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리 하이덴라이크
1. 개요
제리 하이덴라이크는 미국의 수영 선수로,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4 x 100m 자유형 계영과 4 x 100m 혼계영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그는 또한 개인전 100m 자유형에서 은메달, 100m 접영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힐크레스트 고등학교와 사우스메소디스트 대학교에서 수영 선수로 활약하며, 대학 시절에는 여러 기록을 경신하고 NCAA 타이틀을 획득했다. 올림픽 이후에는 수영 코치로 활동했으며, 1992년에는 텍사스 스포츠 명예의 전당과 국제 수영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하이덴라이크는 2002년 자택에서 자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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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팬아메리칸 게임 수영 참가 선수 -
펠리페 무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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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자살 -
줄리안 라삼
프랑스 배우 줄리앙 라삼은 영화 감독 클로드 베리의 아들이자 영화 제작자 토마 랑만의 형제로, 영화 《반주자》로 세자르 영화제 신인상 후보에 올랐으나 추락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된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
2002년 자살 -
아부 니달
아부 니달은 팔레스타인 출신의 테러리스트로, 아부 니달 조직(ANO)을 결성하여 미국,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 등을 상대로 테러를 자행했으며, 2002년 이라크에서 사망했다. -
1971년 팬아메리칸 게임 메달리스트 -
펠리페 무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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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팬아메리칸 게임 메달리스트 -
에밀리오 코레아 (1953년)
아르헨티나 권투 선수 에밀리오 코레아(1953년)는 1972년 뮌헨 올림픽 라이트급 금메달, 1982년 WBA 웰터급 챔피언, 1974년 웰터급 세계 챔피언, 1977년과 1979년 국가 주니어 미들급 및 미들급 타이틀 획득 등 화려한 경력을 가졌으나, 1983년 패배로 WBA 웰터급 챔피언 자리를 잃었고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는 메달을 획득하지 못했다.
2. 초기 생애 및 수영 경력
제리 하이덴라이크는 미국의 수영 선수이다. 그는 텍사스주 댈러스의 힐크레스트 고등학교와 사우스메소디스트 대학교에서 수영 선수로 활동하며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다.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 모두 여러 기록을 세우고 올 아메리칸에 선정되는 등 주목받는 선수였다.
2.1. 고등학교 시절
그는 댈러스의 힐크레스트 고등학교 수영팀에서 활동했다. 고등학교 4학년이던 1968년 3월 22일부터 23일까지 열린 텍사스 인터스콜라스틱 리그 주 수영 선수권 대회에서 약 91.44m 접영을 53.1초, 약 182.88m 자유형을 1분 46.3초에 완주하며 주 기록을 세웠다. 그는 총 7개 종목에서 전국 올 아메리카(All-America) 자격을 획득했다. 1968년 4월에는 텍사스 최고의 고등학교 수영 선수에게 수여되는 마이크 멜론 기념 트로피를 받았다.
2.2. 대학교 시절
그는 레드 바르 명예의 전당 수영 코치와 조지 맥밀리언 보조 코치(1971년에는 맥밀리언이 헤드 코치 역임) 아래에서 수영을 하기 위해 사우스메소디스트 대학교(SMU)에 다녔다. 하이덴라이크는 SMU 재학 시절 거의 모든 자유형, 접영, 개인 혼영 기록을 깼다. 그는 SMU에서 4번이나 올 아메리칸에 선정되었으며, 1번의 NCAA 타이틀과 18번의 개인 사우스웨스트 컨퍼런스 타이틀을 획득했다. 또한 약 182.88m 자유형에서 새로운 세계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대학 시절 하이덴라이크는 여름 시즌 동안 댈러스 수영 클럽(댈러스의 닥터 페퍼 수영 클럽으로도 불림)에서 가끔 수영했는데, 이 클럽은 SMU 코치 레드 바르와 리차드 퀵(1971년, 전 SMU 수영 선수이자 새로 임명된 SMU 보조 코치)이 코치를 맡았다. 이 팀은 나중에 댈러스 머스탱스 수영 클럽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1972년 SMU에서 경영학 학위를 받으며 졸업했다.
