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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공 (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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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사공은 고대 중국에서 토목 공사를 관장하는 관직으로 시작하여, 시대와 왕조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존재했다. 서주 시대 금문 사료에서 '공(工)' 자로 쓰였으며, 전국 시대에는 여러 나라에서 설치되었다. 전한 시대에는 대사공으로 개칭되어 삼공 중 하나가 되었으며, 후한 시대에는 사공으로 변경되어 명칭이 정착되었다. 이후 남북조 시대에는 고관으로, 수나라에서는 명예직으로, 명나라와 청나라에서는 공부상서의 다른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한국에서도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중요한 관직으로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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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공 (관직)
지도 정보
관직 정보
유형관직
사용 국가중국
상세 정보
시대주나라
진나라
한나라
수나라
당나라
요나라
금나라
원나라
명나라
청나라
베트남
한국
일본
주요 역할토목 공사 관리
수도 건설
도로 건설
수리 및 치수
한국에서의 사공
역사고조선
삼국 시대
남북국 시대
고려
조선
역할토목 및 수리 공사 감독
국방 관련 시설 관리
관련 인물최치원
이색
정약용

2. 역사

사공(司空)은 중국한국 등 동아시아의 역사에서 나타나는 관직명이다. 중국에서는 서주 시대에 처음 등장하여 주로 토목 공사를 담당하는 역할로 시작되었으며, 이후 한나라 시대에는 삼공의 하나로 격상되는 등 시대에 따라 그 위상과 역할이 변화하며 존속했다. 한국사에서도 사공이라는 명칭의 관직이 존재했으며, 그 구체적인 역할과 변천 과정은 시대별로 차이가 있다.

2. 1. 고대 중국의 사공

고대 중국에서 사공(司空)은 서주 시대에 처음 등장하여 주로 토목 공사를 관장하는 역할을 맡았다.[1] 이후 전국 시대를 거쳐 한나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존재했으며, 지방 관청에서도 사공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초기에는 죄수를 관리하며 공사를 담당했으나 점차 역할이 분화되었다.

유교 경전인 『서경』이나 『주례』 등에서는 요(堯), 순(舜) 시대의 이상적인 관직 또는 주(周)나라의 육관 중 하나로 묘사되기도 했지만, 이는 실제 역사적 제도라기보다는 후대의 이상화된 기록으로 여겨진다.[3][4][5][6][7][8]

실제 역사에서는 전한 말기에 어사대부를 대사공으로 개칭하면서 삼공의 하나로 자리 잡았고, 이후 후한 시대에는 사공으로 명칭이 변경되어 이어졌다. 조조에 의해 잠시 폐지되기도 했으나, 위나라가 건국되면서 삼공 제도가 부활하여 다시 설치되었다. 이후 시대에 따라 그 위상과 역할은 변화를 거듭했다.

2. 1. 1. 서주 ~ 전한 시대

서주 시대의 금문 사료에서는 사공(司空)의 '공(空)' 자가 '공(工)'으로 쓰였으며, 사공은 토목 공사나 각종 작업을 관장하는 역할을 맡았다.[1]

전국 시대에는 진나라와 초나라를 제외한 많은 나라에서 사공 직책을 두었다. 전국 시대부터 한나라 시대까지의 문헌이나 출토된 사료에서는 다양한 명칭의 사공이 확인된다. 예를 들어, "도사공(都司空)"(『묵자』), "차사공(次司空)"(『묵자』), "국사공(国司空)"(『상군서』), "현사공(県司空)"(『진률잡초』), "방사공(邦司空)"(『진률잡초』), "중사공(中司空)"(『이년율령』), "군사공(郡司空)"(『이년율령』), "궁사공(宮司空)"(『이년율령』), "현사공(県司空)"(『이년율령』), "옥사공(獄司空)"(『홍범오행전』) 등이 기록되어 있어, 지방의 여러 관청에 사공이 설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전한 시대 중앙 정부에는 "사공"이라는 명칭의 독립된 관직은 없었다. 대신 종정 아래에 도사공령, 소부 아래에 좌사공령과 우사공령, 수형도위 아래에 수사공장 등의 관직이 있었다.[2] 진나라와 한나라 시대에는 관청의 공사를 주로 형도(刑徒, 죄수)를 동원하여 진행했기 때문에, 사공은 형도의 관리인 치옥(治獄)과 치수 및 각종 토목 공사인 작사(作事)를 함께 담당했다. 그러나 전한 후기로 가면서 치옥과 작사의 역할이 분리됨에 따라, 각지에 있던 "사공"이라는 명칭은 점차 쓰이지 않게 되었다.

