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공주
1. 개요
정혜공주는 발해 문왕의 딸이자 대조영의 증손녀로, 발해의 왕녀였다. 40세에 사망하여 정혜공주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묘는 중국 지린성 옌볜 조선족 자치주 돈화시 육정산 고분군에 위치한다. 효의황후의 딸로, 정효공주와 정연공주가 동생이며, 남편과 아들이 있었으나 모두 먼저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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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8년 출생 -
청량징관
청량징관은 당나라 시대 승려이자 청량국사로, 화엄경 연구에 기여하고 다양한 불교 사상을 융합하려 했으며, 사법계라는 독창적인 사상을 제시하여 화엄종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
발해 문왕 -
대흥 (발해)
대흥은 발해 고왕 대조영 이후 713년부터 737년까지 사용된 연호로, 발해의 정치적 안정과 국제적 위상 강화, 당나라로부터의 공식적인 인정 및 그에 따른 간섭, 신라의 견제 속에서 발해의 독자적인 국가임을 천명하는 데 사용되었다. -
발해 문왕 -
정혜공주묘
정혜공주묘는 중국 지린성 둔화시 육정산 고분군에 위치한 발해 문왕의 둘째 딸 정혜공주의 무덤으로, 고구려 건축 양식을 계승한 돌방봉토무덤이며 묘비명을 통해 정혜공주가 정효공주의 언니임이 밝혀졌으나, 중국 정부의 소홀한 관리로 훼손되어 역사 왜곡에 대한 우려가 있다. -
병사한 사람 -
현진건
현진건은 일제강점기의 사실주의 소설가로, 대표작으로는 「빈처」, 「술 권하는 사회」, 「운수 좋은 날」 등이 있으며, 일제강점기 언론 탄압을 받기도 했다. -
병사한 사람 -
김성수 (언론인)
김성수는 인촌이라는 호를 사용한 언론인이자 기업인, 정치인으로, 경성방직 설립, 동아일보 창간, 보성전문학교 인수 및 발전에 기여했으며 제2대 부통령을 역임했으나 친일 논란이 있다.
2. 생애
정혜공주묘의 비석에서 정혜공주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정혜공주는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의 증손녀이자 발해의 왕녀였다. 문왕의 둘째 딸로 태어났으며, 정효공주의 언니이기도 하다. 묘지명에 따르면 그녀는 출가하였으나, 남편과 아들은 그녀보다 먼저 죽었다. 보력 4년(777년) 4월 14일에 40세 나이로 생을 마감했고, 정혜공주라는 시호를 받았다. 보력 7년 11월에 진릉(珍陵) 서원(西原)에 배장(陪葬)되었는데, 오늘날의 지명으로는 중국 지린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 돈화시 남쪽 5km에 위치한 육정산(六頂山) 고분군에 있다.
2.1. 가계 및 출생
정혜공주묘의 비석에서 정혜공주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정혜공주는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의 증손녀이자 발해의 왕녀이다. 문왕의 둘째 딸로 태어났으며, 정효공주의 언니이기도 하다. 묘지명에 따르면 그녀는 출가하였으나, 남편과 아들은 그녀보다 먼저 죽었으며, 보력 4년(777년) 4월 14일 40세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정혜공주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보력 7년 11월에 진릉(珍陵) 서원(西原)에 배장(陪葬)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오늘날의 지명으로는 중국 지린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 돈화시 남쪽 5km에 위치한 육정산(六頂山) 고분군에 위치한다.
| 가계 | |
|---|---|
| 부왕 | 문왕(文王, ? ~793 재위:737~793) |
| 모후 | 효의황후(孝懿皇后) |
| 언니 | 미상(요절) |
| 본인 | 정혜공주 |
| 남편 | 미상 |
| 아들 | 미상(요절) |
| 여동생 | 정연공주(생몰년 미상, 요절) |
| 여동생 | 정효공주(貞孝公主, 757~792) |
2.2. 혼인과 죽음
정혜공주는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의 증손녀이자 발해의 왕녀이다. 문왕의 두 번째 딸로 태어났으며, 정효공주의 언니이기도 하다. 묘지명에 의하면 그녀는 출가하였으나, 남편과 아들은 그녀보다 먼저 죽었다. 정혜공주묘의 비석에 따르면, 보력(寶曆) 4년(777년) 4월 14일 40세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정혜공주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보력 7년 11월에 진릉(珍陵) 서원(西原)에 배장(陪葬)되었다. 오늘날의 지명으로는 중국 지린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 돈화시 남쪽 5km에 위치한 육정산(六頂山) 고분군에 위치한다.
3. 무덤
정혜공주묘의 비석에서 정혜공주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정혜공주는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의 증손녀이자 발해의 왕녀였다. 문왕의 두 번째 딸로 태어났으며, 정효공주의 언니이기도 하다. 묘지명에 따르면 정혜공주는 출가하였으나, 남편과 아들은 그녀보다 먼저 죽었으며, 보력(寶曆) 4년(寶曆四年중국어) (777년) 4월 14일 40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정혜공주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보력 7년 11월에 진릉(珍陵) 서원(西原)에 배장(陪葬)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오늘날의 지명으로는 중국 지린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 돈화시 남쪽 5km에 위치한 육정산(六頂山) 고분군에 위치한다.
4. 가계
| 관계 | 이름 |
|---|---|
| 부왕 | 문왕 (? ~793, 재위:737~793) |
| 모후 | 효의황후 |
| 언니 | 미상(요절) |
| 남편 | 미상 |
| 아들 | 미상(요절) |
| 여동생 | 정연공주(생몰년 미상, 요절) |
| 여동생 | 정효공주 (757~79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