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 영
1. 개요
정자 영은 정 장공의 아들로, 기원전 694년 이복 형인 정 소공이 제 양공에게 살해당한 후 채중에 의해 정나라 임금으로 옹립되었다. 그는 진나라에 있다가 즉위했으며, 노 환공의 기나라 지원 요청을 거절하고 제 양공, 진 선공과 회합하는 등의 활동을 했다. 채중이 죽고, 기원전 680년 정 여공이 침공하여 수장 부하의 배신으로 인해 살해당하며 생을 마감했다. 그의 죽음은 정나라의 혼란을 야기했고, 권력 기반의 취약함으로 몰락한 군주로 평가받는다.
| 이름 | 정자 희영 |
|---|---|
| 호칭 | 공 |
| 왕조 | 정나라 |
| 재위 기간 | 기원전 693년 - 기원전 680년 |
| 수도 | 신정 |
| 휘 | 희영 |
| 자 | 자의 |
| 시호 | 없음 |
| 묘호 | 없음 |
| 출생 | 불명 |
| 사망 | 기원전 680년 |
| 부친 | 장공 |
| 모친 | 등만 |
| 배우자 | 없음 |
| 능묘 | 없음 |
| 연호 | 없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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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된 사람 -
제임스 쿡
제임스 쿡은 18세기 영국의 탐험가이자 해군 장교로서, 세 차례의 태평양 탐험을 통해 뉴질랜드와 오스트레일리아 동부 해안을 탐사하고 지도를 제작하는 등 지리적 발견에 기여했으며 남극권에 진입하고 하와이 제도를 기록했으나, 하와이에서 원주민과의 충돌로 사망했다. -
암살된 사람 -
정여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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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 시대의 군주 -
제 희공
제 희공은 제나라의 제후로서 주변국과 우호 관계를 맺고, 송나라와 위나라 사이의 분쟁을 중재하며 북융의 침입을 격퇴하는 등 활발한 대외 활동을 펼쳤으나, 말년에 후계 구도에 혼란을 야기하다가 재위 33년 만에 사망했다. -
춘추 시대의 군주 -
제 환공
제 환공은 춘추 시대 제나라의 제후이자 춘추오패의 첫 번째 패자로, 관중을 등용하여 제나라를 강성하게 만들고 초나라의 남진을 저지하는 등 춘추 시대 초반 질서 확립에 기여했으나, 관중 사후 정치적 혼란과 후계자 다툼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여 복합적인 평가를 받는다. -
생년 미상 -
손니 알리
손니 알리는 송가이 제국의 군주로서 니제르 강 유역을 장악한 후 팀북투와 젠네를 정복하고 군사력을 강화하여 제국을 확장했으며, 전통 신앙과 이슬람교 조화, 법에 의한 국가 통제, 무역 확립 등 내치에도 힘썼다. -
생년 미상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2. 생애
정자 영은 장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기원전 691년(정자 영 3년), 노 환공이 활(滑)에 주둔하여 함께 기나라를 돕자고 했으나, 약(櫟)에 있는 여공 때문에 사절했다.
기원전 690년(정자 영 4년), 제 양공, 진 선공과 회합했다.
기원전 682년(정자 영 12년), 정자 영을 옹립한 채중이 죽었다.
2.1. 즉위 과정
기원전 694년, 이복형인 정 소공(자문)이 제 양공에게 살해당하자, 채중이 정자 영을 옹립하여 정나라 임금이 되었다. 《사기》에서는 고거미도 함께 정자 영을 옹립했다고 하나, 《춘추좌씨전》에 따르면 제 양공이 고거미를 죽였다고 하여 서로 다르다. 정자 영은 원래 진나라에 있었다.
2.2. 재위 기간
기원전 694년, 정자 미가 제 양공에게 살해당하자 채중에게 옹립되어 정나라 임금이 되었다. 《사기》에서는 고거미도 함께 정자 영을 옹립했다고 하나, 《춘추좌씨전》에 따르면 제 양공이 고거미를 차열했다고 하여 서로 다르다.
기원전 691년, 노 환공이 활(滑)에 주둔하여 함께 기나라를 돕자고 했으나, 약(櫟)에 있는 정 여공 때문에 사절했다.
기원전 690년, 제 양공, 진 선공과 회합했다.
기원전 682년, 자신을 옹립한 채중이 죽었다.
기원전 680년, 정 여공이 본국으로 쳐들어와 수장 부하(傅瑕)가 대릉(大陵)에서 사로잡혔다. 부하는 여공에게 자신을 살려주면 임금으로 들이겠다고 하고, 풀려나 6월 갑자일에 정자 영과 두 아들을 죽이고 여공을 복위시켰다. 《사기》와 《좌전》에서는 이 기사 뒤에, 6년 전에 정나라 도성에서 문 안의 뱀이 문 밖의 뱀과 싸우다 죽은 사건을 붙여두고 있다.
2.3. 최후
기원전 680년, 정 여공이 본국으로 쳐들어와 수장 부하(傅瑕)를 대릉(大陵)에서 사로잡았다. 부하는 여공에게 자신을 살려주면 임금으로 들이겠다고 약속하고, 풀려난 후 6월 갑자일에 정자 영과 그의 두 아들을 죽이고 여공을 복위시켰다. 《사기》와 《좌전》에서는 이 기사 뒤에, 6년 전에 정나라 도성에서 문 안의 뱀이 문 밖의 뱀과 싸우다 죽은 사건을 붙여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