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인
1. 개요
정용인은 1942년 경상북도 예천군 출생으로, 대창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판사로 임용되었다. 청주지방법원 판사를 시작으로 서울지방법원 북부지원장, 전주지방법원, 대전지방법원, 서울가정법원, 대전고등법원 법원장을 역임했으며, 2000년 대법원에 사표를 제출했다. 국제거래 분야에 관심을 갖고 관련 논문을 발표했으며, 예천 법조인 모임인 예법회 초대 회장을 지냈다. 판사 재직 기간 동안 형사 사건에서 다양한 판결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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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창고등학교 동문 -
장해랑
장해랑은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광운대학교에서 언론학 박사 학위를 받고 KBS PD, KBS Japan 사장, EBS 사장 등을 역임한 언론인이자 영화 제작자이며, 언론 개혁 운동에 참여하고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는 동시에 세명대학교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를 역임하며 후학 양성에도 기여했다. -
대창고등학교 동문 -
정은채
정은채는 2010년 영화 《초능력자》로 데뷔하여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으로 신인여우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은 대한민국의 배우로, 드라마와 영화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2013년에는 직접 작사, 작곡한 음반을 발매하기도 했다. -
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김웅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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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정진석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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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대한민국 사람 -
김웅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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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대한민국 사람 -
정진석 (정치인)
2. 생애
1942년 경상북도 예천군에서 태어났다. 대창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한 후 제4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판사로 임용되었다. 주요 경력과 활동은 하위 문단에서 상세히 설명한다.
2.1. 법관 경력
경상북도 예천군에서 1942년에 태어나 대창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제4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판사로 임용되었다. 청주지방법원 판사를 시작으로 서울지방법원 북부지원장, 전주지방법원장, 대전지방법원장, 서울가정법원장, 대전고등법원장을 역임했다.
2000년 6월 23일, 사법시험 후배 기수의 판사가 신임 대법관으로 임명 제청되자, 사법시험 6회인 권광중 당시 사법연수원장, 8회인 권성 당시 서울행정법원장과 함께 같은 달 27일 대법원에 사표를 제출했다. 이는 당시 법조계의 관행에 따른 용퇴로 해석된다.
1991년 법원행정처에서 제작한 법원 홍보 영상 자료에 공판을 진행하는 모습이 담기기도 했다. 정용인은 국제거래 분야에 관심이 많아 '영미법상의 계약 위반에 대한 구제' 등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예천 출신 법조인들의 모임인 예법회의 초대 회장을 지냈다.
2.2. 기타 활동
1991년 법원행정처에서 제작한 법원 홍보 영상에 법원을 대표하여 공판을 진행하는 모습이 담겼다. 국제거래 분야에 관심이 많아 '영미법상의 계약 위반에 대한 구제' 등의 논문을 쓰기도 했다. 예천군 출신 법조인들의 모임인 예법회 초대 회장을 지냈다.
3. 주요 판결
정용인 판사는 여러 법원에서 재판장으로 재직하며 다양한 사건에 대한 판결을 내렸다.
서울형사지방법원 항소9부 재판장 시절인 1987년에는 집시법 위반으로 구속된 대학생 운동권 인사에 대해 구속을 취소하고 석방하는 결정을 내렸다.
대구고등법원 제1형사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88년에는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던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과 관련하여, 대법원에서 일부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시설 관계자들의 특수감금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여 실형을 선고했다. 이는 형제복지원 산하 농장이 적법한 사회복지시설이 아니므로 부랑인 강제 수용은 감금죄에 해당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서울고등법원 형사5부 재판장 시절인 1990년에는 여러 주요 사건들을 다루었다. 교제하던 여성의 가족에게 흉기를 휘둘러 살해 및 중상을 입힌 강력범죄 피고인에게는 원심보다 무거운 무기징역을 선고했으며, 가정폭력 상황에서 아버지를 살해한 고등학생에게는 집행유예를 선고하며 선처하기도 했다. 또한, 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협의회(민자통) 재건 사건, 반미청년회 및 한미문제연구소 사건 (오영식 전 전대협 의장), 전민련 간부 및 문부식 관련 사건, 인천지역 민주노동자연맹 사건 등 다수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항소심에서 일부 감형 판결을 내렸다. 경기대생 시위 관련 사건에서는 화염병 사용 혐의에 대해 법률 시행 전 행위임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면서도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는 인정하여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한편, 룸살롱 살인사건의 범인에 대해서는 사형을 선고한 원심을 유지했다.