3. 1972년 뮌헨 올림픽
제리 하이덴라이크는 독일 뮌헨에서 열린 1972년 하계 올림픽에 출전하여 총 4개의 메달(금메달 2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을 획득하는 뛰어난 성과를 거두었다. 그는 미국 대표팀의 일원으로 계영 두 종목(4x100m 자유형, 4x100m 혼계영)에서 금메달을 획득했으며, 개인전에서는 100m 자유형 은메달과 100m 접영 동메달을 추가했다. 당시 개인전 두 종목에서는 팀 동료 마크 스피츠가 금메달을 차지했다.
3.1. 금메달
제리 하이덴라이크는 독일 뮌헨에서 열린 1972년 하계 올림픽에 출전하여 두 개의 금메달을 획득했다.
* 4 x 100m [[자유형]] [[계영]]: 미국 대표팀의 일원으로 출전하여 3분 26.42초의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 경기에서는 마크 스피츠가 앵커를 맡았으며, 소련 대표팀이 2위를 차지했다. 이 종목은 해당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열린 계영 경기였다.
* 4 x 100m [[혼계영]]: 이 종목에서도 미국 대표팀 소속으로 금메달을 획득했다. 결승 기록은 3분 48.16초로 세계 신기록이었으며, 은메달을 딴 동독 팀보다 4초나 빠른 기록이었다. 하이덴라이크는 팀의 네 번째 주자로 나서 빠른 앵커를 맡았으며, 마크 스피츠는 세 번째 영자로 접영 구간을 헤엄쳤다. 이 경기는 올림픽 수영 종목의 마지막 경기였고, 스피츠가 이 금메달로 대회 7관왕을 달성하면서 큰 주목을 받았다.
3.2. 은메달
1972년 하계 올림픽 개인전 100m 자유형에서 51.22초의 기록으로 은메달을 획득했다. 당시 금메달은 마크 스피츠가 차지했으며, 하이덴라이히는 스피츠보다 0.43초 늦게 결승선에 도착했다.
3.3. 동메달
개인전에서는 100m 접영 종목에 출전하여 55.74초의 기록으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 종목의 금메달은 미국의 팀 동료인 마크 스피츠가 차지했으며, 하이덴라이히는 스피츠보다 약 1.5초 뒤진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4. 올림픽 이후
올림픽 이후, 제리 하이덴라이크는 수영계에 남아 코치로서 활동했다. 그는 댈러스 지역에서 수영 클럽을 창립하고 여러 팀을 지도하며 후진 양성에 힘썼다. 그러나 개인적인 삶에서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세 번 결혼했으며, 2001년에는 뇌졸중으로 건강 문제를 겪었다. 안타깝게도 2002년, 그는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4.1. 코치 경력
그는 1980년대에 수영 코치가 되었다. 댈러스에 있는 아카데미 오브 텍사스 아쿠아틱 챔피언 수영 클럽의 창립자이자 코치였으며, 댈러스의 사립 여자 학교인 호커데이에서 코칭을 했다. 그는 나중에 댈러스의 켄 쿠퍼 에어로빅스 센터에서 마스터스 수영을 코칭했다.
4.2. 개인적인 어려움과 죽음
그는 세 번 결혼했다. 2001년 7월, 하이덴라이히는 가벼운 뇌졸중을 겪었으며, 이로 인해 왼쪽 몸에 부분적인 마비가 왔다. 이후 2002년 4월 18일, 그는 텍사스 주 파리에 있는 자택에서 처방약 과다 복용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5. 업적 및 유산
1980년대에 수영 코치로 활동했다. 그는 댈러스에 있는 아카데미 오브 텍사스 아쿠아틱 챔피언 수영 클럽의 창립자이자 코치였으며, 댈러스의 사립 여자 학교인 호커데이에서도 코치를 맡았다. 이후 댈러스의 켄 쿠퍼 에어로빅스 센터에서 마스터스 수영을 지도했다.
1992년에는 "명예 수영 선수" 자격으로 텍사스 스포츠 명예의 전당과 국제 수영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