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길
1. 개요
정유길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명종 대에 이르기까지 요직을 두루 거치며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는 윤원형을 여러 차례 탄핵하는 등 정치 활동을 펼쳤으며, 훈구파, 소윤파, 사림파 등 다양한 세력과 연대하며 여러 관직을 역임했다. 이량 일파로 몰려 탄핵받아 조정에서 물러나기도 했지만, 이후 훈구파 및 서인과의 친분으로 좌의정까지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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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8년 사망 -
미마르 시난
미마르 시난은 오스만 제국의 전성기를 이끈 건축가이자 토목 기사로, 쉴레이만 1세, 셀림 2세, 무라트 3세 세 명의 술탄을 섬기며 쉴레이마니예 모스크와 셀리미예 모스크를 포함한 300개가 넘는 건축물을 설계하여 오스만 건축 양식의 정점을 보여주었다. -
1588년 사망 -
척계광
척계광은 명나라 시대의 무장이자 군사 전략가로, 왜구 토벌과 북방 방어에 공헌했으며, 원앙진 전술 개발, 만리장성 보강, 『기효신서』 및 『연병실기』 저술 등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
조선의 문신 -
윤증
윤증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소론의 영수로 우의정까지 역임한 정치가였으며, 성리학적·정치적 갈등으로 스승 송시열과 결별하고 탕평책을 지지했으나 당쟁 속에서 뜻을 이루지 못했으며, 실천적 삶을 강조한 무실학을 추구하며 조선 후기 정치와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
조선의 문신 -
정여립
정여립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동인으로 전향하여 이이를 비판하다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간 후 대동계를 결성했으나 반란 혐의로 자결했으며, 기축옥사로 동서인 갈등을 심화시킨 인물이다. -
한국사 인물 -
윤증
윤증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소론의 영수로 우의정까지 역임한 정치가였으며, 성리학적·정치적 갈등으로 스승 송시열과 결별하고 탕평책을 지지했으나 당쟁 속에서 뜻을 이루지 못했으며, 실천적 삶을 강조한 무실학을 추구하며 조선 후기 정치와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
한국사 인물 -
정범조 (1833년)
2. 생애
정유길은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공조좌랑, 사간원정언 등을 거쳤다. 명종 대에는 동부승지, 좌부승지, 우승지, 도승지 등 승정원의 요직을 역임하며 왕의 측근에서 활동했다.
홍언필 등과 윤원로를 귀양 보냈고, 이준경 등과 윤원형을 여러 번 탄핵했다. 홍문관 부제학 시절에는 윤개, 이량 등과 함께 반 윤원형 세력을 형성하기도 했다.
이후 대사헌, 예조판서, 이조판서, 대제학 등을 거쳐 우참찬, 이조판서, 공조판서에 이르렀으나, 이량 일파로 몰려 탄핵받았다. 그러나 훈구파, 서인과의 친분으로 지중추부사로 복귀, 예조판서, 이조판서를 거쳐 숭정대부에 올랐다. 이후 우찬성, 좌찬성, 병조판서, 판의금부사를 거쳐 우의정, 좌의정까지 역임했다.