서울고등법원 특별3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93년에는 행정소송에서 상속받은 유휴토지에 대해 상속 시점을 기준으로 사용 제한 여부를 판단하여 토지초과이득세를 부과한 것은 위법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3.1. 서울형사지방법원 항소9부
서울형사지방법원 항소9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87년 7월 15일, 집시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어 1심에서 징역 8월을 선고받고 항소한 성균관대 민민투위원장 이규하에 대해 구속을 취소하고 석방하는 결정을 내렸다.
3.2. 대구고등법원 제1형사부
대구고등법원 제1형사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88년 7월 7일,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으로 구속된 피고인들에 대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특수감금 등) 혐의 관련 판결을 내렸다. 이 사건은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로 원심 판결이 파기되어 환송된 것이었다. 그러나 정용인 재판장은 "문제가 된 형제복지원 산하 울주농장은 적법한 허가를 받은 사회복지시설로 인정될 수 없어 부랑인을 강제수용한 것은 감금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며, 형제복지원 관계자들에게 각각 징역 3년과 징역 1년을 선고했다.
3.3. 서울고등법원 형사5부
서울고등법원 형사5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며 여러 주요 판결을 내렸다.
* 1990년 4월 12일, 교제하던 여성의 집에 찾아가 흉기를 휘둘러 여성의 외삼촌을 살해하고 다른 가족에게 중상을 입힌 피고인에게 원심 징역 15년을 파기하고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 1990년 4월 14일, 어머니에게 행패를 부리는 아버지를 흉기로 찔러 살해하여 1심에서 징역 단기 2년 6월, 장기 3년을 선고받은 고등학교 1학년 피고인에게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하고 석방했다. 이는 가정폭력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고려한 판결로 해석될 수 있다.
* 1990년 4월 19일, 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협의회(민자통) 재건 사건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어 1심에서 징역 2년, 자격정지 2년을 선고받은 김준기 신구전문대 교수의 항소심에서 징역 1년 6월, 자격정지 2년으로 감형했다.
* 1990년 5월 10일, 반미청년회 및 한미문제연구소 결성 등으로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 구성 혐의로 구속되어 1심에서 징역 3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받은 전대협 전 의장 오영식의 항소심에서 징역 2년, 자격정지 3년으로 감형했다.
* 1990년 5월 17일, 전민련 국제협력국 간사 고현주와 문부식 등 4명에 대한 항소심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여, 고현주에게는 징역 1년 6월, 자격정지 1년 6월을 선고하고, 문부식 등 나머지 3명에 대해서는 항소를 기각하며 원심 형량인 징역 1년 6월, 자격정지 1년 6월을 유지했다.
* 1990년 7월 21일, 경기대학교 학원자주화투쟁위원회 위원장으로서 학생 시위를 주도하고 화염병 사용 등의 혐의로 구속되어 1심에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은 경기대생 권금택(당시 23세)에 대한 항소심에서, 화염병 사용 관련 법률 시행 전의 행위라는 이유로 해당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는 인정하여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 1990년 8월 16일, 인천지역 민주노동자연맹 사건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어 1심에서 징역 3년, 자격정지 3년에서 징역 1년 6월, 자격정지 2년을 선고받은 피고인 3명에 대해 각각 징역 2년 6월, 자격정지 2년 6월에서 징역 1년 6월, 자격정지 2년으로 일부 감형했다.
* 1990년 11월 22일, 구로동 샛별 룸살롱 살인사건의 범인에 대한 항소를 기각하고 사형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