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홍 (전한)
1. 개요
정홍은 전한 시대의 인물로, 형 정창과 함께 학문에 정진하여 경서와 법률에 통달했다. 남양태수를 역임하며 뛰어난 치적을 쌓았고, 회양상, 우부풍을 거쳐 어사대부까지 올랐다. 경방의 관리 평정 법률 제안에 처음 반대했으나 찬성으로 입장을 바꿨으며, 경방이 실각한 후 연루되어 면직되고 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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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7년 사망 -
안티고노스 2세 마타티아스
안티고노스 2세 마타티아스는 하스몬 왕조의 마지막 왕이자 대제사장으로, 파르티아의 지원을 받아 왕위를 차지했으나 헤로데 대왕에게 처형당하면서 하스몬 왕조를 멸망시킨 인물이다. -
기원전 37년 사망 -
효소황후
효소황후는 한 무제의 황후로, 강력한 외척의 지원과 아버지 효경황후 왕씨, 오빠 왕불정의 영향력 아래 한나라 정치에 깊이 관여하며 곽씨 가문의 몰락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
역사에 관한 -
광서제
광서제는 도광제의 손자이자 순친왕 혁현의 아들로, 1875년 청나라의 황제가 되었으며, 서태후의 섭정 아래 무술변법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유폐된 채 사망했다. -
역사에 관한 -
2013년
2013년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 교황 사임, 북한 핵실험, 용산 개발 사업 부도, 윤창중 사건, 스노든 폭로, 김연아 우승, 방탄소년단 데뷔, 넬슨 만델라 사망 등 국내외적으로 다양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사건들이 발생한 해이다. -
기원전 1세기 중국 사람 -
유급
유급은 전한 말기에 신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 멸망으로 작위를 잃은 유영의 아들이다. -
기원전 1세기 중국 사람 -
사마천
사마천은 중국 전한 시대의 역사가, 천문학자, 역법가로서 중국 최초의 통사로 평가받는 『사기』를 저술하여 기전체를 확립하고 역사 서술과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이릉 변호 사건으로 궁형을 받는 고난을 겪었으며 태초력 제정에도 참여하는 등 천문학과 역법에도 업적을 남겼다.
2. 생애
영광 2년(기원전 42년), 위현성이 승상으로 승진하면서 그 뒤를 이어 어사대부에 임명되었다.
경방이 관리를 평정하는 새로운 법률을 제안했을 때 정홍은 처음에 반대하였으나, 찬성으로 입장을 돌렸다. 또 경방은 이후 중서령(中書令) 석현과 승상 위현성을 내쫓도록 진언하고, 위현성의 후임으로 정홍을 추천하였다. 그러나 경방이 실각하여 죄를 받게 되었을 때 경방이 예전에 상주한 걸 정홍에게 이야기한 것이 문제가 되어, 건소 2년(기원전 37년) 파면되어 서인이 되었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서』백관공경표 하에서는 자살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정홍전·경방전에 따르면 면직만 되었다).
2.1. 초기 생애와 관직 생활
형 정창과 함께 학문을 즐겨, 경서와 법률에 통달하였다. 정창은 태원태수·탁군태수를 역임하였고, 정홍은 남양태수가 되어 각자 훌륭한 치적을 쌓아 후세에 전해지게 되었다. 다만 정창은 형벌을 자주 이용하여, 일을 공평하게 처리한 정홍만은 못하였다.
이후 정홍은 회양상이 되었고, 고제(高第)로 초원 3년(기원전 46년)에 우부풍으로 발탁되었다. 도성에서도 그를 칭찬했다.
2.2. 어사대부 승진과 경방과의 관계
형 정창과 함께 학문을 즐겨, 경서와 법률에 통달하였다. 정창은 태원태수·탁군태수를 역임하였고, 정홍은 남양태수가 되어 각자 훌륭한 치적을 쌓아 후세에 전해지게 되었다. 다만 정창은 형벌을 자주 이용하여, 일을 공평하게 처리한 정홍만은 못하였다.
이후 정홍은 회양상이 되었고, 초원 3년(기원전 46년) 고제(高第)로 우부풍으로 발탁되었다. 도성에서도 그를 칭찬했다.
영광 2년(기원전 42년), 위현성이 승상으로 승진하면서 그 뒤를 이어 어사대부에 임명되었다.
경방이 관리를 평정하는 새로운 법률을 제안하였을 때 정홍은 처음에 반대하였으나, 찬성으로 입장을 돌렸다. 또 경방은 이후 중서령(中書令) 석현과 승상 위현성을 내쫓도록 진언하고, 위현성의 후임으로 정홍을 추천하였다. 그러나 경방이 실각하여 죄를 받게 되었을 때 경방이 예전에 상주한 걸 정홍에게 이야기한 것이 문제가 되어, 건소 2년(기원전 37년) 파면되어 서인이 되었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서』백관공경표 하에서는 자살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정홍전·경방전에 따르면 면직만 되었다).
2.3. 파면과 죽음
경방이 관리를 평정하는 새로운 법률을 제안하였을 때 정홍은 처음에 반대하였으나, 찬성으로 입장을 돌렸다. 또 경방은 이후 중서령(中書令) 석현과 승상 위현성을 내쫓도록 진언하고, 위현성의 후임으로 정홍을 추천하였다. 그러나 경방이 실각하여 죄를 받게 되었을 때 경방이 예전에 상주한 걸 정홍에게 이야기한 것이 문제가 되어, 파면되어 서인이 되었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3. 출전
* 반고, 《한서》
권19하 백관공경표 下
권66 공손유전왕양채진정전
** 권75 수양하후경익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