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수공
1. 개요
정 수공은 정나라의 군주로, 공공의 아들이며 유공의 뒤를 이어 기원전 423년에 즉위했다. 재위 기간 동안 한나라와 전쟁을 벌여 옹구를 빼앗기기도 했지만, 부서에서 승리하기도 했다. 그는 또한 주나라 위렬왕과 초나라 성왕을 만나는 등 외교 활동을 펼쳤으며, 초나라의 침공으로 멸에서 항복하고 사자양을 잃는 등 내란을 겪었다. 결국 기원전 396년에 사자양의 당파에게 시해당하고, 그의 동생인 강공이 뒤를 이었다.
| 이름 | 繻公 (서공) |
|---|---|
| 성 | 姫 (희) |
| 휘 | 駘 (태) |
| 시호 | 繻公 (서공) |
| 작위 | 공 |
| 왕조 | 鄭 (정) |
| 재위 기간 | 기원전 423년 - 기원전 396년 |
| 도읍 | 新鄭 (신정) |
| 아버지 | 共公 (공공) |
| 사망 년도 | 기원전 39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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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96년 사망 -
위 문후
위 문후는 전국시대 위나라의 군주로서 이회, 오기 등 인재를 등용하고 법가적 개혁을 통해 위나라를 강국으로 만들었으며, 법치를 통해 사회 질서를 확립하고 백성들의 생활을 안정시키는 데 기여하여 전국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
정나라의 군주 -
정 환공
정 환공은 기원전 806년 정나라에 봉해지고 서주 사도가 되었으며, 견융의 침입 때 주 유왕을 보호하려다 전사했다. -
정나라의 군주 -
정 여공
정 여공은 춘추 시대 정나라의 군주로, 송나라의 옹립으로 즉위했으나 여러 차례 망명과 복위를 거듭하며 혼란스러운 정국을 이끌었고, 제나라 환공의 패권 다툼에 휘말리는 등 복잡한 외교 관계를 맺었다. -
살해된 사람 -
정인보
정인보는 일제강점기 및 한국전쟁 시기에 활동한 사학자, 시조 작가, 교육자로, 민족주의 역사관과 ‘얼’ 사상을 형성하고, 연세대학교 강사, 동아일보 논설위원, 국학대학교 학장, 감찰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조선사 연구』 등의 저서를 남겼으나 한국전쟁 중 납북되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
살해된 사람 -
정기원 (1559년)
정기원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1585년 문과 급제 후 임진왜란 때 사은사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정유재란 남원성 전투에서 순절하여 예조판서에 추증되고 충렬사에 배향, 시호는 충의이며 저서로 《현산집》, 《현산실기》가 있다.
2. 생애
정나라 공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기원전 423년, 진의 한계장이 정나라를 공격하여, 수공의 형인 유공을 살해하자 정공으로 즉위했다. 기원전 398년, 초나라의 침공을 받아 멸에서 항복하였다. 기원전 397년, 초나라는 정나라의 4명의 장군과 그 백성을 정나라로 돌려보냈다.
2.1. 한나라와의 전쟁
기원전 408년, 한 경후가 침략하여 옹구 땅을 빼앗겼다.
기원전 407년, 한나라를 공격하여 부서에서 한나라 군대를 격파했고, 기원전 400년에는 한나라 양책을 포위했다.
2.2. 외교 활동
기원전 404년, 진나라 군대가 제나라를 격파하고, 진나라 열공이 포로로 잡은 제나라 병사를 주나라 위렬왕에게 바치자, 정 수공도 이에 동행하여 주나라 왕을 알현했다. 같은 해, 수공은 초나라 성왕을 방문했다.
기원전 399년, 초나라가 정나라에 유관을 반환했다.
2.3. 내란과 최후
기원전 398년, 초나라의 침공을 받고 멸 땅에서 항복하는 등 내우외환에 시달렸다. 같은 해, 재상 사자양을 죽였으나, 기원전 396년 사자양의 무리에게 시해당하며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 그의 죽음 이후, 정나라는 혼란에 빠졌고, 유공의 동생인 강공이 군위에 올랐다.
3. 평가
정 수공은 한나라와의 전쟁에서 초기에는 고전했으나, 이후 반격에 성공하며 정나라의 국력을 회복하려 노력했다. 기원전 408년 한나라에게 옹구를 빼앗겼지만, 기원전 407년 부서에서 한나라 군을 격파했다.
그러나 기원전 398년 초나라의 침공을 받아 멸(蔑)에서 항복하고 4명의 장군과 함께 포로로 잡혔다. 이후 초나라는 기원전 397년 정 수공과 포로들을 돌려보냈으나, 기원전 396년 사자양의 당파들에게 살해당했다.
정 수공의 생애는 전국시대 초기 국가 간의 치열한 경쟁과 복잡한 외교 관계, 그리고 내부 권력 투쟁의 모습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