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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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정태신은 대한제국에서 교육을 받고, 일본 오사카에서 조선인친목회를 설립한 인물이다. 이는 일본 최초의 조선인 노동자 단체였다. 3·1 운동 이후 귀국하여 조선노동공제회에서 활동했으며, 일본에서 사회주의 잡지 『대중시보』를 간행했다. 1922년에는 고려공산당 통합 회의에 참가했고, 1923년 부산에서 사고로 사망했다. 그는 일제강점기 한국의 독립과 사회주의 운동에 헌신한 선구적인 인물로 평가받는다.

정태신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한글 이름정태신
한자 이름鄭泰信
가타카나 이름チョン・テシン
히라가나 이름てい たいしん
다른 이름정우영 (鄭又影)
정태옥 (鄭泰玉)
정진 (鄭震)
고산 의부 (高山義夫)
정양명 (鄭羊鳴)
출생일1892년 2월 7일
출생지조선 경기도 이천
사망일1923년 8월 12일
사망지일제강점기 조선 경상남도 부산부
사망 원인(정보 없음)
성별(정보 없음)
국적조선 → 대한제국
직업(정보 없음)
본관(정보 없음)
별칭(정보 없음)
학력(정보 없음)
부모(정보 없음)
형제(정보 없음)
배우자(정보 없음)
자녀(정보 없음)
동거인(정보 없음)
가족(정보 없음)
친척(정보 없음)
병역(정보 없음)
독립운동
관련 활동독립운동
활동 기간(정보 없음)
주요 활동(정보 없음)
활동 이념(정보 없음)
영향을 줌(정보 없음)
영향을 받음(정보 없음)
소속(정보 없음)
상훈건국포장
서명(정보 없음)
웹사이트(정보 없음)
기타(정보 없음)
각주(정보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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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정태신은 1914년 9월 일본에서 조선인친목회(朝鮮人親睦會) 간사장으로 조선인 권익 향상을 위해 활동했다. 3.1 운동 이후 귀국하여 조선노동공제회 간부로 활동하며 기관지 《공제》(共濟) 발행에 참여했다. 1921년 도쿄에서 조선인고학생동우회(朝鮮人苦學生同友會)에 가입하고 주간잡지 《대중시보》 발간에 참여했으며, 1922년 8월 상하이 국치기념대회(國恥記念大會)에서 연설하고, 10월 고려공산당 통합대회에 재동경조선인공산주의단체 대표로 참가했다. 1923년 1월 북성회(北星會) 결성에 참여했으나, 같은 해 부산에서 사고로 사망했다.

2.1. 일본 유학 및 초기 활동 (1914년 ~ 1920년)

대한제국에서 교육을 받은 후, 1914년에 오사카로 건너가 아나키스트 요코타 소지로의 협력으로 오사카에 거주하는 조선인 노동자의 상호 부조 단체인 조선인친목회를 설립했다. 이는 일본 최초의 조선인 노동자 단체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나경석에게 운영을 맡기고 중국으로 건너갔다.

2.2. 귀국 및 조선노동공제회 활동 (1919년 ~ 1921년)

3·1 운동 이후 조선으로 돌아와 김약수와 함께 조선노동공제회 간부로 활동했으며, 기관지 《공제》(共濟) 발행에도 참여했다.

2.3. 일본에서의 언론 활동 및 사회주의 운동 (1921년 ~ 1922년)

1921년, 도쿄에서 조선인고학생동우회(朝鮮人苦學生同友會)에 가입하고 주간잡지 《대중시보》 발간에 참여했다. 《대중시보》는 사회주의 사상을 전파하는 매체였다. 1922년 8월, 상하이에서 여운형 등이 주최하는 국치기념대회(國恥記念大會)에 참석하여 교민대회에서 연설했다. 10월에는 고려공산당 통합대회에 재동경조선인공산주의단체 대표자로 참가하였다. 이 대회는 코민테른의 지도 아래 이르쿠츠크파와 상하이파 고려공산당의 통합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2.4. 북성회 결성 및 사망 (1923년)

1923년 1월, 경성에서 사회주의 운동 단체인 북성회(北星會) 결성에 참여했다. 같은 해, 부산에서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다.

3. 평가

정태신은 일제강점기 한국의 독립과 사회주의 운동에 헌신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 1914년 일본에서 조선인친목회 간사장으로 조선인 권익 향상을 위해 활동했다. 3.1 운동 이후에는 귀국해 조선노동공제회의 간부로 활동하며 기관지 《공제》(共濟)의 발행에도 참여했다.
* 1921년 도쿄에서 조선인고학생동우회에 가입하고 주간잡지 《대중시보》의 발간에 참여했다.
* 1922년 8월, 상하이에서 여운형 등이 주최하는 국치기념대회에 참석하며 대회 직후의 교민대회에서 연설을 했다. 이후 10월에는 고려공산당 통합대회에 재동경조선인공산주의단체 대표자로 참가하였다.
* 1923년 1월, 경성에서의 북성회 결성에 참여했다. 이후 부산에서 우연한 사고로 사망했다.

대한제국에서 교육을 받은 후, 1914년에 오사카로 건너가 아나키스트 요코타 소지로의 협력으로 오사카에 거주하는 조선인 노동자의 상호 부조 단체인 조선인친목회를 설립했다. 이는 일본 최초의 조선인 노동자 단체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운영을 나경석에게 맡기고 중국으로 건너갔다. 3·1 운동 이후 조선으로 돌아와 조선노동공제회에서 김약수와 함께 간부로 활동, 1921년에는 일본에서 "대중시보사"를 설립, 사회주의 잡지 『대중시보』를 간행했다. 1922년에는 코민테른의 지도 아래, 구 이르쿠츠크파와 구 상하이파의 고려공산당 통합을 위한 회의가 러시아의 베르흐네우진스크(현 울란우데)에서 개최되자, 조선인 공산주의자를 대표하여 참가했다. 1923년 부산에서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