2.1. 관직 역임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공조좌랑, 사간원 정언을 지냈다. 정언과 이조정랑을 거쳐 홍언필, 윤인경, 성세창, 유관, 윤임, 정사룡, 신광한, 심연원, 유인숙, 권벌, 윤개 등과 윤원로를 탄핵해서 귀양을 보냈다. 이후 명종 때 의정부 검상, 의정부사인을 지내고, 사헌부 집의로 승진했다. 사복시부정을 거쳐 홍문관 부교리가 되고, 시독관이 되어 명종의 총애를 받았다. 시강관을 거쳐 교리로 있을 때 이준경, 이윤경, 심연원, 홍섬 등과 윤원형을 여러 번 탄핵했다. 홍문관부응교로 승진하면서 대윤 잔존 세력과 연대했고, 훈구파와 소윤파, 사림파 모두에게서 존경을 받았다. 시강관과 사인을 거쳐 동부승지로 당상관에 올라 명종의 총애를 얻어 조선의 폐단을 개혁하려 애썼고, 좌부승지로 초배된다. 참찬관과 색승지를 거쳐 우승지가 되었다. 도승지 시절에 이탁, 이명, 심연원, 홍섬 등과 윤원형을 여러 번 탄핵했지만 제거하지는 못했다. 홍문관 부제학이 되며 윤개, 이량, 홍섬, 심연원, 심통원, 노수신, 이명, 정사룡, 신광한, 홍담 등과 반 윤원형 세력에 섰고, 참찬관을 겸하며, 이량 일파에 들어갔다. 심연원, 심통원, 이명, 이량, 정사룡, 이탁 등과 윤원형을 여러 번 탄핵하였다. 동지중추부사가 되고 다시 승정원 도승지가 되었다. 도승지로 참찬관을 겸했고, 사헌부 대사헌이 되고, 홍문관 부제학을 겸하다 대사헌, 예조참판, 이조참판으로 승진하고 예조판서와 대제학으로 곧 승진한다. 우참찬, 이조판서, 공조판서까지 되지만, 이량 일파로 몰려 탄핵을 받아 조정에서 물러난다. 훈구파와 서인들과의 지속적인 친분으로 지중추부사가 되고, 예조판서, 이조판서를 거쳐 숭정대부에 오르고 특진관을 겸하고 다시 예조판서가 되고 우찬성, 좌찬성으로 오르고, 병조판서와 판의금부사를 거쳐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에 이르렀다.
2.2. 정치 활동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공조좌랑, 사간원정언을 지냈다. 정언과 이조정랑을 거쳐 홍언필, 윤인경, 성세창, 유관, 윤임, 정사룡, 신광한, 심연원, 유인숙, 권벌, 윤개 등과 윤원로를 탄핵하여 귀양 보냈다. 명종 때 의정부검상, 의정부사인을 지냈고, 사헌부집의로 승진했다. 사복시부정을 거쳐 홍문관부교리가 되었으며, 시독관으로서 명종의 총애를 받았다. 시강관, 교리를 거치며 이준경, 이윤경, 심연원, 홍섬 등과 윤원형을 여러 번 탄핵했다. 홍문관부응교, 홍문관응교로 승진하면서 대윤 잔존 세력과 연대했고, 훈구파, 소윤파, 사림파 모두에게서 존경받았다. 시강관과 사인을 거쳐 동부승지로 당상관에 올랐고, 명종의 총애를 받아 조선의 폐단을 개혁하려 애썼으며, 좌부승지로 초배되었다. 참찬관과 색승지를 거쳐 우승지가 되었다. 도승지 시절 이탁, 이명, 심연원, 홍섬 등과 윤원형을 여러 번 탄핵했지만, 윤원형을 제거하지는 못했다. 홍문관부제학이 되면서 윤개, 이량, 홍섬, 심연원, 심통원, 노수신, 이명, 정사룡, 신광한, 홍담 등과 반 윤원형 세력에 섰고, 참찬관을 겸하며 이량 일파에 들어갔다. 심연원, 심통원, 이명, 이량, 정사룡, 이탁 등과 윤원형을 여러 번 탄핵했다. 동지중추부사가 되고 다시 승정원도승지가 되었다. 도승지로 참찬관을 겸했고, 사헌부대사헌이 되고, 홍문관부제학을 겸하다 대사헌, 예조참판, 이조참판으로 승진했으며, 곧 예조판서와 대제학으로 승진했다. 우참찬, 이조판서, 공조판서까지 되었지만, 이량 일파로 몰려 탄핵받아 조정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훈구파와 서인과의 친분으로 지중추부사가 되었고, 예조판서, 이조판서를 거쳐 숭정대부에 올랐으며, 특진관을 겸하고 다시 예조판서가 되었다. 우찬성, 좌찬성을 거쳐 병조판서와 판의금부사를 지내고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