2. 1. 2. 유교 경전에서의 사공

서경』「요전(堯典)」에는 순(舜) 임금이 우(禹)를 사공(司空)으로 임명하여 물과 흙을 다스리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3]사기』 역시 같은 내용을 전한다.[4] 또한 『서경』「홍범(洪範)」에서는 기자(箕子)가 하(夏)나라와 은(殷)나라 때부터 이어져 온 여덟 가지 중요한 정치 업무, 즉 팔정(八政)의 네 번째로 사공을 언급했다.[5] 다만, 요(堯), 순, 우는 역사적 실존 인물이 아닌 전설 속 인물로 여겨지므로, 이 기록들의 역사적 사실성은 낮다.

전국 시대에 이상적인 주(周)나라의 제도를 구상하며 쓰인 『예기』의 「주례」에서는, 사공을 국가 최고 관직인 육관 중 하나로 설정했다. 사공은 천지(天地)와 사계절(春夏秋冬)에 대응하는 관직 체계에서 겨울을 상징하는 동관(冬官)에 해당하며, 토목 공사와 제작 기술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역할을 맡았다.

한편, 동진 시대에 만들어져 『서경』의 일부로 편입된 위서(僞書)로 평가받는 「주관」에서는 사공을 삼공구경 체제 안에서 설명한다.[6] 여기서는 사공을 최고위직인 삼공 바로 아래의 구경 중 하나이자 육관의 하나로 보았으며, 국토를 관리하고 백성들이 살 곳을 정해주며, 토지의 성질과 계절에 맞게 땅을 활용하도록 하는 임무를 담당한다고 기술했다.[7]

이처럼 여러 유교 경전에서 사공에 대한 언급이 나타나지만, 이는 실제 역사적 제도라기보다는 후대의 이상적인 국가 운영 구상이나 전설을 기록한 것으로 이해된다. 경전 해석 과정에서는 '공(空)'이라는 글자의 의미를 두고 다양한 학설이 제기되기도 했다.[8]

2. 1. 3. 한나라의 대사공과 사공

유교 경전에 등장하는 가상의 관직인 사공은 상고 시대의 제도를 따르려는 유교 사상의 영향으로 후대에 실제 관직으로 만들어졌다.

전한 말, 성제 수화 원년(기원전 8년)에 어사대부를 대사공으로 이름을 바꾼 것이 그 시작이다. 처음에는 사공으로 바꾸려 했으나, 기존에 있던 옥사공과의 구별을 위해 '대(大)' 자를 덧붙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애제 건평 2년(기원전 5년)에는 대사공이 다시 어사대부라는 이름으로 돌아갔지만, 원수 2년(기원전 1년)에 다시 대사공으로 바뀌었다. 이 대사공은 대사도, 대사마와 함께 삼공 중 하나로 여겨졌다.

왕망이 세운 나라에서도 삼공인 대사마, 대사도, 대사공이 설치되었다.

후한 광무제 건무 27년(51년), 주호의 상소에 따라 대사공은 사공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후 대사공이라는 명칭은 사라지고 사공으로 이어졌다.

후한 말 헌제 건안 13년(208년) 6월, 조조삼공 제도를 폐지하면서 사공직도 잠시 없어졌다. 그러나 후한에서 나라로 선양이 이루어지면서 삼공 제도가 부활했고, 사공 역시 다시 설치되었다.

2. 1. 4. 남북조 시대 이후

남북조 시대 이후, 사공(司空)은 고위 관직 중 하나로 계속 설치되었으나, 그 직무와 위상은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했다. 때로는 삼공 중 하나로 여겨지기도 했고, 때로는 그보다 낮은 관직으로 취급되기도 했다.

  • '''남조(南朝)의 송(宋)''': 군(軍)의 최고 직책으로 사공을 설치했다.
  • '''수(隋)''': 실질적인 군사 지휘권(병권)이 없는 명예직이었다.
  • '''명(明)''': 공부상서(工部尙書)를 달리 부르는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 '''청(清)''': 명나라와 마찬가지로 공부상서의 다른 이름으로 쓰였다.

2. 2. 한국의 사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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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1] 서적 漢書百官公卿表訳注
[2] 서적 漢書
[3] 서적 書経
[4] 서적 史記
[5] 서적 書経
[6] 서적 書経
[7] 서적 書経
[8] 서적 漢書百官公卿表訳注
[9] 서적 漢書
[10] 서적 続漢書
[11] 서적 한서
[12] 서적 속한서
[13] 사료 태조실록 총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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