] 혜량은 그 해에 백고좌법회와 팔관회를 처음으로 개설하였다.[2]

신라에서 백고좌법회가 정기적으로 열렸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총 10회에 걸쳐 열린 것은 사실이다.[2] 613년 7월, 수나라 사신 왕세의가 방문했을 때 황룡사에서 백고좌를 열고 원광법사 등을 초청하여 경전을 강설했다.[2] 636년 3월에는 선덕여왕의 쾌유를 빌기 위해 황룡사에 백고좌를 설치하고 100명의 승려를 득도시켰다.[2] 877년 헌강왕도 백고좌법회를 열었다는 기록이 있어, 부정기적으로 개최된 것으로 추정된다.[2]

이러한 법회는 일반 백성보다는 왕이나 귀족을 위한 강설회 성격이 강했으며,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는 호국 의식의 일환이었다.[2] 구마라습이 번역한 《불설인왕반야바라밀경》을 중심으로 진행되어, 고려 불교에 나타나는 밀교적 요소는 배제된 것이 특징이다.[2]

신라 승려들은 《인왕반야바라밀경》 연구에 큰 업적을 남겼다. 원측의 《인왕반야경소》(6권), 태현의 《인왕반야고적기》(1권), 현범의 《인왕반야경소》(2권), 예원의 《인왕경주》(4권) 등이 대표적이다.[2]

5. 특징

신라의 백고좌법회는 고려 불교에 가미되었던 밀교적인 성격이 배제된 것이 특징이다.[2] 왕이나 귀족들을 위한 강설법회 형식을 띤 국가 안위를 위한 일종의 호국 의식 행사였다.[2]

참조

[1] 백과사전 동양사상 > 한국의 사상 > 삼국시대의 사상 > 삼국시대의 불교사상 > 백고좌 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동양사상/[...]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2] 백과사전 종교·철학 > 한국의 종교 > 한국의 불교 > 한국불교의 의식 > 인왕백고좌도장 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종교·철학[...]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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